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에 죽비" vs "사퇴쇼" 윤희숙 사퇴에 갈라진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2021.08.25 18:49

업데이트 2021.08.25 19:50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국민의힘(서울 서초갑) 의원이 25일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권익위의 부동산 전수조사와 관련된 여야 의원 가운데 자진해서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건 그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윤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익위 조사는 야당 의원을 흠집 내려는 의도”라면서도 “이 시간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 또 국회의원직도 다시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 12명이 본인이나 가족과 관련한 부동산 불법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윤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명단에 포함됐다. 권익위에 따르면 윤 의원 부친은 2016년 세종시에 있는 논 1만 871㎡를 샀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다. 농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권익위는 또 “윤 의원 부친이 현지 조사가 이뤄질 때만 서울 동대문구에서 세종시로 주소지를 옮겼다”며 주민등록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봤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26년 전 결혼한 뒤 아버지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윤 의원 소명을 받아들이고 탈당이나 제명을 결정한 의원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전날 의원직 사퇴 의사를 확인한 당 지도부가 수차례 만류했지만, 윤 의원은 이날 뜻을 굽히지 않고 회견장에 섰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 의원은 사퇴 이유에 대해 “당에서 혐의를 벗겨줬으나 우스꽝스러운 조사로 정권교체 명분을 희화화시킬 명분을 제공해 축을 허물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록 저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대선후보와 치열하게 싸워온 내가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저를 성원해준 당원들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의 경제 전문가인 윤 의원은 지난해 7월 민주당이 집값을 잡겠다며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이자 본회의 5분 자유 발언을 신청해 “나는 임차인”이라며 민주당식 부동산 규제의 부작용을 지적해 화제가 됐다. 최근엔 당내 유일한 여성 대선 주자로 나서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책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회견 뒤 윤 의원은 “(자진 사퇴안이) 본회의에서 통과 안 될 가능성도 있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답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직 사퇴 허가 여부는 본회의 표결로 결정하는데,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폐회 중에는 국회의장이 허가할 수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란 말도 있다”는 물음엔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25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및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장을 찾은 이준석 대표가 윤 의원의 손을 잡고 사퇴 의사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25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및 대선후보 사퇴 기자회견장을 찾은 이준석 대표가 윤 의원의 손을 잡고 사퇴 의사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야권에선 당 지도부부터 대선주자, 초선의원들까지 나서 윤 의원의 사퇴를 말렸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이준석 대표는 “문명사회에서 가장 야만으로 생각했던 연좌의 형태”라고 눈물을 흘렸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아버지의 부동산을 이유로 그를 투기 의혹 명단에 올린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러면서 “윤희숙이라는 가장 잘 벼린 칼은 국회에 있을 때 가장 그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며 거듭 만류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따로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결정을 하는 권익위야말로 심판의 대상이다. 야당에 좀 더 가혹하게 하기 위해 의도된 각본에 따라 민주당과 같은 수로 조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민주당 의원 12명에 부동산 불법 의혹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선주자들도 하나같이 윤 의원의 편에서 권익위를 비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당 대선 주자들의 비전발표회를 마친 뒤 “경제정책 수립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분인데, 많은 분의 바람처럼 그 뜻을 거둬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이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여권 후보들에게 촌철살인의 비판을 해왔던 것과 이번 조사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냐"며 권익위를 비판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윤 의원의 경선 후보 사퇴와 의원직 반납 모두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국회서 따로 모인 국민의힘 초선 의원 31명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권익위의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윤 의원의 선당후사 정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정권 교체에 앞장서달라"고 요청했다.

정치권 밖에서도 윤 의원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하셨다. 나중에 더 크게 쓰일 것”이라고 썼고, "감동이 사라져버린 한국 정치에 죽비를 때리다”라고 평가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정치인 윤희숙’은 지금은 죽는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권의 평가와 정반대로 여당은 윤 전 의원을 맹비난했다. 기본 소득 등으로 윤 의원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재명 캠프는 "사퇴 쇼"(김남준 대변인)라고 평가절하했고, "의원직 사퇴를 내세우며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를 벌인다"(신동근 민주당 의원) 같은 반응이 많았다.

국민의힘 지도부 입장에선 윤 의원의 사퇴 의사를 만류하는 것 외에 탈당을 요구하거나 제명을 결정한 나머지 5명(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한무경)의 거취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곧 구성되는 당 윤리위에서 이 건을 다루지 않기를 바란다”며 거듭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다만 이들이 모두 당적을 버릴 경우 개헌저지선(101석)이 무너질 수 있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당 소속 의원이 현재 104명인데 제명·탈당 권유 처분을 받은 의원 6명이 전부 당을 나가면 대여 투쟁 전선이 흔들린다”고 우려했다. 징계 대상이 된 의원들도 대부분 “정치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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