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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오명 벗어냈다…'카불 탈출 기적' 만든 시그너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오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을 도왔던 현지인 조력자들이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을 탈출해 한국까지 항공기로 11시간 9000㎞를 날아왔다.

목숨을 건 ‘미라클’ 구출 작전에 공군 수송기 KC-330 1대와 C-130J 2대가 투입됐다. 이 중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은 ‘시그너스(백조자리)’로 불리기도 한다. 도입을 검토할 때  ‘필요 없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최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 7월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청해부대 제 34진을 긴급 후송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가 청해부대 제 34진을 긴급 후송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뉴스1

공중급유기 KC-330 시그너스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중급유기 KC-330 시그너스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군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시그너스 4대를 도입해 운용하는데 공중급유뿐 아니라 병력 300여명과 화물 45t을 공수할 수 있어 이번 작전에 투입됐다. 민간 항공기와 달리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다.

앞서 지난 7월 청해부대원 긴급 복귀, 6월 얀센 백신 수송, 지난해 7월 이라크 교민 수송, 6월에는 아크부대 병력 교대에 투입돼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5일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과 지난해 6월 6ㆍ25 전사자 유해 송환에도 나서 장거리 비행을 중간 기착지 없이 한 번에 다녀왔다.

지난 25일 미 육군 82사단 공수부대원이 카불 공항을 경계하고 있다. 미 국방성=AP연합뉴스

지난 25일 미 육군 82사단 공수부대원이 카불 공항을 경계하고 있다. 미 국방성=AP연합뉴스

“필요 없다” 논란…최근 불러주는 일 많아

도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초 공중급유만 전담하는 전용기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한반도에 공중 급유기는 필요 없다”거나 “평시에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는 반대가 나왔다.

그래서 공중급유뿐 아니라 긴급한 군사작전에서 재외국민 및 물자 수송도 가능한 다목적급유수송기 도입으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지난 20일 카불 공항에서 미 공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미 해병대=REUTERS=연합뉴스

지난 20일 카불 공항에서 미 공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미 해병대=REUTERS=연합뉴스

외형은 민간 항공기와 비슷하지만, 미사일 경보장치와 레이저 적외선 방해 장비(DIRCM)도 갖췄다. 다만, 민간 여객기에 바탕을 둔 항공기 구조 특성 때문에 전술 비행은 어렵다. 급격한 자세 변화로 미사일 공격을 피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 25일 경찰 대사관 경호팀 대원이 아프간 카불 공항 인근에서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이들은 군 특수부대 및 경찰 특공대 출신으로 아프간 대사관을 지켜왔다. 외교부 제공

지난 25일 경찰 대사관 경호팀 대원이 아프간 카불 공항 인근에서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이들은 군 특수부대 및 경찰 특공대 출신으로 아프간 대사관을 지켜왔다. 외교부 제공

군 관계자는 “위험 지역에 착륙하는 군 수송기는 일반 여객기 처럼 먼 거리에서 서서히 고도를 낮춰 착륙하지 않는다”며 “활주로 상공에서 회전하면서 착륙을 시도하는데 여객기는 이런 전술 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카불 현지 여건 불안정…특수부대 투입

지난 19일 영국 공군 A400M 수송기가 아랍에미리트 알막툼 공항을 이륙해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9일 영국 공군 A400M 수송기가 아랍에미리트 알막툼 공항을 이륙해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 현지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탈레반 테러 위험도 여전하다. 수송기 착륙에 앞서 아프간 대사관을 방호하던 경찰 대사관 경호팀(경찰단)과 공군 특수임무대 소속 공정통제사(CCT) 등 무장 병력을 투입했다.

카불 공항에는 전술 비행이 가능한 C-130J 수송기만 투입해 현지인을 파키스탄으로 수차례 수송했다. 여기에 다시 집결한 뒤 391명은 시그너스, 12명은 C-130J에 탑승한 뒤 한국으로 출발한 배경이다.

23일 일본 정부는 항공자위대 소속 C-2 수송기를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했다. 현지 거주 일본인과 일본대사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에서 근무한 아프간 직원과 그 가족을 대피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정부는 항공자위대 소속 C-2 수송기를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했다. 현지 거주 일본인과 일본대사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에서 근무한 아프간 직원과 그 가족을 대피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연합뉴스

C-130J 수송기는 전술 비행 할 수 있고 활주로에서 이동이나 탑승도 편리하다. 그러나 비행거리 짧아 동남아까지만 한 번에 비행할 수 있고 카불까지는 중간에 태국 등지에 내려 중간 급유를 받아야 한다.

미·영·프·일 등 세계 각국 군 수송기 투입 

미국은 C-17, 영국은 C-17ㆍA400M, 독일과 프랑스는 A400M, 일본은 자국에서 만든 C2 등 C-130J보다 커 장거리 이동과 전술 비행이 모두 가능한 대형 군 수송기를 투입했다. 지상 차량 지원이 없어도 후진도 가능하고 탑승 계단이 없어도 타고 내리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들 국가는 카불 공항 활주로에 내린 수송기로 자국민과 협력자를 주변국으로 빠르게 탈출시킨 뒤 민항기로 최종 목적지로 이동시키거나 필요한 경우 본토까지 한 번에 비행한다.

지난 25일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 현지 조력자와 가족들이 카불 공항에서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공군 제공

지난 25일 한국으로 이송될 아프간 현지 조력자와 가족들이 카불 공항에서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공군 제공

국방부 관계자는 “10년 전 시그너스 다목적기 도입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벌써 효과를 본다”면서 “이처럼 군사력은 현재가 아닌 10년과 20년 뒤 미래를 예측하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대형 수송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내년부터 2026년까지 4844억원을 투입해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을 진행한다. 후보 기종으로 록히드마틴사 C-130J, 에어버스사 A-400M, 브라질 엠브라에르사 C-390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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