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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물음표를 던지는 문제작”…진짜 AI가 쓴 소설 맞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태연 소설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연 소설감독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북카페. 비대면으로 열린 기자간담회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국내 최초 AI로 쓴 장편소설’을 표방하는 『지금부터의 세계』의 김태연 소설감독과 출판사 파람북의 정해종 대표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진짜 AI가 쓴 소설이 맞냐는 의문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였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소설『지금부터의 세계』의 작가는 AI ‘비람풍’이다. ‘비람풍’은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을 의미하며, 문학사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소설을 기획하고 풀어낸 김태연 작가에게는 ‘소설감독’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붙였다. “주제와 소재, 배경과 캐릭터를 선정하고 스토리보드를 담당하는, 영화에서의 감독과 비슷한 역할”이다.

1960년생인 김태연 소설감독은 『폐쇄병동』『그림 같은 시절』『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등의 소설을 낸 소설가다. 연세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했고, 1989년부터 5년가량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전문위원을 지냈다. “1970년대 중후반 부산에서 5년간 원자폭탄 설계를 연구했다”고도 했다.

그는 2014년 8월 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해 세계적인 수학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감을 잡고 2015년 언어 인공지능 스타트업 ‘다품다’를 출범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이무기 교수가 운영하는 자연어 처리 스타트업 나매쓰’와 손을 잡고 AI의 장편소설 집필에 성공했다. “소설가는 차원 높은 것에 집중하고 단순노동은 AI에 맡겨보자”는 게 그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목적이었다.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그는 “현재 AI의 역할은 ‘대필작가’에 가깝다“면서 “시공간이나 인물ㆍ이야기 등 전체적인 구성을 짜주면, AI는 그에 맞춰 세부적인 이야기를 채운다”고 했다.

일례로 “소설 속 인물 ‘이미지’가 할아버지 집에 가는 이야기를 쓰라”고 ‘소설감독’인 그가 지시했을 때, AI는 이 대목을 이렇게 풀어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할아버지가 소나무 분재, 느티나무 분재, 주목나무 분재 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거실에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서성이다가 이미지에게 하소연한다. 무슨 일인가 싶다. 그사이 할아버지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다녀오는 등 여기저기 백방으로 알아보았다고 했다. 벼락 맞은 감태나무로 만들었다는 연수목 지팡이 바닥이 닳도록. 급히 알아보고 손쓸 곳을 모조리 훑었는데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나왔다.”(책 30쪽)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세부 내용 묘사가 너무 많아 보이긴 했지만, 굉장한 성과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김태연 소설감독은 보안 등을 이유로 ‘다품다’ ‘나매쓰’ 등의 실체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무기 교수’ ‘나매쓰’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가명이라고 밝혔다.

활용한 기술에 대해서도 “기술 부분은 노하우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동서양 고전과 자신이 썼던 소설 등 1000여 권의 자료를 입력해 AI의 딥러닝 소스로 활용했고, 실리콘 밸리의 기술도 썼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7년여. 예술성ㆍ문학성에 대해서는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문열 소설가는 “무수한 물음표를 던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이라고 했다.

한편 책을 낸 출판사 정해종 대표는 “지난 6월 작가가 원고를 갖고 찾아왔다. AI를 활용해 소설을 집필하는 실제 작업 과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어진 대화를 통해 AI 창작의 진실성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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