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희숙, 대선 포기…의원직도 사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윤희숙

윤희숙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사진) 국민의힘(서울 서초갑) 의원이 25일 의원직 사퇴와 대선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권익위의 부동산 전수조사와 관련된 여야 의원 가운데 자진해서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건 그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윤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익위 조사는 야당 의원을 흠집 내려는 의도”라면서도 “이 시간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 또 의원직도 다시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 12명이 본인이나 가족과 관련한 부동산 불법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윤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명단에 포함됐다. 권익위에 따르면 윤 의원의 부친은 2016년 세종시에 있는 논 1만871㎡를 샀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다. 권익위는 또 “윤 의원의 부친이 현지 조사가 이뤄질 때만 서울 동대문구에서 세종시로 주소지를 옮겼다”며 주민등록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봤다.

윤희숙 “정치인 도덕성 기준 높아야 … 이게 내 정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25일 국회에서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윤희숙 의원을 만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3일 윤 의원을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 12명에 대한 부동산 불법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김경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25일 국회에서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윤희숙 의원을 만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3일 윤 의원을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 12명에 대한 부동산 불법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김경록 기자

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26년 전 결혼한 뒤 아버지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윤 의원 소명을 받아들이고 탈당이나 제명 등 징계 의원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전날 의원직 사퇴 의사를 확인한 당 지도부가 수차례 만류했지만, 윤 의원은 이날 뜻을 굽히지 않고 회견장에 섰다.

윤 의원은 사퇴 이유에 대해 “당에서 혐의를 벗겨줬으나 우스꽝스러운 조사로 정권교체 명분을 희화화시킬 명분을 제공해 대선 전투의 축을 허물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대선후보와 치열하게 싸워 온 내가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저를 성원해 준 당원들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회견장을 찾은 이준석 대표와 만난 윤 의원은 눈물을 흘리며 “이게 내 정치”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의 경제 전문가인 윤 의원은 지난해 7월 민주당이 집값을 잡겠다며 ‘임대차3법’을 밀어붙이자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신청해 “나는 임차인”이라며 민주당식 부동산 규제의 부작용을 지적해 화제가 됐다.

윤 의원은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정치인에겐 도덕성 기준이 높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통의 국민보다 못한 도덕성과 자질을 가진 정치인들을 국민이 그냥 포기하고 용인한다. 다 그러려니 하고 포기한다”면서다. 그는 이어 “여당 대선후보를 보면 쌍욕에 음주운전, 사이코 먹방까지 국민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낮은 도덕성 수준인데 국민께서 포기한 것 아닌가. 우리 당도 다르지 않다. 4년 전 대선 때 우리 당이 없어져야 하는 정당이라고 조롱한 분이 대선후보로 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런 모습을 바꿔보겠다고 대선에 출마했다. 제가 여기서 꺾이지만 국민이 보시고 정치인을 평가할 때 도덕성 자질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치에 죽비” "더 크게 쓰일 것”  

그는 “(의원직 사퇴안이) 본회의에서 통과 안 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란 말도 있다”는 물음엔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야권에선 당 지도부부터 대선주자들까지 나서 사퇴를 말렸다. 이준석 대표는 “문명사회에서 가장 야만으로 생각했던 연좌의 형태”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윤희숙이라는 가장 잘 벼린 칼은 국회에 있을 때 그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며 거듭 만류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따로 기자들을 만나 “권익위야말로 심판의 대상이다. 야당에 좀 더 가혹하게 하기 위해 의도된 각본에 따라 민주당과 같은 수로 조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민주당 의원 12명에게 부동산 불법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었다.

대선주자들도 하나같이 윤 의원의 편에서 권익위를 비난하며 사퇴 철회를 요구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경제정책 수립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분인데 많은 분의 바람처럼 그 뜻을 거둬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윤 의원의 경선 후보 사퇴와 의원직 반납 모두를 반대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따로 모인 국민의힘 초선 의원 31명은 “윤 의원의 선당후사 정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정권교체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

정치권 밖에서도 윤 의원 결정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잘 하셨다. 나중에 더 크게 쓰일 것”이라고 썼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신선한 충격. 감동이 사라져버린 한국 정치에 죽비를 때리다”고 평가하면서 “‘정치인 윤희숙’은 지금은 죽는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피해자 코스프레, 사퇴 쇼”

야권의 평가와 정반대로 여당은 윤 전 의원을 맹비난했다. 기본소득 정책 등으로 윤 의원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재명 경기지사 캠프는 “속 보이는 사퇴 쇼”(김남준 대변인)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에선 “의원직 사퇴를 내세우며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를 벌인다”(신동근 의원), “사퇴 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정청래 의원) 등 비꼬는 듯한 반응이 많았다.

윤 의원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본회의에서 사직서 안건이 올라올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직 사직서는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는데,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이 찬성할 경우 가결된다.

공을 넘겨받게 되는 민주당은 안건이 가결될 경우 자당 의원 탈당 조치를 이행하지 못한 데 대한 내로남불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민주당은 권익위 조사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비례대표 윤미향·양이원영 의원을 출당 조치했지만 둘은 무소속 상태로 의원직이 유지되고 있고, 투기 의혹이 불거진 나머지 10명은 송영길 대표가 탈당을 공언했지만 실현된 사례는 없다. 윤 의원의 사퇴 선언은 흑석동 건물 매매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이 제기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반발한 것과도 대비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 입장에선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탈당을 요구하거나 제명을 결정한 나머지 의원 5명(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한무경)의 거취 문제가 숙제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곧 구성되는 당 윤리위에서 이 건을 다루지 않기를 바란다”며 거듭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