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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그토록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을 위태롭게 하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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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1894년 프랑스와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드레퓌스 대위 사건이다. 그에게 군사기밀을 빼돌려 독일에 넘겨주는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사형이 내려졌다. 독일과 벌인 보불전쟁에서 굴욕적 참패를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프랑스 국민의 분노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집권세력을 향했다. 궁지에 몰리던 정부는 드레퓌스를 돌파구로 삼았다. 그가 정통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 정서에 거슬리는 유대인이어서 희생양 삼기 좋았다.

그러나 그는 진범이 아니었다. 그를 함정에 빠트리려 위조했던 문서가 발견되고 무죄를 입증할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동가들은 군중의 광기를 부채질했다. 명백한 눈앞의 증거를 두고도 친(親)드레퓌스 vs 반(反)드레퓌스로 두 동강 난 국민은 서로 물어뜯으며 혐오를 키웠다. 좌익 vs 우익, 왕정파 vs 공화파, 교권주의 vs 세속주의, 반유대파 vs 시오니즘의 대결이 내전을 방불케했다.

무능·위선 추궁이 두려운 집권세력
언론 혐오 키워 대중의 분노 투사
민주주의 역사 위태롭게 만들고
세계 조롱받는 언론악법 철회돼야

100년도 더 지난 남의 나라 일을 소환한 건, 지금 이 나라 집권세력이 벌이는 광기의 정치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라를 둘로 쪼개놓더니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언론징벌법’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있다. 여태도 상흔이 아물지 않은 ‘조국 내전’은 드레퓌스 사건과 닮았다. 정권의 열렬 지지층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을 검찰과 언론이 공모한 불의의 합작품이라고 매도한다. 드레퓌스의 반역으로 프랑스가 굴욕을 당했다는 도그마에 빠져 집단 착란을 일으켰던 것과 유사하다. 무능과 부패, 실정에 대한 국민의 추궁이 두려운 집권세력은 검찰과 언론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키웠다. 딸 조민 의혹이 보도된 2019년, 조 전 장관은 “인턴십 관련 서류를 제가 만들었다는 보도는 정말 악의적이다. 여러 과장 보도를 감수해왔지만, 이건 정말 참기 어렵다. 법적 조치를 고민중”이라고 했다.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혁” 구호가 그즈음 나오기 시작한 게 우연이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악의적 보도’라던 그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입시비리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조민의 7대 학력 스펙이 허위라고 판단, 징역형을 선고했다. 정 교수의 변호인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서류는 당시 주무교수이던 조국 전 장관이 그간의 활동을 고려해 재량으로 써준 것”이라며 ‘셀프 위조’를 증언했다. 딸은 의전원 합격이 취소됐다.

정권의 하산길, 막았던 둑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부동산,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청년실업, 비정규직, 북핵 문제와 코로나 백신 대응까지. “이 정부가 잘한 정책이 하나라도 있느냐”는 절규와 “180석이나 몰아줬는데 뭘 하는 것인가”하는 아우성이 뒤범벅됐다. 위기를 느낀 정권은 불행하게도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성찰과 사죄 대신 열렬 지지층의 분노에 기대 ‘드레퓌스’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기레기’라는 멸시를 받는 언론에 ‘가짜뉴스’에 신물 난 대중의 분노를 투사시키는 비열한 수법이다. 국회 법사위는 전 세계 민주국가들이 조롱하고, 국내의 진보 언론·학자·법조인들까지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한밤중에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검찰개혁이 그랬듯이 ‘가짜뉴스 피해 보호’라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말로 드러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가짜뉴스의 진원지인 1인 미디어·유튜브를 쏙 빼놓고 어떻게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또 5배의 징벌적 배상을 하게 하고, 뉴스열람 차단을 청구하면 해당 뉴스를 삭제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대통령·총리·장관·국회의원·판검사 등은 피해구제 대상이 아니니 권력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법이 발효되는 시점은 내년 대선 뒤부터다. 5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직 신분이 되는 대통령을 비롯해 이 정권 사람들이 첫번째 수혜자가 될 테다. 이 법이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명확해진다.

다시 드레퓌스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비극으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걸출한 작가 에밀 졸라의 투쟁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그 유명한 글 ‘나는 고발한다’ 가 ‘로로르(L ’Aurore)’ 1면에 실리면서 반전이 일어난다.에밀 졸라는 피로 이룬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관용의 정신,평등의 정의,시민의 연대와 우정이란 가치가 내동댕이쳐지는 비극을 열거하며 프랑스인의 지성에 호소했다. 1898년 1월 13일자 신문은 평소의 10배가 넘는 30만부를 찍었지만 순식간에 동나면서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에밀 졸라는 기소되고 살해의 위협을 느끼지만 펜을 꺾지 않았다. 대신 “진실에 입을 다물고 그것을 땅 아래 묻으면 진실은 거기서 자라날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언론중재법은 비단 언론과 언론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반세기 넘게 흘려온 국민의 피와 땀을 물거품 만들어 자존심을 짓밟고, 자랑스런 민주주의 역사를 위태롭게 만드는 치욕을 안겨줄 것이다. 권력의 광기가 낳은 언론재갈법이 즉각 철회돼야 하는 이유다. 이 법을 밀어붙여 온 사람들에겐 ‘나는 고발한다’의 일독을 권한다. 거기엔 이런 말도 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그토록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