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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은 탈레반 폭정 안 겪게…젊은 부부 입국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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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대한민국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사진 공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대한민국 공군 C-130J 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사진 공군]

아프가니스탄인 378명이 26일 9000㎞ 떨어진 한국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병원·직업훈련원·대사관 등에서 한국과 아프간 재건 사업을 함께했던 현지 조력자들이다.

이들을 태우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을 출발한 공군 다목적 공증급유수송기인 KC-330 시그너스는 이날 오후 4시24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지난 22일부터 닷새간 긴박하게 진행된 ‘미라클(miracle) 작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아프간인 조력자 중 한국행을 택한 이송 대상자는 총 391명이었다. KC-330은 적정 탑승 정원이 330여 명으로, 이들을 한꺼번에 태울 수 없어 선·후발대로 나눠 이송을 진행했다. 선발대 378명은 이날 오전 4시53분 KC-330에 탑승해 먼저 한국에 도착했다. 나머지 13명은 같은 날 오후 7시쯤 한국을 향해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이륙했다. 후발대 13명을 태운 공군 수송기 C-130J는 중간 급유가 필요해 약 17시간을 비행해 이튿날인 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같은 날 공군 공정통제사가 비행기 탑승 전 아프간 아기를 돌보는 모습. [사진 공군]

같은 날 공군 공정통제사가 비행기 탑승 전 아프간 아기를 돌보는 모습. [사진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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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와 방역 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도착한 378명은 수송기에서 내리자마자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공항 내 별도 시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그 뒤 다른 공항 이용자들과 분리되는 별도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와 방역 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로 이동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6~8시간가량 머물게 된다.

양성 판정자는 생활치료센터나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이송되고, 음성 판정자는 충북 진천의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해 2주간의 격리 기간을 포함해 1~2개월간 한국 생활을 위한 기본 교육 등을 받게 된다. 입국 아프간인들은 공항에서 단기체류비자(C-1)를 받았으며, 장기체류비자(F-1)를 거쳐 거주비자(F-2)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이들 중 몇 명이 한국 정착을 희망하는지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분들이 입국해 불편함이 없도록 잘 조치해야 될 것이고, 이후에 이분들이 (한국 정착 등의) 삶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종합계획을 또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391명 중 절반가량인 190여 명은 10세 이하의 영유아나 아동이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송 대상자 중엔 생후 1개월이 되지 않은 신생아가 3명, 5세 이하 영유아가 100여 명, 6~10세 아동이 80여 명이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 아프간 가족이 26일 오후 임시숙소로 지정된 경기도의 한 호텔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 아프간 가족이 26일 오후 임시숙소로 지정된 경기도의 한 호텔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유아와 어린이 비율이 높은 것은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인 중 젊은 부부가 많다는 의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송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으로, 이는 과거 한국대사관 등을 도왔던 분들이 기본적으로 젊은 분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신생아는 항공기 탑승 자체가 걱정됐지만, 현지에서 의료진의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모두 탑승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부모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미성년자들은 과거 1996~2001년 탈레반 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이들의 부모들이 고국을 떠나 한국행을 어렵게 결정한 것은 어린 자녀들에겐 탈레반 폭정을 대물림하지 않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게 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에서 2년4개월간 근무하다 이날 입국한 아프간인 A씨는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아프간을 떠나기로 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며 “가족과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떠나야만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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