인터넷 혁명 이어 벤처투자 성공 이끈 ‘인간 위키피디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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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15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a16z’ 설립자 마크 앤드리슨

올해 글로벌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의 상장일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투자 열풍의 주역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개인들의 투자에 대한 진입 장벽을 허물어 그동안 일상에서 입증돼 온 디지털 기술의 파괴적 위력을 투자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두 회사엔 공통된 인물이 있다. 마크 앤드리슨으로 두 회사의 설립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같은 해인 2013년에 설립된 두 회사에 초기 투자자로 이름을 올린 후 뒤이은 투자 라운드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일찍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라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일상의 ‘슈퍼 앱’에 주로 투자했던 앤드리슨은 이처럼 투자의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넷스케이프 창업, 초기 닷컴 열풍 주도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인터넷 혁명을 이끈 마크 앤드리슨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캐피탈 운영자로 꼽힌다. [사진 게티이미지]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인터넷 혁명을 이끈 마크 앤드리슨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캐피탈 운영자로 꼽힌다. [사진 게티이미지]

앤드리슨은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대학 시절 일찌감치 인터넷의 가능성을 간파한 그는 1992년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 ‘모자익’을 개발했다. 졸업 후엔 실리콘밸리로 옮겨가 ‘넷스케이프’를 창업하고, 웹브라우저 ‘내비게이터’의 상용화에 나섰다. 내비게이터의 탄생은 인터넷 열풍의 기폭제였다. 당시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던 인터넷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5년의 넷스케이프 주식 상장과 주가 급등은 곧이어 불어 닥친 닷컴 투자 열풍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앤드리슨도 거대 기업의 공세와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를 버텨낼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앞세워 넷스케이프를 압박했고, 결국 앤드리슨은 1999년 AOL에 넷스케이프를 매각해야 했다. 앤드리슨이 창업한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 ‘라우드 클라우드’는 타이밍이 문제였다. 넷스케이프 이후 클라우드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영역을 개척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음에도 닷컴 버블 붕괴의 여파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앤드리슨은 핵심 사업을 매각한 후 사명을 바꾸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HP에 회사를 넘겼다.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

앤드리슨 호로위츠 GP(General Partner)
출생연도 1971년 (50세)
최종 학력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컴퓨터공학과 (1993년 졸업)
개인 자산 17억 달러 (2021년 8월 기준, 포브스) 세계 1833위

여기까지가 앤드리슨의 인생 1막이다.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인터넷 혁명을 이끈 창업자 인생이다. 그러면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자라도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앤드리슨이 향한 곳은 ‘엔젤투자’였다. 막 설립한 스타트업에 개인적으로 투자하며 투자의 기초를 익혔다. 투자자로 변모한 앤드리슨의 인생 2막은 2009년 벤처캐피탈(VC) ‘앤드리슨 호로위츠’(이 회사는 ‘a16z’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를 설립하면서 본격화했다. 넷스케이프 시절 부하 직원이자 라우드 클라우드의 공동 설립자였던 벤 호로위츠와 함께 투자의 판을 키웠다.

후발 주자라 여러모로 불리했던 앤드리슨은 VC 모델의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연예기획사’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연예기획사와 마찬가지로 VC의 성공도 유망한 인재를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는 데 달려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새로운 모델의 출발점은 창업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다른 VC와 달리 스타트업의 창업자를 ‘고객’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주(錢主)라는 우월한 지위에서 내려와 창업자를 경영자로 거듭나게 하는 조력자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 인재 채용, 시장 개발 등 여러 방면에서 창업자를 지원할 내부 전문가를 확충했다. 또한 펀드 운용을 총괄하는 GP(General Partner)들이 창업자의 경영 활동 전반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GP의 자격 조건을 창업이나 기업 경영 경험이 있는 자로 제한했다.

대외적인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VC 문화 탓에 업계에서 전무하다시피 했던 대외 마케팅 기능을 강화했다. 스타트업과 창업자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관련 기업과 교류의 기회도 제공했다. 앤드리슨은 a16z의 외연 확장을 위해 직접 나섰다. 언론 인터뷰, 블로그, 트위터, 팟캐스트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기술과 미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엔 그의 개인적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 ‘인간 위키피디아’라고 불릴 정도로 관심사가 다양하고 지식의 깊이가 있는 데다 의사 표현에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설립연도 2009년
설립자 마크 앤드리슨, 벤 호로위츠
업종 벤처캐피탈
운용 규모 188억 달러(2021년 8월 기준)

심지어 앤드리슨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높은 적중률을 보여 그의 말과 생각에 사람들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창업자를 제대로 대우하고 전방위로 대외 활동을 펼친 결과, 2009년 3억 달러로 출발한 운용 자산규모는 이제 180억 달러를 넘어섰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VC로 꼽히고 있다. 인터넷에 이어 VC 모델에서도 혁신을 이뤄낸 앤드리슨이지만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바로 이해 상충에 대한 의심이다.

이는 앤드리슨이 이베이, 페이스북 등에서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주주 이익을 훼손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a16z가 2009년 이베이로부터 스카이프를 인수하고 2012년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을 매각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2016년엔 절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주식 구조를 주주에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데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앤드리슨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이베이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자주 틀려도 가능성 의심해선 안 돼”

성공 투자와 그에 따른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앤드리슨은 a16z가 나아갈 다음 방향을 제시했다. 2019년 ‘등록 투자자문사(RIA)’로 전환한 것이다. 규제가 느슨한 VC에서 탈피해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시를 받는 대신 투자 대상을 스타트업 지분 너머로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로써 a16z는 진정한 투자회사가 된 셈이고, 엄격한 규제를 받는 덕에 앞으로 이해 상충의 우려도 상당 부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앤드리슨이 생각하는 벤처투자의 성공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앤드리슨은 “자주 틀릴지언정 가능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VC의 성공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소수의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에 부정적 사고로 가능성을 의심해 그런 기회를 놓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행동력이다. 이는 앤드리슨이 자신의 최고 강점으로 꼽는 요소이기도 하다. 현재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를 확장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 미래가 실현될 때까지 출몰하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문학적 소양이다. 앤드리슨은 “벤처투자는 인간, 기술 그리고 시장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서 인문학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독서광 앤드리슨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지혜를 얻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비트코인 열성 지지자, 블록체인 기업에 30억 달러 펀드 투자

앤드리슨은 비트코인의 열성 지지자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고, 그런 블록체인의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 비트코인의 가격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의 등장에서 자신이 체험한 인터넷 혁명의 데자뷰를 강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블록체인의 혁신성은 물론이고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현실이 과거와 겹쳐진다는 것이다.

앤드리슨은 일찍부터 이런 생각을 투자로 실천했다. 2013년 코인베이스에 투자하며 블록체인 생태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201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총 30억 달러가 넘는 펀드를 조성해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19년에 등록 투자자문사(RIA)로 전환한 것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투자를 염두에 두고 그린 큰 그림이었다. VC 자격만으로 암호화폐, 대체불가능토큰(NFT), 탈중앙화금융(DeFi) 등의 무한한 가능성에 투자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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