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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팔세대' 원죄 떠안은 40대 교사 3명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7)

환경, 봉사, 창작을 아우르는 체험교실을 제주에 차렸다. 많은 사람이 체험시간을 갖기위해 방문한다.[사진 한익종]

환경, 봉사, 창작을 아우르는 체험교실을 제주에 차렸다. 많은 사람이 체험시간을 갖기위해 방문한다.[사진 한익종]

교사 1. 
아이와 함께 제주 체험공방을 찾은 엄마의 행동이 도무지 봐 줄 수가 없어서 한마디 쏘아 주었다.
“아이에게 기본예절은 지키게 해 주세요. 작품 함부로 만지고 재료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고, 그건 아니죠.”

교사 2.
올레길에서 만난 여인이 최근의 국내 정세에 대해 박식한 의견을 늘어놓는다.
“서방 의존도 정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동맹, 우방 이것보다는 우리 민족끼리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교사 3.
불쑥 체험공방을 아이와 찾아와 체험 활동 해 보고 싶다고. 다음날 오전에 확답을 주면 오후에 체험 활동을 갖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다음 날 오후가 돼서도 꿩 고아 먹은 소식.

세 사례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40대 초반의 교사라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웃과의 선한 관계, 타인에 대한 배려나 기여나 공헌과는 거리가 먼 자기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자. 동맹이 무너지고 우방이 없는 국가가 존립한 적이 있는가, 이웃이 망하고 자신이 온전한 마을이 있었는가? 순망치한이다.

원고구상을 위해 나선, 운무 자욱한 제주 사계해안길.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잠시 걱정이 스쳐갔다. [사진 한익종]

원고구상을 위해 나선, 운무 자욱한 제주 사계해안길.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잠시 걱정이 스쳐갔다. [사진 한익종]

흔히들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불리는, 은퇴 후 인생 3막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보고 듣기 좋게 ‘오팔’ 세대라고 부른다. 오팔은 내부에 많은 균열을 간직하고 있어 그곳으로 빛이 통과하면서 오묘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다. 우리를 오팔 세대라 부르는 이유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중간 나이가 1958년생이라는 것도 있지만, 온갖 고난과 결핍을 극복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겼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산업발전과 경제부국으로 가는 데 크게 기여한 세대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칭송 뒤에는 벗어나려야 벗어 날 수 없는 오명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 상황이 지속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비난받을 세대라는 점이다. 자신만 잘 살면 되고 이웃이나 사회는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의 태도와 치열한 경쟁심리를 후손에게 심어줌으로써 올바른 사회관을 왜곡시켰으며, 자기의(자식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에 대한 배려나 사회에 대한 기여 따위는 헌신짝처럼 차 버렸고,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자연과 지구환경을 다 망쳐 놓은 세대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보고 배운 세대가 바로 우리 다음인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다. 위의 사례 3에서 보여 준 연령대의 사람이다. 거기에다 그들이 후손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다. 이 원죄를 어이 할까?

누군가가 해변에 연출한 인형손목.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듯 섬찟하다. [사진 한익종]

누군가가 해변에 연출한 인형손목.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듯 섬찟하다. [사진 한익종]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만일 오팔 세대 사람이라면, 혹은 오팔 세대의 바로 뒷세대라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나만 잘살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남길 나쁜 결과는 무엇일까?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허물어 돈·명예·지위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인간성 말살이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나만 잘살면 되겠다는 인간 편의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를 남길 것이다. 그 조짐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지만….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후손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 주면 부모의 역할을 다 했다며 아등바등한 결과는 정작 그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후손으로부터는 버림받는 세대. 얼씨구. 거기에다가 인공지능이니 뭐니 해서 인간성을 배제한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은퇴 후 30여년 이상을. 이 기간을 더 벌고, 더 경쟁하고, 더 많이 남겨줘야 하는 기간이라고? 이런 생각으로 은퇴 후 인생 3막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통을 많이 봐왔다. 흔한 일이다. 그런데도 타산지석, 반면교사의 예로 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니라는 고양이 심리와 자신은 합리적이라는 ‘자기 합리화 증후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인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 주려고 하는가?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부와 명예를 줄 것인가, 인류가 함께하는 자세 그리고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므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회적 연대와 보람을 갖는 삶, 진정 행복을 느끼는 삶을 남겨 줄 것인가?

제주를 찾은 손주와 해변을 걷는 모습. 우리 후손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고민이 깊다. [사진 한익종]

제주를 찾은 손주와 해변을 걷는 모습. 우리 후손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고민이 깊다. [사진 한익종]

며칠 전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대니얼 크레이그가 자신의 전 재산 1700억여 원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는 내 재산을 살아생전 다 쓰고 사회에 모두 기부할 것이다.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은 정말 싫다”라면서. 그가 인용한 영국 속담이 귀에 닿는다. ‘부자로 죽으면 실패한 삶이다’-.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남긴 ‘오팔’ 세대여.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대라는 칭송 뒤의 인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대표적 세대라는 오명을 씻어 낼 마지막 기회다.

봉사하라. 기여하라. 함께 하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속담을 명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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