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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록밴드' 英 롤링스톤스 드러머, 찰리 와츠 사망

중앙일보

입력

롤링스톤즈 드러머 찰리 와츠. AP=연합뉴스

롤링스톤즈 드러머 찰리 와츠. AP=연합뉴스

'사상 최강의 록밴드'로 꼽히는 롤링스톤즈에서 60년 가까이 드럼을 연주해온 찰리 와츠가 별세했다. 80세.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등은 24일(현지시간) 와츠가 런던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와츠의 홍보담당자 버나드 도허티는 "(찰리 와츠가) 런던에 있는 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며 "찰리는 소중한 남편이자 아버지·할아버지였으며 롤링스톤스의 멤버로서도 그의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드러머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와츠는 최근 기력이 쇠해 올해 롤링스톤스 투어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와츠는 비틀스의 '링고 스타', 더 후의 '키스 문' 등과 함께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러머 중 한명으로 꼽힌다. 특히 재즈 영향을 받은 연주로, 롤링스톤스의 음악에 개성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3년 롤링스톤즈 멤버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이 찰리 왓츠. AFP=연합뉴스

지난 2003년 롤링스톤즈 멤버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이 찰리 왓츠. AFP=연합뉴스

194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한참 재즈에 빠져있던 13세 시절, 드럼을 선물 받으며 드러머의 길에 들어선다. 찰리 파커와 함께 듀크 엘링턴 등의 레코드에 맞춰 드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일했고, 22세 때 롤링스톤즈에 합류한다.

그의 연주는 화려하거나 폭발적이진 않았다. 대신 묵묵히 곡 전체를 이끌어갔다. 팀의 스포트라이트는 보컬인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와츠의 존재감은 롤링스톤즈의 수많은 명곡에 묵묵히 남아있다.

'홍키통크우먼'에선 카우벨로 곡 전체의 인상을 만들어나갔고, '페인트 잇 블랙'에서는 록 음악사에 길이 남길 명연주를 선보였다. 그가 참여한 롤링스톤즈의 스튜디오 앨범 30장 중 9장이 미국 차트 정상에 올랐고, 와츠는 89년 롤링 스톤즈 멤버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록스타였지만, 사춘기 시절 매료됐던 재즈에 대한 사랑도 멈추지 않았다. 롤링스톤즈에 몸담으면서도 재즈 관련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 자신이 이끄는 재즈 밴드에서도 활동했고, 90년대에는 '찰리 와츠퀸텟'이라는 이름의 재즈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와츠는 생전 인터뷰에서 50년대 사망한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를 언급하며 "블루 노트나 버드랜드 같은 뉴욕 재즈 클럽 무대에서 파커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일생의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드럼계 최고의 패셔니스타로도 꼽혔다. 미국의 연예 패션 매거진베터니 페어(Vanity Fair)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성 중 한 명"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한편 62년 결성된 롤링스톤스는 전 세계적 인기를 받은 밴드다.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정반대의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거칠고 반항적이며, 퇴폐적인 느낌으로 록다운 록을 들려주는 밴드라는 평가다. 특히 디스코·레게·컨츄리·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며 팬들의 인기를 끌어왔다.

와츠의 사망이 알려지자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와 엘튼 존 등 세계적 음악인들은 그의 사망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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