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학교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21.08.2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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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일단 침대에 눕혀본다. 침대 크기에 맞춰봐서 키가 크면 자르고 작으면 늘린다. 이것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이 엽기적 이야기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거기 꼭 맞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아이들을 궤짝에 넣고 암기 기계로 만들어 사회에 뱉어낸다. 그게 한국 교육이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니고 뭐냐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도 등장했다. 침대의 가로세로비를 다양하게 해서 아이들을 눕혀보자는 것이다. 대입 수시전형이라고 불렀다. 그랬더니 부모 권력으로 대각선으로 눕혔다느니, 재력으로 깔창 대고 모자 쓴 채 누웠다는 불만도 등장했다. 심지어는 침대에 눕혔다는 증서의 직인이 위조되었느니, 침대에 누운 현장 사진의 인물이 본인이냐는 시비까지 생겼다.

학부모 호소로 개교한 서진학교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가치 있어
특수교육은 복지 아닌 헌법상 권리

괴상한 침대다. 그런데 이 다툼 너머에는 여기 누워볼 기회조차 갖기 힘겨운 아이들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근대 도시 설계의 원칙은 주거지로부터 보행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학교 가려면 차 타고 거대 도시를 종주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진학교가 개교했다. 발달장애아 특수학교다. 무릎 꿇은 엄마들의 호소 모습으로 유명해진 그 학교다. 이제 개교 과정을 복기해볼 때가 되었다. 그 과정이 한국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생에 이 학교는 일반학교였다. 도시설계 원칙대로 아이들이 걸어서 등교하던 학교다. 문제는 주변이 주로 임대아파트라는 것이다. 공공임대아파트는 입주 기간이 길다. 학부형들이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졸업을 하자 신규 취학생이 줄었다. 다른 아파트단지 아이들이 취학하면 간단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임대아파트 아이들 많은 학교라고 이를 기피했다. 한국사회의 현실 그대로다. 두메산골도 아닌 서울의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교육청에서는 이 자리에 특수학교를 짓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정치가 개입되며 문제가 생겼다. 구성원들의 갈등을 조정해 사회적 안정을 이뤄나가는 게 정치의 가치다. 그러나 멀쩡한 사회에 돌을 던져 갈등을 제조해 내는 게 한국 정치의 독보적 특징이다. 국회의원 선거철에 이 학교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공약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청은 독립된 공화국이라고 보면 된다. 교육감도 직선으로 따로 뽑는다. 학교 지을 때 구청 허가도 필요 없다. 학교부지에 병원을 짓겠다는 건 행정 무지나 정치만능 신념일 뿐이다. 굳이 한방병원인 근거는 허준이 지금의 강서구에서 태어났다는 단서였다. 양천 허씨 문중의 제사 한담 정도에 그쳤어야 할 이야기가 국회의원 선거공약이 되었으니 이 또한 한국적이다. 다음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주변 주민들이 학교보다 병원을 주장했고 엄마들은 무릎을 꿇었다. 사진이 전하는 절절함은 여론이 되었고 학교는 간신히 개교했다.

그 서진학교가 올해 서울시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서울특별시의 이름처럼 서울시건축상도 특별한 권위를 축적한 상이다. 서진학교의 서울시건축상 대상 수상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건축계의 입장 표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도시에서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이런 건물이 훨씬 중요하다는 건축계의 선언이겠다.

건물로서의 서진학교는 부실하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일반학교 예산을 특수학교 건립에 단순적용했으니 물리적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공기관답게 몇 해 뒤 준공할 건물을 올해 물가로 짓겠다니 물가상승은 고려도 반영도 되지 않는다. 현상공모 당선작 선정 이후 각종 자문회의·심의회의·설명회·감사·인증절차를 거쳤고 그때마다 설계도면은 수정되어야 했다. 감리비 지급도 없는데 굳이 건축가가 현장협의를 이어간 건 책임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수상은 황당한 조건에서 불굴의 노력을 기울인 건축가에 대한 치하이기도 하다.

교육은 독특하게 국민의 권리면서 의무다. 헌법에 쓰인 바 능력에 따른 균등교육 기회보장은 장애에 따른 기회배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 여부에 근거한 교육기회 차별이 있다면 이건 헌법가치의 부인이다. 특수학교 설립은 복지가 아니고 권리실현이다. 특정인과 집단의 이익추구가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게 추스르는 것이 정치다.

이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로 돌아오자. 법규에 따른 교실의 면적 최소기준은 66㎡다. 이럴 때 유독 교육은 공평해지니 초등학교 1학년생과 고등학교 3학년생의 신체 크기 차이는 고려하지 않는다. 특수학교의 최소기준도 같다. 그래서 이 신비한 숫자의 산출 근거가 궁금해진다.

한국 법규에 등장하는 면적값들은 정교한 연구에 근거한 산출치인 듯 오묘한 숫자들이다. 그런데 막상 익숙한 평수로 역산하면 모조리 어처구니 없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실의 최소기준도 20평의 단순변환값이다. 각 변 7.5m와 9m의 사각형을 그리면 이 최소기준 살짝 넘는 67.5㎡라는 숫자가 나온다. 커질수록 공사비는 증가하니 결국 이것이 한국형 프로크루테스 궤짝 규격이다. 우리는 여기 여전히 아이들을 밀어 넣는 중이다. 참으로 한국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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