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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퍼링, 정작 시행되면 불확실성 사라져 파국 없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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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14면

Fed 양적완화 축소 임박

잭슨홀은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의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안에 있다. 이곳은 가끔씩 곰이 출몰할 정도로 한적한 시골이지만, 매년 이맘때면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세계 중앙은행가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의 모임인 잭슨홀 미팅이 열리기 때문이다. 근엄한 중앙은행가들도 정장보다는 타이를 푼 캐주얼 차림으로 한담을 나누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좋은 풍광의 휴양지이지만, 잭슨홀 미팅에서는 이따금씩 금융시장을 뒤흔든 큰 뉴스가 나오곤 했다.

2010년 당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차 양적완화를 발표한 장소가 잭슨홀이었고, 지난해 회의에서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평균물가목표제를 발표하면서 장기적인 저금리 기조 유지를 약속한 바 있다. 특히 올해처럼 1년에 여덟 번 열리는 미국의 통화정책 회의인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8월을 건너뛰는 해는 잭슨홀 미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곤 한다.

올해 잭슨홀 미팅의 주제는 ‘불균등한 경제에서의 거시경제정책’이라는 거대 담론이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매우 협소한 범위로 좁혀져 있다. 혹시라도 이번 회의에서 테이퍼링의 개시 시점이 발표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다. 8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테이퍼링 실시를 발표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미국 경기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고, 인플레이션 압박은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8월 초에 발표됐던 7월 FOMC 회의록은 Fed가 테이퍼링에 한 발 다가섰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테이퍼링이 임박했다는 관측으로 신흥국 통화 가치는 급락했고, 외국인들은 주식을 팔았다.

그러나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이 미국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미국 소비지표와 제조업 서베이가 줄줄이 시장의 기대치를 하회했다. 테이퍼링 발표가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미국 주요 주가지수들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처럼 낙관적 기대가 자산가격에 이미 반영되고 있어,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테이퍼링을 발표하지 않더라도 호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이번 잭슨홀 미팅이 아니더라도 당장 9월 FOMC에서 테이퍼링을 발표할 수도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최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고공권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잭슨홀 미팅에서 Fed 의장은 물가가 2% 이상에서 움직이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공언했지만, 요즘의 물가상승률은 2%를 훌쩍 뛰어넘어 5%대에서 형성되고 있다.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출 필요가 있다.

유동성 조절이라는 권력을 갖고 있는 중앙은행은 구두개입만으로도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직 테이퍼링이라는 통과의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통화정책의 기대효과를 낮추게 된다. 기준금리 조정은 테이퍼링을 마친 후에나 가능하다. 이는 이미 연준 관계자들은 여러 차례 공언했다. 여기에 증폭된 부의 불균형, 부채 증가로 나타나는 과도한 위험 선호 등은 양적완화라는 ‘원래부터 비정상적이었던 정책’을 지속할 만한 명분을 훼손시키고 있다. 테이퍼링을 통해 일단 양적완화를 끝내는 게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올렸다. 한국 경제에 중앙은행의 긴축으로 억제해야 할 만큼 큰 과잉 수요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가 어느 정도 정상화된 현 상황에서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0.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올리는 ‘비정상의 정상화’,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금융 안정’을 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고 봐야 한다. 한국보다 여건이 나은 미국도 본질적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금리 인상은 최대한 신중하게 고려하더라도 일단 양적완화는 끝내놔야 한다.

따라서 잭슨홀 미팅을 무탈하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테이퍼링이 언제까지나 미뤄질 수 있는 건 아닌 셈이다. 9월 23일로 예정된 FOMC가 다가올수록 시장의 긴장은 높아질 것이다. 다만 오히려 테이퍼링이 시행되면 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정책 자체의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테이퍼링은 유동성을 흡수하는 정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4년 테이퍼링 국면을 복기해 보자.

당시 밴 버냉키 Fed 의장은 2013년 2분기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증시에서 7조2000억원을 순매도했지만, 막상 테이퍼링이 시행됐던 2014년 1월부터 10월까지 5조4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원달러 환율 역시 테이퍼링 불확실성이 컸던 2013년에는 1160원대까지 상승했지만, 테이퍼링이 진행된 2014년 하반기에는 1010원대까지 하락했다. 테이퍼링으로 인해 시장이 결정적 파국을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시행 직전까지는 소란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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