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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다, 초저금리 시대…시작됐다, 이자 낼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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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주열

이주열

싼값에 손쉽게 돈을 빌려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하던 ‘이지 머니(Easy money)’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수위를 높여 가는 금융당국의 대출 옥죄기에 이어,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던 유동성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6일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0.75%로 올렸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역대 최저 수준인 0.5%로 기준금리를 내린 지 1년3개월 만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18년 11월(1.5%→1.75%)이 마지막이었다.

코로나19 4차 유행에도 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든 건 가계빚 급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급등에 따른 금융 불균형 심화 때문이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빚(가계신용)은 180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68조6000억원(10.3%) 늘었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부동산과 주식시장, 암호화폐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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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중단과 대출 한도 축소 등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대출 규제도 이런 흐름을 막지 못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금리 인상 배경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됐으며, 주택가격은 수도권과 지방 모두에서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초저금리를 유지할 경우 부동산 시장 등의 과열을 막을 수 없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기 위해 한은이 정책 공조를 택한 이유다.

이주열(사진) 한은 총재는 “금융 불균형 해소는 시급한 과제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 대응이 동반돼야 할 시점”이라며 “저금리가 상당히 지속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면 거시건전성 규제 효과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한은은 이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8%에서 2.1%로 상향 조정했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2%)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국내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깔려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도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로 유지했다.

치솟는 가계빚·부동산, 대출 규제로 안 되자 금리 카드

한미 기준금리차

한미 기준금리차

백신 접종 확대와 수출 호조 등으로 회복 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에서다.

여기에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점을 저울질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주요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통화정책의 여지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 차례의 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대의 물가상승률과 4%의 성장률을 고려하면 기준금리(0.75%)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이라며 “현재의 금융 불균형은 기준금리를 한 번 올려서 해소될 상황이 아닌 만큼 앞으로 기준금리를 한두 번은 올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은 이번 조치(기준금리 인상) 하나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며 “금융 불균형 누적 완화를 위한 첫발을 뗐다”고 강조한 이유다.

추가 인상의 신호(시그널)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날 통화정책방향문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이 총재는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도 않지만 지체하지도 않을 것이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올해 남은 10월과 11월 두 차례의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돌입한 점을 고려하면 오는 11월 금통위에서 추가로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의 긴축 시간표가 빨라지고,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쥐면서 대출자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초저금리 상황 속 가계빚의 덩치가 커진 데다 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70%를 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분(0.25%포인트)만큼 대출금리가 오른다고 할 경우 2분기 대출 잔액 기준으로 이자 부담은 3조988억원가량 늘게 된다.

수도권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도권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들은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831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8% 증가했다. 고금리 대출 비중이 늘어나는 등 대출의 질도 악화했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6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심화할 수밖에 없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지 머니 시대가 저물면서 ‘대출 경색’이 발생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돈의 값(금리)이 비싸지고 대출 총량까지 쪼그라들면서다. NH농협은행이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은행과 저축은행, 보험 및 카드·캐피털사의 신용대출 한도도 축소되는 등 대출 절벽은 확산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싼 금리로 쉽게 돈을 빌려 자산에 투자하는 이지 머니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며 “추가 인상이 없을 경우 투자 심리에 오히려 불을 붙일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금리 인상 신호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은의 통화정책에 가속이 붙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시장의 예상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 총재가 ‘통화정책은 집값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데다 잠재성장률이 2.0%까지 낮아졌다고 밝혔다”며 “과도한 통화정책 정상화 우려를 덜어내는 재료로는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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