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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리 빛이 되어 다시 만나자”하늘나라 간 백혈병 청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3)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경험이 쌓일수록 늘지만,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사진 pxhere]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경험이 쌓일수록 늘지만,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사진 pxhere]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은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경험이 쌓일수록 느는 법인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는 연륜과는 비례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지혜를 발견한다. 말기 암을 통보받은 젊은 여성이 생을 마감하기 전 친구들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며 감동을 주고 있다.

나이 27세인 호주 여성은 암에 걸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글로 적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난 후 남는 사람들에게 진실 어린 편지를 보냈다. 그의 글은 우리가 현실에서 애를 쓰며 얻으려고 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게 해준다. 아래는 그가 친구들에게 남긴 편지글 중 일부다.

27세의 나이에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걸 무시하고 살죠. 나는 사람들이 삶의 아주 작은 것, 무의미한 스트레스에 대해 걱정을 내려놓고 어차피 모두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를 바래요. 나는 지난 몇 달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래에 내 생각을 적어봅니다.

불만을 많이 느낀다면 정말로 문제에 닥친 사람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사소한 문제에 감사하고 그 문제를 극복하세요. 자신에게 짜증 나는 일이 일어난 것을 인지하되 그것을 질질 끌어 남들의 하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세요. 일단 당신이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면 그저 밖에 나가서 폐 안에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푸른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껴보세요.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생각하세요.

오늘 최악의 교통체증에 시달렸다든지, 아기가 잠을 설치게 했다든지, 미용사가 머리를 너무 짧게 자를 수 있어요. 손톱에 금이 갈 수 있고 가슴이 너무 작을 수 있고, 몸에 지방이 붙어서 뱃살이 출렁거릴 수 있어요. 그런 쓸데없는 것을 다 내 버려둬요.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런 것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맹세해요. 삶 전체를 볼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경험에 돈을 쓰세요. 물질적인 것에 돈을 다 써 버려서 경험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자연을 만끽하세요. 스마트폰의 화면을 통해 즐기는 것보다 직접 그 순간을 즐기세요. 인생은 화면을 통해 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완벽한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에요. 제발 그 순간을 즐기세요. 나는 가족, 친구와 함께 이곳 지구에서 시간을 보낸 일에 영원히 감사합니다. 지난 1년은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시간이었어요.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여명은 남자가 80세, 여자가 86세로 평균 83세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균수명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평균수명은 그야말로 평균값이다. 90을 넘어 장수하는 사람도 있고 위의 사례처럼 30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다. 오래전 호스피스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10세도 안 된 아이가 암에 걸려 사망하기도 했다.

아이는 돌봄 수녀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를 간청했으나 일손이 모자란 그녀는 내일 꼭 불러주겠다며 약속하고 자리를 떴는데 아이가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회한에 젖어 눈물을 훔쳤는데 생명은 이처럼 우리가 가름할 수 없는 일이다. 암으로 투병하던 지인이 80세까지는 그냥 모두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암에 걸린 후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도 그를 일으켜 세우며 용기를 주었던 것은 바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이었다. [사진 Jair Lazaro on Unsplash]

최악의 상황에도 그를 일으켜 세우며 용기를 주었던 것은 바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이었다. [사진 Jair Lazaro on Unsplash]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호주 여성과 같은 일이 있다. 올해 20세인 청년은 2017년 빈혈 증상이 계속돼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백혈병으로 밝혀졌다. 항암치료에 이어 가족의 골수까지 이식받으며 완치의 희망을 품었지만 2019년 9월 재발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에는 다른 부위로 암세포가 전이됐다. 최악의 상황에도 그를 일으켜 세우며 용기를 주었던 것은 바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이었다. 그는 실제 삼성 서울병원 입원 중에 소아암 병동에 있는 유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돕기 위해 부모는 살던 아파트를 월세로 돌렸다. 그러나 주변의 기도와 청년의 간절한 바람에도 지난 1월부터는 항암치료가 무의미해지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치료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수면제와 마약성 진통제로 견뎌내던 중 잠시 정신을 찾은 그는 자신의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래는 그가 친구들에게 남긴 글이다.

친구들아, 모두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 이제 세상을 떠나 별이 된다. 세상을 떠나면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플 것 같아 걱정이다. 친구들아, 부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내 꿈을 대신 이루어줘라. 너는 세상의 빛이 되고 나는 밤하늘에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자. 우리 빛이 되어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여기저기서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이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대중 앞에서 듣기 거북한 말을 내뱉어 안타깝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기는커녕 내로남불의 자세로 오히려 상대를 배척하는 사례도 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다. 지금은 건재하지만 얼마 지나면 모두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데 땅속에서 현재 자신이 했던 말을 돌아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면 어떻게 처세해야 할지 임종을 앞둔 젊은이에게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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