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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진천이냐" 불만에도…그들이 아프간 391명 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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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인근에서 한국의 외교관이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인근에서 한국의 외교관이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우한 교민 이어 아프간인 조력자 380명 수용

“우리도 6·25를 겪었습니다.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

박윤진(65) 충북 진천군 덕산읍이장협의회장은 25일 충북혁신도시 출장소에서 열린 정부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인 391명이 충북혁신도시 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임시로 머물게 됐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주민 대표들과 난상토론 끝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우리도 6·25 전쟁을 겪은 아픔이 있고, 과거 외국에서 인도적 차원의 도움을 받은 적 있다”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많다는 말을 듣고 반발 여론이 수그러들었다”고 했다.

인재개발원은 지난해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우한(武漢) 교민 170여 명을 수용했던 곳이다. 수용 당시 진천군 주민은 인재개발원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 교육시설 10곳이 몰려있다며 반발했으나 입소 직전 “(정부) 방역에 협조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혁신도시 주변 진천 덕산읍, 음성 맹동면 주민들은 지난 24일 “아프간인이 진천에 온다”는 방침을 듣고, 이날 오후 4시30분쯤 주민대표들과 대책회의를 통해 일찌감치 수용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후 송기섭 진천군수를 면담한 자리에서 “아프간인의 이탈이나 코로나19 방역을 철저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5세 미만 아이 100명…주민들 “외면할 수 없다”

25일 충북 진천군 덕산읍 혁신도시출장소에서 아프간인 수용 관련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충북 진천군 덕산읍 혁신도시출장소에서 아프간인 수용 관련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정부 공식 발표에 앞서 주민 대표 30여 명은 송 군수와 조병옥 음성군수와 혁신도시출장소에서 1시간가량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 윤창렬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과 강성국 법무부 차관, 최창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이 동석해 아프간인 수용 방안과 방역 대책을 설명했다.

윤 차장은 “지난해 우한 교민에 이어 또다시 혁신도시에 아프간인 조력자를 임시로 머무르게 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현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여지가 있지만 80가구 400여명 정도가 입국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를 도운 의사, 간호사, 엔지니어, 통역자 등 엘리트 그룹이 가족 단위로 온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을 피해 입국하는 아프간인은 만 5세 이하 아동이 100명이 넘고, 10세 이하가 40%를 차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 우한 교민 격리에 이어 혁신도시 법무연수원 등이 잇따라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것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엄일용(67)씨는 “아프간인들을 돕자는 데 합의는 했지만, 혁신도시 내 기관이 매번 재난보호대책시설로 쓰이면서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부 임모(47)씨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무서운 얘기가 온라인 상에 돌고 있다”며 “신원 검사를 아무리 철저히 한다고 해도 입국자 중에 자칫 탈레반이 나왔을 경우 정부 대책이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매번 진천이냐” 불만, 정부 “가족수용 시설 부족”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수용될 25일 충북 진천 소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수용될 25일 충북 진천 소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대해 강 차관은 “아프간인이 수용되는 즉시 법무부 등에서 정착지원팀 43명을 꾸려서 방역과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격리 기간에는 외부인과 접촉을 금지하고, 경찰 1개 기동대가 24시간 동안 인재개발원 주변을 순찰하고 내부에는 법무부 전담 요원 14명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국내 이송 아프간 협력자 수용 시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이송 아프간 협력자 수용 시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간담회에선 “왜 매번 진천에 수용시설을 지정하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윤 차장은 “코로나19가 심화하면서 정부 연수시설이 대부분 생활치료센터로 쓰이고 있고, 1~2인실이 많다”며 “400명 가까운 인원을 가족 단위로 다인실에 머무르게 하려고 인재개발원을 택했다“고 답했다.

아프간인 조력자들은 진천 임시 수용시설에서 6~8주 정도 지낼 예정이다. 입국 직후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이뤄지며 2주 이내 2차례의 추가 검사가 이뤄진다. 거주 기간에는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한다. 진천군 덕산읍 이장협의회는 아프간인들이 입소할 때 환영 피켓과 현수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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