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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공생관계, 나를 위한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한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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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호 02면

[SUNDAY 인터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마스크 한 장이 남과 나, 공과 사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공생의 가치를 보여줬다.”

이어령(87) 전 문화부 장관이 27일 오전 열린 서울대학교 제 75회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전한 메시지다. 이날 비대면으로 열린 온라인 졸업식에서 상영된 동영상을 통해서다. 축사에 담긴 의미를 더 묻기 위해 지난 9일 서울 평창동 자택의 녹화 현장을 찾았다.

그는 수척해 보였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귀가 자꾸 울리고 목도 마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축사한 사람들은 복장이 어땠느냐”고 물은 뒤 넥타이와 재킷을 갑옷처럼 단단하게 갖춰 입고 자리에 앉았다. 10분을 위한 녹화가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 전 장관은 암 투병 사실을 2019년 세상에 알렸고 별다른 치료 없이 집필에 몰두해왔다.

이날 이 전 장관은 “마스크를 누가 쓰라고 해서 쓸 뿐이라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사회냐”며 “마스크 착용에 담긴 ‘공생’의 의미를 졸업생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터득해야 우리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찮고 흔한 마스크가 70억 인류 얼굴 바꿔

지난 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녹화하고 있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김상선 기자

지난 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녹화하고 있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김상선 기자

2008년 서울대 입학식에서는 ‘떴다 떴다 비행기’라는 주제로 축사를 하셨는데 이번 졸업식에서는 마스크 한 장이 떴습니다.
“2008년 무렵 우리나라와 시대 상황은 뜨기만 하고 날지를 못하는 종이 비행기와 같았지요. 그래서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의 동요 노랫말은 유치원생이 아니라 입학식을 하는 젊은이들은 물론 우리나라 전 국민이 불러야 하는 노랫말이었습니다. ‘우리 비행기’라는 말을 입학생 개인 이름, 학교나 기업체명,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으로 바꿔 보세요. 세계 10위 경제권으로 부상(浮上)한 한국을 ‘이머징 스테이트(emerging states)’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이머징 바이러스(emerging viruses)’로 인해 마스크가 떠올랐습니다. 종이 비행기처럼 자체 동력과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떠다니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수면 위로 갑자기 떠오른다는 이머징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종이 비행기와 마스크의 공통점은 또 무엇이 있습니까.
"종이 비행기도 마스크도 하찮고 흔한 것들이지만,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본다는 말대로 오늘의 상황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지요. 70억 인류의 얼굴을 일시에 바꿔 놓은 게 바로 그 마스크 한 장이 아닙니까. 인터넷에는 마스크를 쓴 모나리자까지 등장하고 있어요.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단 마르셀 뒤샹도 하지 못한,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뭉개버린 것입니다.”
마스크는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모나리자의 입을 가린 마스크에서 우리는 지금껏 그냥 지나쳤던 모나리자의 눈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환갑을 지난 옛 제자들의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 20대 젊음 그대로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나는 코로나 패러독스 효과라고 부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젊은 학생들이 교과목에도 없던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의 이론을 학습하게 되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한밤중에 까닭도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울고 있는 것이다’ 같은 릴케의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무관한 사람끼리 운명처럼 뒤얽혀 있는 두렵고도 신비한 생명체의 비밀을 익히게 된 것이지요.”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한 마스크”라는 말씀은 ‘자리행 이타행(自利行 利他行)’이나 ‘자타불이(自他不二)’와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경영학에서 말하는 ‘윈윈 전략’이지요. 원래 우리 말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같은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서구 문명이 주도해온 실제 경쟁사회에서는 모두가 공염불이지요.”
마스크의 기능과 본질이 공과 사, 자와 타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선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코로나 패러독스가 현실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스크를 컴퓨터라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이만 시스템은 0과 1의 대립과 차이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앞으로 등장하는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포개져 있어요.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택일적 차이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함께 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솝 우화 속 게임 규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알면 됩니다. 뭍에서 뛰는 토끼와 바다에서 헤엄치는 거북이에게 땅에서 달리기 경주를 시키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거북이가 지는 게임입니다. 오늘날 2030 젊은이들이 절망하는 것이 바로 불공정한, 잘못된 게임 규칙과 그것을 일방적으로 획일화하는 잣대입니다. 만약 게임 룰을 바꿔 헤엄치는 경주를 하면 어떨까요. 토끼는 패자가 아니라 익사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단일의 물질 자본(돈)을 잣대로 하는 사회를 다양한 생명을 자본으로 삼는 사회로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은 이것도 저것도 함께하는 시스템  

공생의 가치를 담은 마스크의 의미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가 ‘생명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서를 서둘러 간행한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축사는 건강 때문에 여러 번 고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몸이 불편하고 나이도 아흔 줄이에요. 늙고 병들었지만, 떠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학위 수여식에서 덕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아닌 ‘너와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 한 장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한다면 출신 연령, 성별 그리고 건강 조건에 관계없이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갈 동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령 전 장관은 투병 와중에도 새로 음악 작업을 선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오는 9월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기념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준비한 작품 ‘천 년의 노래, 리버스’ 작사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한 것이다. 당초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지만 다섯 번이나 찾아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오고초려’에 협업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써온 글을 토대로 가사를 만들었다.  1972년 발간한 『한국인의 신화』에서 발췌한 1장 인트로 ‘신시(神市)의 아침’ 부분의 마지막 가사에는 이렇게 포스트 코로나의 희망을 담아냈다.

“폭력과 힘을 이기는 인내와 끈질김/ 우리 민족이다/ 횡포에 음악으로, 강압에 시로 대항하는/ 우리/ 긴 동굴의 시간을 기다리고/ 마침내 맞이하는 아침/ 신시의 아침에서 만나자.”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

영광스러운 졸업식에 축사를 하려고 나왔지만 제 눈앞에서는 검은 카메라 렌즈만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축하의 꽃다발도, 축하객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100년 가까운 서울대 역사 가운데 오늘 같은 졸업식을 치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좋든 궂든 여러분들은 비대면 강의를 듣고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그룹에 속한 졸업생이 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디지털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앞당겨 학습하게 되었고, 동시에 살결 냄새 나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강의 듣는 수업만이 아니라 잔디밭 교정을 거닐며 사사로이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 역시 대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디지털 공간의 ‘접속’과 아날로그 현실의 ‘접촉’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디지로그(digilog=digital×analog) 시대를 살아갈 주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기침 하나가 내 일상을 뒤집어 놓는 상황도 겪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생명의 내재적 가치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 물질 자본이 생명 자본으로 전환하는 현장도 목격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코로나 팬데믹의 학습 효과로 인해 누구나 쓰고 다니는 똑같은 마스크 한 장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각과 생각을 얻게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나와 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간단한 대답 같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쓴다”라는 사적·이기적 답변이 아니면 “남들을 위해서 쓴다”의 공적·이타적 답변 밖에는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나(自)에게 득(得)이 되는 것은 남(他)에게는 실(失)이 되고 남에게 득이 되는 것은 나에게는 해가 되는 대립 관계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인 배재의 논리가 지배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마스크의 본질과 기능이 그 어느 한 쪽이 아닌 양면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서 쓰는 마스크”라는 공생 관계는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를 먹고 먹히는 포식 관계, 남을 착취하는 기생 관계로 해석해 왔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똑같이 마스크를 쓴 얼굴이지만 그것을 쓰고 있는 마음에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의 앞날이 결정될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70억 명의 세계인을 향해 당신은 왜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요. “나와 남을 위해서”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서 쓰라고 하니까 쓴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획일주의와 전제주의 밑에서 길들여진 사람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자타(自他)와 공사(公私)의 담을 넘은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주역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손 안에 있는 학위 수여증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보증서인 것입니다. 이것이 비대면으로 치루어진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저의 축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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