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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 플레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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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길티 플레저’는 영어 길티(guilty·죄책감이 드는)와 플레저(pleasure·즐거움)를 합성한 신조어다. 어떤 일을 할 때 죄책감·죄의식을 느끼지만, 또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으로 쓰였다면 ‘조커’(사진) 같은 사이코 살인마를 떠올리겠지만, 이 신조어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죄’의 종류들은 대부분 소소하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SNS 대화, 또는 TV 예능프로그램 자막에선 오히려 반전매력을 위한 가벼운 고해성사로 이용될 때도 잦다. 학창시절 부모님 몰래 만화방 가기, 자율학습 땡땡이치기, 수업시간 야한 잡지 보기 등을 해본 적 있다고 고백하는 건 나쁜 짓을 했다기보다 어른들이 하지 마라니까 일부러 삐딱하게 행동해서 ‘반항의 달콤함’을 즐겨봤다는 일종의 자랑이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악취미를 즐기거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을 설명할 때도 쓰인다. 남들이 알면 부끄럽고 민망한, 또는 스스로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상황을 즐기는 취향과 태도를 비꼬거나 자조하는 경우다. ‘막장 드라마’라 욕하면서 실은 본방송 시청이 일상이고, ‘인생 샷’을 위해 수시로 출입금지 구역을 드나들고, 클래식이 아니면 음악도 아니라면서 휴대폰 앱은 트로트로 꽉 차 있는 사람들. 다만, 이 경우도 남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다.

사실 죄책감과 기쁨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디지털 ‘댓글’이 익명으로 화를 배설할 수 있는 쓰레기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개구리에게 던지는 돌이 될 수도 있다. 신조어 사용에 좀 더 신중하길 바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