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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금감원의 손태승 중징계 무효"…금융사 CEO 제재 제동

중앙일보

입력

법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린 금융감독원의 중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금감원은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손실 사태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2월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번 재판에서 패소하면서 금감원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제재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또한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다른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게 내렸던 징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일간스포츠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일간스포츠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내부통제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중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날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를 소홀히 했는지는 금융사 CEO에 대한 제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내부통제 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기에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DLF를 불완전 판매했고 당시 손태승 우리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내부통제를 부실하게 했다고 판단해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과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당시 우리금융 측은 "상품 판매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 경영진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금감원이 무리하게 지배구조법을 끌고 와 제재했다"고 맞섰다. 이어 지난해 3월 금감원을 상대로 징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한 1심에서 승소하면서 일단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이 가능해지고 금융권 취업 제한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지난 2월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받은 중징계 건이 걸림돌이다. 손 회장은 당시 중징계(직무정지 상당)를 통보받았지만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문책경고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고, 현재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의결 절차만 남았다.

금감원 항소할까…힘 빠진 금융 당국 징계권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1심이긴 하지만 이번 패소로 금감원은 금융사 CEO에 대한 제재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금감원이 징계의 근거로 내세운 '내부통제 미비'를 법원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금감원이 부과한 라임·옵티머스 펀드 관련 중징계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들이 줄줄이 행정소송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해 3월 DLF 사태와 관련해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에게도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근거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감원이 사전에 문제 예방을 하지 못한 데다가 사후 징계마저도 정당성이 결여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법원이 재확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날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무리한 처벌을 남발했다는 비판 등에 대해서는 판결문 분석이 끝나지 않아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금감원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금융위원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금융위의 사모펀드 관련 규제 완화가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27일 행정소송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살펴보고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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