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도, 지구도 해치는 담배…숨은 플라스틱 '끝판왕'입니다

내 몸도, 지구도 해치는 담배…숨은 플라스틱 '끝판왕'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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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 인근 공터에 수많은 담배 꽁초가 그냥 버려진 모습. 길거리 담배 꽁초는 하수도 등을 거쳐 바다나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뉴스1

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 인근 공터에 수많은 담배 꽁초가 그냥 버려진 모습. 길거리 담배 꽁초는 하수도 등을 거쳐 바다나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뉴스1

지난해 55개국 1만4734명이 쓰레기 치우기에 뛰어들었다. 매년 국제 환경단체 주도로 이뤄지는 시민 참여형 환경 정화 캠페인의 일환이다. 이들은 34만개가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했다.

[플라스틱 어스 2부] 5회 #궐련도, 전자담배도 결국 유해 폐기물

수거한 쓰레기를 분류해보면, 배출되는 전체 쓰레기의 종류와 양상도 유추해볼 수 있다. 세계 시민들이 가장 많이 수거한 쓰레기 품목은 바로 일회용 컵 뚜껑 등 '일회용 음식 포장재'(20만3427개)였다. 그다음으로 많은 건 담배꽁초, 라이터 같은 담배용품(7만2342개)이다. 국적을 막론하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폐기물이 바로 음식 포장재와 담배라는 의미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평소 흡연은 건강ㆍ보건 이슈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담배는 '나'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과도 직결된다. 담배를 제조할 때, 흡연할 때, 다 피운 담배를 버릴 때…. 담배의 전 일생이 환경을 공격한다.

담배 제조 시 유해 물질이 대거 나오고, 숲도 파괴한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트루스 이니셔티브'(Truth Initiative)가 지난 3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미국 담배 공장에서만 94만8327파운드(약 430t)의 독성 화학 물질이 배출됐다. 해마다 담배 생산을 위해 약 6억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간다. 나무 한 그루당 담배 15갑을 만들 정도의 종이가 나온다고 한다.

궐련, 전자담배 등 담배로 인한 폐기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궐련, 전자담배 등 담배로 인한 폐기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담배 피울 때 나오는 연기도 공기를 오염시킨다. 담배를 태우면 발암 물질과 미세먼지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직접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흡연자 근처에서 유해한 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이 대표적 피해 사례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지적받는 건 담배 폐기물이다. 특히 담배 속엔 플라스틱이 숨어 있어 환경 파괴 주범으로 꼽힌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용이 늘고 있는 전자담배도, 길거리에서 발에 채는 궐련 꽁초도 처치 곤란한 유해성 쓰레기다.

솜으로 오해하기 쉬운 궐련 필터는 대부분 플라스틱의 일종인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Cellulose Acetate)로 만들어진다. 필터 하나에 1만2000개 정도의 가는 플라스틱 섬유가 들어있다고 한다.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완전히 썩기 쉽지 않은 데다 별도 처리 없이 막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하수관 등을 거쳐 바다와 하천으로 향한다. 그리곤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지중해 해변에서 수거한 담배 꽁초가 비닐봉지에 가득 쌓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지중해 해변에서 수거한 담배 꽁초가 비닐봉지에 가득 쌓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 해 6조2500억 개비의 담배가 소비된다. 그리고 담배꽁초의 3분의 1은 바다와 해변에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해변 청소 활동에 나서는 환경단체 '해양 보호'(Ocean Conservancy)가 2019년 한 해 동안 바닷가에서 수거한 담배꽁초는 421만1962개에 달한다. 수거된 전체 쓰레기 수의 13%다.

전자담배 폐기물은 더 복잡하다. 많은 제품 속에 금속과 회로, 일회용 플라스틱 카트리지, 배터리, 액상 속 화학물질 등이 혼재돼 있다. 궐련보다 더 큰 환경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업체는 소비자에게 오래된 기기나 카트리지의 올바른 폐기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담배 사용자마다 종량제 봉투, 플라스틱 분리배출 등 버리는 법이 제각각이다. 트루스 이니셔티브가 미국 내 15~24세 3757명에게 다 쓴 카트리지 등의 처리법을 물었더니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 51%, '일반 재활용 분리 배출한다' 17%, '길거리에 버린다' 10% 등이었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체형 제품 속 리튬 배터리는 폭발 우려가 있어 재활용 시설에서 파쇄하기 쉽지 않다. 아무 데나 버려진 카트리지는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제품의 배출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규정은 사실상 없다.

사용 후 버려진 전자담배 쓰레기. 사진 트루스 이니셔티브

사용 후 버려진 전자담배 쓰레기. 사진 트루스 이니셔티브

유럽연합(EU) 의회에선 궐련의 플라스틱 함유 필터를 2025년까지 절반으로, 2030년까지 80% 줄이도록 규정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들은 규제뿐 아니라 담배꽁초를 퇴비로 쓰거나 재활용하는 신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선다. 담배 업계에 쓰레기 청소 비용을 부담시키자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정세미 연구원은 2018년 'KMI 월간동향' 보고서를 통해 "국내서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담배 필터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일부 업체는 필터를 생분해성 재료로 교체 중이며, 흙이나 물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유기물 필터 개발도 성공했다. 이를 고려해 플라스틱 필터 담배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거나 유기물 필터 개발을 지원하는 등의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담배꽁초가 자연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사전에 차단하는 기술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내 기업인 '월드탑믹스'는 친환경 그레이팅(도로변 배수구 쇠창살)을 개발해 2019년 특허를 얻었다. 현재 경기도 내 공원, 학교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빈틈이 많은 기존 그레이팅과 달리 쇠로 된 틀 안에 돌을 부순 골재를 친환경 접착제로 붙여 채워 넣었다. 물은 절반가량 통과하는 반면 담배꽁초, 낙엽 등은 배수구로 들어가지 못한다. 꽁초로 배수구가 막히지 않고, 바다·하천으로 이동해 미세 플라스틱이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윤기로 월드탑믹스 대표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배수구 청소를 하지 않아도 돼 유지비도 대폭 절감된다"면서 "앞으로 그레이팅에 골재 대신 재활용 플라스틱 칩을 채우는 것도 연구,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길거리에 친환경 그레이팅이 설치된 모습. 물은 잘 통과하지만 담배 꽁초는 들어가지 못 한다. 사진 월드탑믹스

길거리에 친환경 그레이팅이 설치된 모습. 물은 잘 통과하지만 담배 꽁초는 들어가지 못 한다. 사진 월드탑믹스

'환경의 적'이라는 담배,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답은 뭘까. 이성규 한국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흡연자의 인식 변화와 금연부터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궁극적으로는 담배를 끊는 게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는 길"이라면서 "당장은 흡연자들에게 '담배도 쓰레기'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 실외 흡연 공간은 비공식적인 곳이 많고 쓰레기통도 잘 없는데, 근처에 플라스틱 버리는 곳이라도 표시해주면 인식 개선을 유도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정책적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홍 소장은 "현재 담배에 폐기물부담금(20개비/20카트리지당 24.4원)을 매기고 있는데, 길거리 담배꽁초를 줄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담배 회사가 꽁초 투기를 막기 위한 인프라에 투자하는 걸 전제로 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식의 대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담배에 대해선 "부피가 작거나 리튬 배터리를 빼는 문제가 있어서 분리배출 자체가 어려운 편이다. 제품당 보증금을 1000원이라도 붙인 뒤 거점 시설에 따로 수거해서 관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특별취재팀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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