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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 여사, 필리핀 공연 만찬 때 몸 기대고 얘기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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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16면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26〉 이멜다와 구보타

허튼 얘기 좀 하겠다.

내 나이 이제 70 중반을 훌쩍 넘었다. 홀아비 생활이 어언 30년이나 되는 것 같다. 그다지 불편한 건 없다. 그냥저냥 산다. 딸 하나와 한집에 살고 있다. 바로 어제 KBS ‘가요무대’ 녹화도 무사히 끝냈고(목소리가 옛날 같지 않기 때문에 많이 신경이 쓰였다) 미술 전시 요청도 여기저기 들어오기 때문에 나름 분주하게 만들어준다. 금년 말까지는 귀하께서 읽고 계신 나의 연재를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원고 매주 써내는 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착해서 복 받은 후배 엄영수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의 젊은 시절 모습. [중앙포토]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의 젊은 시절 모습. [중앙포토]

그런 와중에도 작년 초부터인가 나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인물이 나타났으니 이번엔 그 얘기부터 해야겠다. 길게 설명할 것 없다. 나를 신경 쓰게 만드는 인물은 바로 내 연예계 오랜 후배 코미디언 겸 개그맨, 누구나 다 아는 엄영수다. 원래 엄용수였는데 역술인가 하는 사람이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엄영수로 바꿨댄다. 내 친동생 이름이 테너 조영수(부산음대 명예교수)인데 나를 따라 하다 보니 이젠 내 친동생 이름까지 따라 하는가 싶었다. 그는 종종 방송이나 TV에서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가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화개장터’나 ‘딜라일라’를 부를 땐 내가 봐도 나를 닮은 것 같아 나까지 웃기곤 한다. 그뿐 아니다. 그가 TV에 나와 내 얘기를 꺼내는데 영남이 형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롤모델이었기 때문에 뭐든 영남이 형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고 말한다. 형이 결혼한다고 해서 자기도 결혼하고 형이 이혼한다고 해서 자기도 이혼하고 형이 다시 결혼한다고 해서 자기도 다시 결혼하고 형이 또 이혼한다고 해서 자기도 또 이혼했다고 한다. ‘2결2이’가 된 것이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고 거기까진 동점이다. 쌍방 홀아비 생활로 쭉 지내오다가 원래는 내 쪽에서 “야! 영수야, 나 또 결혼할 상대가 생겼다” 이렇게 말하고 영수가 “형! 경축하옵니다. 저도 분발해서 결혼 상대를 찾아 나서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의 본래의 각본(?)인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재작년이었던가. 어느 날 엄영수가 나더러 “형! 이번엔 제가 먼저 일을 저지르게 생겼습니다” 하길래 “뭐라구, 이번엔 순서를 바꾸자구? 좋아, 바꾸지 뭐, 그게 누군데” 하고 대뜸 물었다.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오랜 연예생활 경험에서 열혈팬과 연예인 사이쯤으로 넘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엄영수·에스더 부부를 위해 축가를 부르는 조영남씨. [사진 팩트TV 캡처]

엄영수·에스더 부부를 위해 축가를 부르는 조영남씨. [사진 팩트TV 캡처]

몇 달 후 또 보고가 들어왔다. 코로나를 무릅쓰고 격리 생활을 자처까지 해가며 우리의 엄영수가 벌써 두 차례나 미국 LA로 건너가 직접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다. 상대의 이름은 ‘에스더’이고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남편과 사별했고 LA 지역에서 비즈니스로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몇 번 현지에서 서로 만나면서 이젠 연애감정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썩을 놈! 연애감정이라니, 내가 너무 부러워서 하는 소리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진 정도가 아니라 완패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시라. 나이 70에 연애감정이라니! 얼마나 부러운 감정인가 말이다. 다른 사람한텐 모르겠다. 나한테 엄영수는 각별한 후배다. 나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넌 니가 착해서 복 받는 거야.”

지금까지 50여 년 대한민국 방송 연예계에 누가 나한테 딱 한 사람 ‘착한 사마리아인’을 대라면 나는 곧장 엄영수를 댈 것이다. 여기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엔 두 사람이 TV에도 여기저기 출연해 세 번째 결혼 사실을 알리곤 하지만 결국 재미교포 에스더 여사가 남자를 잘 만난 것이고 착한 내 후배 엄영수도 막판에 반려자를 잘 만난 것이다.

자! 그럼 나는 어쩔 것이냐. 맨날 엄영수 타령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 아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뜻밖의 만남이 많은 축에 속한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두 명이다. 물론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엄영수 같은 동반자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미리 말씀드리지만 중앙SUNDAY 애독자님한텐 극히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명하는 상대를 들으시고 “에이! 뻥치고 있네” 이렇게 말하면서 보던 신문을 휙! 집어 던지실까 봐 그런다. 그게 누구냐.

첫 번째 상대는 필리핀 국부로 추앙받는 고인이 되신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92) 여사다. 젊을 때 월드 미스유니버스로 지성과 미모를 양껏 뽐냈던 그 유명한 구두 3000켤레의 이멜다 여사 말이다. 다른 한 분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최상급 미술가인 백남준 선배(2006년 작고)의 부인 일본의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 여사다(1937년생인 구보타 여사도 2015년에 작고하셨다).

한국미술관 초대 김윤순 관장과 함께한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한국미술관 초대 김윤순 관장과 함께한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그럼 이멜다 여사를 어떻게 만났냐. 나의 오래된 두 명의 여자친구 유인경과 최유라가 나더러 2011년 필리핀 공연을 가자는 것이었다. 자기의 친한 친구(김기인)가 필리핀 여성회의 대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필리핀 하면 대뜸 맥아더 장군이 일본군의 침공으로 1942년 철수하며 “I shall return(나는 돌아올 것이다)” 한 게 필리핀이라는 것밖에 아는 게 없는 곳이 바로 필리핀이었다. 그래그래 유인경 최유라가 진행하는 조영남 필리핀 마닐라 쇼 동포 위문 공연을 다녀오자(사실은 3박 4일의 우리끼리 노는 걸 최고의 목적으로 설정한 거다). 멀지도 않았다. 비행기 타고 4시간인가 갔더니 필리핀이라고 했다. 하와이 느낌이 들었다. 더웠다. 예정된 대로 우린 마닐라의 한복판에서 조영남 초청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시장을 비롯 상원의원들이 여럿 참석한 것 같았다. 한마디씩 하고 쇼가 시작되었다. 유인경 최유라가 “한국에서 오신 가수 조영남입니다” 하면 그곳 김기인 대표가 필리핀 말로 통역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참 노래하는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공연장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아저씨가 현직 필리핀 부통령(제조마 비나이)이며 곧 다음 선거에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마이크는 그쪽 부통령 쪽으로 넘어갔고 사람들이 얘기를 잘 들어주니까(사실은 내 노래를 듣기 위해 조용히 얘기를 듣게 된 것 같았는데) 이 사람이 신이 나서 웅변을 계속하다 내 공연으로 넘어오니까 분위기 수습이 매우 어려웠다. 뭐 어쩌랴 하며 끝을 장식하긴 했다. 이쪽 정치인이나 저쪽 정치인이나 마이크만 쥐면 길게 얘기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곧이어서 유인경 최유라 조영남 환영 만찬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 전 대통령 영부인 이멜다 여사가 특별 초빙된 것이다. 당연히 이멜다와 조영남이 헤드 테이블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다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인경 최유라 조영남 환영 만찬 분위기가 점점 이멜다 조영남 밀회 장소로 변해갔다. 이멜다 여사가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필리핀과 한국은 우방국으로 잘 지내왔는데 오늘을 계기로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자.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온 가수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저녁 이렇게 저녁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큰 기쁨을 느낀다며 연설 후 비서를 시켜 무슨 두꺼운 책을 들고 와 남이 듣건 말건 내 쪽으로 몸을 기대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을 해대는 것이었다. 비서한테 큰 종이를 가져오라 해서 거기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이름을 적어가며 이 사람은 어떻구 저 대통령은 어떻구 끊임없이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 잠깐만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우릴 다 주목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진 나왔는데 감히 한국에서 온 카수 나부랭이가 어찌 그런 결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나를 소개하면서 오랜 동안 싱글로 지냈다고 해서 그랬는지 나한테 연애하고 결혼하자는 얘기만 빼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몽땅 다하는 것 같았다. 무쟈게 외로우신 분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홀로 지내는 생활이 너무도 지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 과장?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두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내가 어찌 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흘러 파티가 끝나게 됐는데 이멜다 여사만은 일어설 기세가 아니었다. 비서가 수시로 가까이 와 일어서자고 말해도 몇 번이나 거절하고 나와의 얘기를 이어갔다.

이멜다 여사, 3000켤레 구두로 유명

어찌어찌해서 파티가 다 끝난 다음 유인경 최유라가 득달같이 나한테 짓궂은 요구를 했다. 그것은 일종의 데모였다. 지금까지 구보타와 친밀하게 지낸 건 어쩔 거냐는 거다. 구보타란 다름 아닌 내가 평생 존경해 왔던 고 백남준 선생의 미망인이었다. 경기도 용인 소재 ‘한국미술관’ 초대 김윤순 관장님이 원래부터 구보타 여사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백 선생이 돌아가신 후 심심할 때마다 김 관장을 찾아 한국에 올 때마다 나를 불러 구보타 여사의 파트너 역할을 맡게 해서 급격히 친해졌던 거다. 구보타 여사는 비틀스의 존 레넌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처럼 플럭서스(Fluxus) 같은 미술그룹에 초기 멤버로 활약했던 철저한 팝아트(pop art)의 기수였다. 나로선 오히려 백남준의 TV 모형 작품보다  구보타 여사의 ‘TV Tree(TV 나무)’라는 제목의 지금 강남 포스코 건물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을 더 좋아할 정도로 강도 높은 팝아티스트며 설치미술가였다. 나를 그렇게 좋아한 건 나의 말과 행동이 백남준을 딱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멜다와 구보타(마치 자매 이름 같다)의 그때까지의 공통점은 첫째는 세계적인 명사라는 것과 둘째는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것이다. 셋째가 나처럼 자유로운 처지라는 사실이다. 가만 보자! 그런데 난 세 번째 계획이 없다는 얘긴가! 흠! 그럴 거란 보장도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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