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전설 헨리 키신저 쓴소리 “미국, 이래서 아프간서 패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7 05:00

업데이트 2021.08.27 12:44

헨리 키신저. 2009년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2009년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외교의 살아있는 전설 헨리 키신저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말문을 열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4일(현지시간)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서다. 기고문 제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실패한 이유.’ 키신저는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 결정에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 울림이 더욱 크다.

그는 내후년이면 백수(百壽)를 맞는 외교의 백전노장이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한 현실주의 외교를 펼친 그에 대한 논란도 분명 있다. 최근 들어 “키신저리안(Kissingerian) 외교는 수명을 다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럼에도 외교사에 그가 큰 획을 그었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키신저가 풀어놓는 아프간 사태의 진짜 함의를 소개한다.

1998년 방한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나는 키신저. [청와대 사진기자단]

1998년 방한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나는 키신저. [청와대 사진기자단]

협의도, 경고도 않고 급 철군한 미국의 속마음  

우선 키신저의 기고문 첫 문단을 그대로 옮긴다. 번역 특성상 영어 특유의 중문(重文)을 끊은 부분은 있으나 원문을 최대한 살렸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장악(takeover)하면서 전국에 흩어진 수만명의 미국인과 동맹국 국민 그리고 아프간인들을 어떻게 탈출시킬지에 즉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들을 구출하는 것은 시급한 우선순위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미국이 어떻게 지난 20년 간 이어진 희생에 직접 관련된 동맹이나 사람들에게 경고 또는 협의도 많이 하지 않은 채 철군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다. 또 아프간의 근본적 도전 과제가 일반 국민에게 아프간을 완벽히 장악하거나 또는 완벽히 철군하는가의 양자택일 문제로 받아들여지고(conceived) 비춰지게(presented) 되었는지의 문제다.”  

아프간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어린이들과 여성들이다. 26일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아프간 협력자 가족의 아이가 방역 관계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아프간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어린이들과 여성들이다. 26일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아프간 협력자 가족의 아이가 방역 관계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아프간 전쟁은 역사상 미국이 벌인 최장의 전쟁이다. 다음달이면 꼭 20년이 되는 2001년 9ㆍ11 테러 여파로 전쟁은 시작됐다. 강산은 두 번 바뀌었지만 아프간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다. 미국 내에서도 현재로선 비교적 조용하지만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확존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난 20일자 칼럼이 여러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프리드먼은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의 가상 인터뷰라면서 “나도 바이든처럼 철군 결단을 내렸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썼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약속을 지킨다”며 철군을 미루다 결국 상처뿐인 역사만 남긴 존슨 전 대통령보다 바이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내엔 소개가 덜 되고 있지만 미국에선 바이든의 철군 결정을 미국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입장에서 지지하는 목소리도 크다.

미국 최장의 전쟁 아프간전, OO가 없었다  

베트남전 철군 결단을 못 내렸던 존슨의 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외교 브레인이 바로 키신저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닉슨의 귀를 잡고 있던 키신저는 베트남전 철군의 결단을 이끈 인물로 기록됐다. 베트남 철군과 아프간 철군은, 그러나 키신저의 주장에 따르면 차이가 있다. 뭘까. 기고문 관련 부분이다.

“베트남에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 걸쳐 우리의 반란 진압 활동을 괴롭힌 한 가지 근본적 문제가 있다. 미국이 자국 군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미국의 특권을 시험에 들게 하며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을 시킬 때엔 지켜야할 근간이 있다. 전략적이고도 정치적인 목표가 결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미국은 이 달성가능한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는 능력이 없었고, 미국의 (국내) 정치 절차에 그 목표를 연동시키는 능력도 없었다. 군사적 목표는 너무 절대적인데 반해 달성이 불가능했고, 정치적 목표는 너무도 추상적인데다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할지 조차 몰랐다는 게 키신저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을 지지부진하게 20년 끌어오다 국민은 지치고 국고는 바닥났으며 생명은 희생됐다는 얘기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순 있지만, 그렇다면 미국은 뭘 했어야 할까. 키신저는 목표 설정을 더 현실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탈레반을 궤멸(destruction) 대신 봉쇄(containment)하는 것으로 목표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다”며 “그러한 성취 가능한 대안적 목표를 세우는 방안은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다 아예 목표를 상실하는 셈이 됐다는 뜻이다.

키신저는 미국의 핑퐁외교의 물꼬도 텄다.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모습. AP=연합뉴스

키신저는 미국의 핑퐁외교의 물꼬도 텄다.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모습. AP=연합뉴스

또 하나 키신저가 지적하는 것은 “창의적 외교의 부재”다. 외교의 거인답게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이나 인도와 손잡는 외교를 펼칠 수도 있었다고 강조한다. 유연한 외교를 통해 꼬일대로 꼬인 군사 실타래를 풀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다. 관련 부분을 요약해 옮긴다.

“물론, 인도ㆍ중국ㆍ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국익은 합치하지 않는다. 창의적 외교라면 그럼에도 아프간에서의 테러리즘을 공통의 과제로 삼아 농축시키는 결과를 빚어낼 수 있었을 터다.”

문제는 앞으로다. 바이든 행정부에 키신저는 아래와 같은 조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사실상 섬으로 고립된 대한민국에도 함의가 크다.

“당분간은 극적인 전략적 해결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겠다고 성급히 선언한다면 이는 동맹국들에겐 또다른 실망감을 안겨주고 적국에겐 용기를 북돋워줄 것이며 지켜보는 이들에겐 혼란을 심어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와 국제의 필수적 과제에 부합하는 종합적 전략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기회가 필수다. 민주주의는 세력간의 갈등에서 진화해나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조화(reconciliations)를 통해 위대함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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