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퇴임 뒤엔 손배 청구 가능, 의혹 보도 족쇄 우려

중앙일보

입력 2021.08.27 00:04

업데이트 2021.08.2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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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으로는 대한민국 언론에서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폭로 기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2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사위의 특혜 취업 의혹 보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날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사위 서모씨의 타이이스타 특혜 취업 의혹을 제기했다. 타이이스타는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사건’으로 구속된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창업한 이스타항공과 합작을 추진한 태국 항공사다. 이 의원은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직능본부 수석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안 대표가 겨냥한 것은 여권이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언론계·야당·학계·법조계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는 법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주요 내용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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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대통령 가족이나 비선실세 의혹은?=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고위 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일반인을 위한 피해구제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사위 취업 의혹에서 보이듯 권력 감시 대상엔 정치인과 공무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 의혹이 제기된 문 대통령의 사위와 아들, 스펙 의혹으로 도마 위에 오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등은 엄밀히 말하면 일반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최순실)씨 역시 마찬가지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모름지기 법안인데, 누구는 적용하고 누구는 적용 안 해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선출직 공무원을 예외로 둔 것도 독소조항을 제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장차관 등이 임기를 마치거나 교체되면 일반인 신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역대 대통령 관련 의혹 보도는 퇴임 후에도 많은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의혹 보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퇴임 후 관리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법은 심의 과정에서 현직 고위 공직자 및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관련인 등 주요 사회 권력층을 징벌적 손해배상의 청구 가능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전직이나 친인척, 비선실세 등 측근은 여전히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문제는 사회권력에 대한 비판 감시 기능의 약화, 국민의 알 권리 침해로 이어져 결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②피해자 증언 단계에선 보도 불가?=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가장 ‘뜨거운 감자’다. 언론계와 법조계에서는 ‘고의 또는 중과실’을 어떤 기준으로 증명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지난 25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의 제30조2 2항은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 등에 대해서는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했다. 일단 ‘추정’한 뒤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언론사로 전가한 조항이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허위 사실이라는 것도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고 진실임이 확실히 증명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보도가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이 쉬워지면서 언론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미투 보도 등은 충분한 근거가 확보되기 전 피해자의 호소나 몇 가지 자료 등으로 의혹을 제기해 검경의 수사와 재판을 거쳐 진실이 드러난 경우다. 하지만 여권이 추진하는 법안에 따르면 이런 보도가 모두 법정에 오르게 될 수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26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법 때문에 기자들이 용기를 세 번 낼 것을 한 번만 내거나 혹은 사회적 비판·감시·견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위축되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③이의 제기하면 인터넷 기사 삭제?=이번에 신설된 조항에서 기사의 열람차단청구권도 논란의 대상이다.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性的)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그 밖에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 침해하는 경우’ 등에 대해 인터넷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두고 의혹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장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9년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손혜원 전 의원은 줄기차게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해 왔다. 지난해 8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일찍 통과됐다면 최소한 1심 판결 전까지는 관련 보도가 차단됐을 수도 있다.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 건이 된 JTBC ‘태블릿PC’ 보도 역시 열람차단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사 열람이 차단될 경우엔 이미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만큼 의혹 대상자가 이익을 보는 셈이 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기존의 접근 차단 요청은 피해구제에 있는 것인데, 이 법안은 요청만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기사의 세부적 내용에 대해 조정과 중재를 해야 할 텐데 법이 강제로 일괄 정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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