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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집까지 구했는데…"채용 취소" 연락

중앙일보

입력

#A씨는 채용 확정 통보를 받고 회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를 위해 부산에서 올라와 회사 근처에 집도 장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던 ‘최종 테스트’를 진행하더니 채용을 취소했다. 교육 기간 때문에 A씨는 다른 구직 기회도 놓쳤다.

#이직을 준비하던 B씨는 지원했던 C회사로부터 합격 연락을 받았다. 채용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기존에 근무하던 직장도 그만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C회사로부터 채용 취소 통보가 날아왔다.

#D씨는 회사 면접 뒤 최종 합격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합격 사실을 명시한 e-메일도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26일 공개한 채용 취소 사례들이다. 채용 취소를 당한 이들은 정신적 충격, 자괴감, 우울, 허탈, 불안감, 억울함, 분노, 창피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이도 있었다. 한 사례자는 “어디에서든 저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우울, 자괴감이 들고 구직 의욕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이 26일 연 '청년 채용취소 사례 및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청년유니온이 26일 연 '청년 채용취소 사례 및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청년유니온이 지난 5~6월 구직 경험이 있는 만 15~39세 청년 2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9%가 채용취소에 대해 듣거나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코로나 확산 후 채용 취소 증가”

특히 응답자의 82.1%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채용 취소가 증가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등 경기 침체를 이유로 기업들이 채용취소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매우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각각 14.3%·28.2%를 차지했다. ‘매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각각 6.8%·32.1%로 나타났다.

‘채용취소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는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이기 때문'이 41.1%로 가장 많았고, '취소에 대한 피해를 구직자가 전부 부담하기 때문'(24.3%), '구직자가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21.8%) 순으로 집계됐다. 채용 취소 및 지연 시 피해에 대해선 응답자의 반 이상인 158명이 ‘다른 기업 지원 및 입사 기회 놓침’을 가장 많이 꼽았다. ‘소득 공백으로 인한 생활비 부족’은 118명이, 73명은 ‘정신적 충격 및 스트레스’를, 61명은 ‘구직 의욕 상실’을, 59명은 ‘이직을 위해 기존 회사에서 퇴사’를 선택했다.

채용이 취소되거나 지연됐을 때 대처 방식과 관련해선 절반에 가까운 49.6%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노동단체 및 기관에 상담을 받아본다’(16.4%), ‘가족 또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한다’(13.9%), ‘커뮤니티 등에 채용취소 사실을 알린다’(7.9%), ‘해당 기업에 직접 항의한다’(7.5%), ‘법적 절차를 밟는다’(4.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김강호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코로나19 이후 채용취소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법률상 채용 확정 후 채용취소를 당하면 부당해고로 다퉈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청년들은 구직활동에 소요되는 시간과 금전적 문제를 이유로 법률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채용취소로 발생한 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 방안,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사항에 대한 실태조사, 채용취소에 대한 인사담당자의 인식제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학교에서 대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붙은 취업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서울의 한 학교에서 대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붙은 취업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채용 내정 후 취소는 손해배상 책임”

권오성 성신여대 법대 교수(변호사)는 “근로계약 성립 이후 채용내정을 취소한 때에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한다”며 “사용자가 상당 기간 채용 내정 상태에서 본 채용을 하지 않은 후 채용을 취소했다면 채용 내정자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고 봤다.

직장갑질119의 권남표 노무사는 지난 15년간(2006~2020년) 노동위원회가 게재한 채용내정 취소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100건 중 부당해고로 인정된 비율은 31%(31건)이라고 밝혔다. 출근일자와 출근장소를 사용자로부터 확인받고, 사용자가 문자메시지로 “근무해주시면 될”것이라고 고지를 한 사례, 카카오톡으로 “면접이 완료되었으며 임용되셨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사례 등이다. 권 노무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문자메시지, 구두, 카카오톡 메시지 등의 방식으로 근로자가 계약이 체결됐음을 진실로서 믿을 수 밖에 없는 경우라면 채용 내정이 존재하여 근로계약 관계가 유효하게 성립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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