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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용 방지 조항 없이 왜 서두르나” 외신 기자가 與에 묻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봐라. 언론 보도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같은 사안을 보도하더라도 언론사에 따라 다른 분석을 할 수 있는데, 대체 무엇을 ‘가짜뉴스’라고 할 수 있나?”(Look, news is not science, it's art. Two papers can report the same story, come up with completely different analysis. What is fake news?)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가 27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개최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간담회에서 나온 질문이다. 이날 간담회엔 미국 ABC·UPI, 일본 아사히·니혼게이자이신문, 러시아 스푸트니크 등 각국 언론인 30여명이 참석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채택한 미국과 달리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조항(Anti-Slapp)이 없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겨냥한 법인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가장 많이 제기된 의문은 법안을 충분한 숙의 없이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법안을 이달 안에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가 (문체위) 상임위원장이 (국민의힘으로) 바뀌는 것 빼고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짜뉴스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는 놔두고 주류 언론에 대한 규제를 먼저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등의 질문이 잇달아 나왔다.

이에 대해 한준호 의원은 “1인 미디어 관련 법안은 과방위에서 다뤄지는데, 법안이 발의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어 진행하지 못했다”며 야당 탓을 했다. 김용민 의원은 “언론중재법은 작년 6월에 문체위에 상정돼 심사해온 오래된 법”이라며 “‘갑자기’가 아니라 처리될 때 처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설명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제' 규정이 담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청래 의원 법안(지난해 7월 상정)을 제외하곤 모두 지난 2월 이후 제출됐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거론되는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이 실린 김 의원 본인의 법안은 지난 6월 23일에야 법안이 제출돼 지난달 13일 문체위에 상정됐다.

외신기자들, “언론 견제·감시 기능 위축” 우려도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 기자들은 법안이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란 비판도 쏟아냈다. “민간인 신분인 최순실이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면, 국정농단 진실이 밝혀졌을 거라 보느냐”, “퇴임한 권력자는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등 문제 제기였다. 민주당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공직자, 대기업 관련인 등 권력층을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제외했지만, 퇴직자나 측근은 여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맹점이 지적돼왔다.

이에 대해 김용민 의원은 “(최순실이 소송을 제기해도) 법원에서 기각될 것”이라며 “기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실이라고 믿고 보도했다면, (보도가 허위로 판명돼도) 징벌적 손해배상뿐 아니라 그냥 손해배상도 못 하도록 법이 되어있다”고 주장했다. 또 은퇴한 권력자 사례에 대해선 “보도한 내용이 그 사람이 공직자였을 때와 관련해 공공의 목적이 있을 땐 면책 조항을 적용받는다”는 논리를 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정보 출처를 공개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등 언론이 고의·중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딜레마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취재원 보호 문제는 우리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한국 언론 신뢰도가 높아지면 오히려 더 많은 제보가 들어와 더 좋은 권력 감시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언론중재법이 외신에도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해 당·정이 외신 앞에서 엇갈린 주장을 펼치는 촌극도 빚어졌다. 전날(2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중재법을 외신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의 유권해석 의뢰에 회신했다. 하지만 이날 김 의원은 “우리는 (법안 문구 중) ‘언론 등’에 외신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며 “문체부가 다른 안내를 한 것 같다. 다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외신기자 간담회는 전문 통역가나 영문 보도자료 하나 없이 진행됐다. 최지은 전 민주당 국제대변인이 간헐적으로 번역은 했지만, 한국어 질문엔 대부분 한국어로만 답변이 이뤄졌다. 이에 대해 한 외신 기자는 “제대로 준비하고 간담회를 연 것인지 의문이다. 아무 준비 없이 내신 기자들에게 보여주기용으로 연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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