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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대신 눈·몸으로 작곡했다” 안들려서 신들렸던 베토벤 [고전적하루]

중앙일보

입력

"‘불구하고’가 아니라 ‘덕분에’."

베토벤 연구자인 로빈 월리스는 『소리 잃은 음악-베토벤과 바버라 이야기』(한국어판 2020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청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이 아니고, 청각 장애 덕분에 나왔다고 말입니다.

베토벤의 초상. [중앙포토]

베토벤의 초상. [중앙포토]

클래식 오디오 콘텐트 '고전적하루' 9번째 순서는 베토벤의 난청 스토리에서 ‘영웅담’을 걷어내봅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청력 이상을 감지한 시기는 1788년쯤으로 추정합니다. 180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3년 전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라고 처음으로 고백했기 때문이죠. 이듬해에는 생의 의욕을 상실한 채 유서를 남깁니다. “세련된 대화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라진 사람처럼 따로 살아야 해. 다른 사람보다 더 정확해야 하는 이 감각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어.”

청력 이상은 베토벤을 깊은 절망에 빠지게 했고, 베토벤의 음악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왼쪽 귀부터, 높은 음부터 듣지 못하다 결국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집요할 정도로 리듬에 집착했습니다. 또, 귀 대신 눈으로 작곡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악보 위에는 기하학에 가까운 음표들이 늘어섰죠.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즉흥연주로 이름을 떨쳤던 베토벤은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도 신체적 본능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귀로만 듣지 않고 몸으로 만들고 듣는 음악입니다.

결과적으로 베토벤은 선배 작곡가들이 만들지 못한 소리를 창조했습니다. 귀로는 파악하기 힘들만큼 복잡하고 장대한 구조, 이전에는 금기시됐던 불협화음의 빈번한 사용, 악상의 갑작스러운 변화 같은 20세기 작곡가들의 시도를 베토벤은 200년 전에 이미 했습니다.

물론 청각 장애는 베토벤에게 아주 불행한 일이었고, 없었으면 더 좋았을 비극입니다. 하지만 귀가 잘 들렸다면 베토벤의 혁신과 전위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로빈 월리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베토벤은 청각 장애를 이겨내지 않았다. 끌어안고 헤쳐나갔다.” 또 베토벤의 전기 작가인 메이너드 솔로몬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새로운 경험으로 물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몽상가처럼 작곡했다.” 소리가 안 들리는데도 위대한 음악을 만든 작곡가 베토벤, 사실은 소리가 안 들리기 때문에 그런 음악을 쓸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와 함께 듣는 '고전적하루'는 중앙일보 J팟 https://www.joongang.co.kr/jpod/channel/9 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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