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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데려오겠다" 탈출 1주만에 다시 카불 들어간 김일응 외교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이슬람 국가(IS)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공항에 진입하기를 기다리던 민간인 수십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들이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에 진입한 건 이로부터 불과 2~3일 전이었다. 불과 며칠 차이로 자칫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27일 오전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외교부 기자단과 화상으로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 외교부

27일 오전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외교부 기자단과 화상으로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 외교부

테러 첩보 입수 뒤 이동 서둘러

현장에서 수송 작전을 총괄한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은 27일 화상 브리핑에서 긴박했던 지난 나흘간의 상황을 전했다.

김일응 주아프간 공사참사관 화상 인터뷰 #"원하는 모두 데려온 게 가장 큰 보상" #정부, 'IS 테러' 첩보 사전 입수

현지인 조력자들에 대한 한국 수송 계획은 이달 초부터 검토됐지만, 탈레반이 예상보다도 빨리 정권을 장악하며 모든 게 틀어질 위기에 처했다. 주아프간 대사관 공관원 대부분도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15일 급히 제3국으로 철수했다.

김 공사참사관은 “우리도 갑작스럽고, (현지인 직원들도)한국으로 함께 데려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막막했다”며 “그래서 떠나면서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한 계획대로 꼭 할 거다’ ‘방법을 생각해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돌아봤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포함한 주아프간 대사관 공관원 3명과 주아랍에미리트 대사관 무관 등 4명은 1주일만인 22일 다시 카불로 들어갔다.
김 공사참사관은 “카불에서 나오는 비행기는 많았지만, 들어가려면 미군 군용기밖에 없어 쉽지 않았다. 비행기가 지정된 뒤에도 차편이 없어서 화물차 트럭 바닥에 앉아 이동하면서 카불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방법 찾겠다” 약속 지키려 다시 카불로  

카불 공항 안쪽은 미군이 관리하지만, 공항 바깥의 게이트 인근에는 2만여명이 운집해 있고 탈레반이 검문검색을 펼치는 혼잡한 상황이었다. 미군과 협의한 결과 접근성 등에서 가장 나은 통로는 애비 게이트였다고 한다.
대사관 관계자들이 ‘KOREA’라는 종이를 들고 현지인 조력자들을 찾아다닌 곳이 바로 애비 게이트 앞인데, 바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점이다. 현지인 26명은 23일 애비 게이트를 통해 카불 공항으로 들어왔다.

김 공사참사관은 “사실 게이트마다 협소한 곳에 몇천명 씩 모여있으니 진입도 어렵고, 탈레반이 철책을 두드리며 겁도 주는 상황이었다. 26명이 들어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3일 저녁쯤 상황이 달라졌다. IS의 자살 폭탄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구체적 첩보가 있었다고 한다. 단순히 '공항을 타깃으로 한 테러 위험성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파가 운집한 애비 게이트를 더이상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버스 모델을 적극 활용하게 됐다.

26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공항 인근 대형 폭발 관련 현지지도.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공항 인근 대형 폭발 관련 현지지도. 연합뉴스.

집결지 정하고도 “일찍 오지 마라”  

버스를 구하는 과정도 여의치 않았다. 그는 “버스 회사에 연락해서 예약한 뒤에 차량 정보와 기사 신원을 미국 쪽에 제공하면 미국이 이를 다시 탈레반에 전달해 공항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탈레반이 관할하는 구역을 지나야 했고, 이에 대한 확답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전했다.

버스를 구한 뒤에는 안전한 집결지를 찾는 게 문제였다. 입구에서 멀지 않고 모이기 쉬운 곳으로 두 군데를 정해 조력자들에 공지했다.

김 공사참사관은 “아무래도 50인승 차를 네 대씩이나 가동하다 보니 눈에 띄고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e메일 등을 활용했지만 조력자들과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탈레반이 획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도 아니다 보니 위험성이 있었다”며 “그래서 집결할 시간도 정해놓고 조력자들에게 미리 모이지도 말라고 했다. 아무리 빨리 와도 30분 전부터 모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탈레반 검문에 피마른 14시간

미국과 조율해 버스가 정문을 통과하는 시간을 24일 오후 3시 30분으로 받아놨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정문까지 짧은 거리를 오는 과정에서 탈레반이 검문검색을 한다며 통과시키지 않으며 14~15시간동안 버스에 갇혀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김 공사참사관은 “날은 더운데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색깔을 칠해서 밖이 보이지 않고, 갇혀있는 어린 아이들은 울고…. 또 탈레반이 어떤 버스는 문제가 있으니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도 있었다”며 “그렇게 24일 오후부터 25일 동이 틀 때까지 꼬박 밤을 새우며 마음을 졸이며 걱정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조력자들이 무사히 카불 공항으로 들어온 뒤 김 공사참사관은 버스에서 내린 대사관 직원과 부둥켜안았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를 든 채 현지인과 꼭 끌어안은 사진은 적지 않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사실 어떻게 찍힌 사진인지도 모르겠다. 25일 새벽에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4시간 동안 갇혀 있다 내리는 사람들 얼굴이 사색이 돼서 내려오는데…”라며 잠시 말을 끊었다. 그때가 떠오르며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했다.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아프간 현지인 직원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탈레반에 구타도…얼굴이 사색”

김 공사참사관은 “사진에 나온 직원은 우리 대사관 정무과에서 행정직원으로 함께 일했던 친구인데, 얼굴이 너무 상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밀폐된 공간에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을 것이고, 탈레반이 버스 안에 들어와서 물어보는 과정에 위협을 받았는지….(버스에 탄 사람들 중 일부는)구타도 당하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는 또 “(현지인들은)다시 돌려보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을 것이고, 물도 음식도 없이 14시간 넘게 갇혀 있었다. 우리도 함께 굶으면서 밤을 지새우며 기다렸고, 모든 걸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의지했다”고 말했다. “(버스가 무사히 들어오길 기다리던)그때가 나와 우리 직원들도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면서다.

김 공사참사관은 정작 자신의 가족인 두 딸에게는 카불에 다시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아버지 소식을 들은 딸들이 “아이 참, 아빠는…”이라며 걱정했다고 그는 전했다.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인 현지 조력자 가족이 2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한 모습. 뉴시스.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인 현지 조력자 가족이 2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한 모습. 뉴시스.

“원하는 모든이 데려온 게 보상”

수송 작전을 무사히 끝낸 소회를 묻자 김 공사참사관은 “일을 진행하며 ‘된다, 안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았다.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며 “한국행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보상”이라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 됐구나’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하는 것을 이제 우리도 할 수 있구나’ ‘우리 국격에 맞는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브리핑 말미에 그는 두 딸을 위한 메시지도 보냈다. 그는 "두 딸에게 씩씩하게 자라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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