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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 대신 아메리카노, 돼지머리 대신 채식…"난 90년생 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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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무당 홍칼리. [사진 홍칼리 제공]

젊은 무당 홍칼리. [사진 홍칼리 제공]

“신방(神房) 대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점사를 봐요. 색색의 한복 대신 편안한 면바지를 입고, 사람들을 쏘아보면서 호통을 치지도 않아요. 제 눈은 동그랗고, 점사는 존댓말로 보죠.”

홍칼리는 1990년생 무당이다. “3년 전 인도에서 신이 몸을 통해 말하는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내림굿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강신무(降神巫)의 이야기다. 하지만 90년생 무당은 다르다. 네이버로 예약을 받고 카카오톡으로도 상담을 한다. 유튜브를 통해 주별 운세를 알려준다. “월~금요일, 하루 9시간 근무한다”고 했다.

홍칼리는 자신의 무당 이야기를 담은 『신령님이 보고 계셔』(위즈덤하우스)를 28일 출간한다. 그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무당이고 싶다. 사람들의 사연을 묻고 듣고 싶다”고 했다.

홍칼리는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녔던 무당이고, 환경 운동에 참여하며, 스스로 성정체성이 확정적이지 않은 퀴어 무당이다. 굿상의 돼지머리에 반대하고 채식을 하는 무당이다. 페미니즘, 장애학을 공부하며 글을 쓴다. “내림굿을 해주신 ‘신 선생님’과도 갈등이 있었어요. 어떤 존재의 복을 빌 때 다른 존재의 희생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 땅에는 동물들의 한도 너무 많은데 무당마저 그 고통을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그는 “각자의 방식대로 기도하면서 되죠”라고 덧붙였다.

삶에 대해 묻고 싶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해주는 상담의 내용도 다르다. “요즘은 말 그대로 ‘다른 해석’을 듣고 싶어 오는 분들이 많다”며 “옛날에 ‘남편 잡아먹는 팔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오는 분들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 경우 문제는 ‘상관(傷官)’이라는 글자인데 남자 사주에 있으면 큰 뜻을 펼치고, 여성에게 있으면 ‘남편을 친다’고 해석했어요. 상담하는 사람은 해석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편견을 가져서는 안되고 더 조심스러워야죠.”

이번이 네번째 책이다. 여성의 성(性)에 대한 『붉은 선』(글항아리), 거리의 예술가로 쓴 에세이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김영사), 어머니와 여행하며 함께 쓴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봄름)를 본명인 홍승희로 출간했다. 무당으로서는 첫 책이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가난한 계급으로, 여러 차별을 겪으며 살았어요. 도망갈 곳이 필요했는데 처음 찾은 게 ‘종이’였어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래도 해결 안된 갈증이 있어 무당이 된 것 같아요. 글 쓰기는 여전히 해방 그 자체에요.”

홍칼리는 기존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신령을 대하는 젊은 무당의 대표격이다. 그는 변화하는 젊은 무당들이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많이 있다고 전했다. “무당이었다 은퇴한 10대도 있고, 막 신내림을 받은 스무 살 친구도 있어요. 한국에서 무당이 아직도 금기로 여겨져 눈에 덜 띄죠. 미디어에서 무당을 전형적 연령, 성별, 이미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한달에 하루씩 예약 시스템을 오픈하는데, 한달치가 꽉 찬다고 했다. “힘든 시기일수록 사람들이 무당을 찾죠. 상담 예약이 많을 때마다 모두가 덜 아프도록 기도를 해요.” 그는 “무당의 어원이 ‘묻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영혼의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동네마다 있는 그런 용한 무당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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