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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조민씨 문제 2년 눈치, '정의·진리'의 대학 맞나요?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민씨 입학 취소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019년 8월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걸려 있던 현수막. 우상조 중앙일보 기자

2019년 8월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걸려 있던 현수막. 우상조 중앙일보 기자

1984년 11월 14일 오후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ㆍ성균관대 학생 264명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민주정의당(민정당) 당사에 기습적으로 진입해 점거 농성을 벌였습니다. 총학생회 인정,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의 14개 요구 사항을 내걸고 민정당 대표(권익현)와의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음 날 새벽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농성 학생 전원을 연행했습니다. 고려대생 81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나흘 뒤인 11월 18일 권이혁 당시 문교부 장관이 위 4개 대학 총장을 서울 플라자호텔로 불렀습니다. 그는 총장들에게 264명 중 ‘죄질’이 나쁜 111명의 명단을 건네며 ‘제적’을 요구했습니다. 처리 시한은 다음날 오전 9시 30분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던 김준엽 고려대 총장이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학칙에 따라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교부 장관과 김 총장이 얼굴을 붉히며 대치했습니다. 잠시 조용해진 사이 누군가가 김 총장에게 식사를 권했습니다. 그러자 김 총장이 “아이들을 사형 집행하라는데 밥이 먹히나”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문교부의 제적 처리 요구가 계속되자 김 총장은 이종찬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 총장은 광복군 출신이고, 이 사무총장은 독립투사 이회영ㆍ이시영 일가의 종손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정당사 점거 학생들은 제적을 면했습니다.

하지만 1985년 2월 4일 문교부는 특별 감사반을 고려대에 보냈습니다. 학교 행정 문서들을 뒤졌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집요한 압박과 보복이 이어졌습니다. 김 총장이 총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그달 25일 김 총장이 총장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행사인 졸업식은 시위장이 됐습니다. 학생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아 “총장 퇴진 결사반대” “학원 침탈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졸업식 뒤 학생들은 총장실 앞으로 몰려가 ‘광복군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대한의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김 총장을 영입하려고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안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김 총장을 만나 국무총리직을 제시했습니다. 김 총장은 그것도 사양했습니다. 훗날 그는 언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거리는 풍토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여기까지의 글은 임기상 전 CBS 기자의 ‘역사산책’과 과거 보도물을 토대로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고려대는 이런 역사를 가진 학교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4ㆍ19 혁명 기념일 하루 전인 4월 18일에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4ㆍ19 기념탑을 반환점으로 삼는 마라톤을 합니다. 4ㆍ19 하루 전에 벌어진 정치 깡패의 고려대생 습격이 학생들의 ‘의거’를 촉발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뜻이 담긴 행사입니다. 이 학교의 교훈은 ‘자유ㆍ정의ㆍ진리’이고, 교가에는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학교의 상징인 호랑이를 돌로 만든 조각상의 받침대 뒤편에는 조지훈 선생이 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 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나니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가 그중 한 대목입니다.

중앙일보 사설이 조민씨 문제 처리를 2년간 미뤄 온 고려대를 향해 ‘부끄럽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시민들은 "허위의 인턴 경력과 학술지 게재 논문 작성 이력을 제시해(검찰과 두 차례의 법원 판단) 다른 학생의 자리를 빼앗은 것을 두고 보는 것이 정의와 진리에 부합하는 것입니까?"라고 고려대에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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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국 눈치 보다 뒷북치는 고려대와 부산대, 부끄럽다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심 판결 8개월만에 부산대 입학취소
당연한 결정을 질질 끌어 정의 훼손  

부산대가 어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다. 2019년 9월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입시 부정 의혹이 불거진 이후 2년 만이다. 예상된 결과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체되면서 복잡한 문제가 파생됐다. 보건복지부는 조씨의 의사 자격 취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조씨가 전공의(인턴)를 하는 한일병원도 고민을 떠안게 됐다.

조씨의 입학 취소 결정 시점은 1심 판결 전에 학교로부터 철퇴를 맞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나 정유라씨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법원이 조씨 모친 정경심씨의 입시 부정 혐의를 유죄로 처음 판결한 이후로도 8개월이 흘렀다. 만약 부산대가 앞선 사례처럼 신속히 결정했다면 의사면허 취득과 인턴 합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부산대는 입시 범죄를 당해 신뢰도가 추락한 피해자다. 혐의가 드러나자마자 분노하며 사실 규명에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겠다며 우물쭈물했다. 정경심씨의 1심 재판부조차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며 유죄 선고와 동시에 법정 구속을 결정했는데 대학은 3심까지 지켜본다고 했다.

오죽하면 지난 3월 유은혜 부총리가 “대학이 학내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일련의 조처를 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제야 허겁지겁 조사에 들어간 부산대의 모습은 초라했다. 1심 판결로 확인된 허위 문서는 한두 개가 아니고 발행 기관도 단국대·공주대·동양대·서울대·KIST에 호텔까지 망라한다. 이 모든 기관이 검찰과 법원에 허위 진술을 했다고 생각했는가. 입시부정이 낱낱이 드러난 판결문을 읽으며 부산대는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고려대도 마찬가지다. 권력자가 연관됐다고 입시 부정을 모르는 척 외면하는 행위는 수치스럽다. 대학이 꼭 지켜야 할 가치인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대학이 저자세로 눈치를 보니 정치권이 더 기세등등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유 부총리에게 고려대의 입학 취소 검토와 관련해 “교육부에서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 달라”고 요구한 게 대표적 언행이다. 법원은 여권의 샌드백이 된 지 오래다. 이낙연 전 대표까지 판결을 비난한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검찰의 증거 은폐 내지 조작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시비리는 감싸고 이를 심판하는 기관에 몰매를 퍼붓는다. 그동안 궤변을 일삼으며 조국 일가를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던 진보 진영 인사들은 우리 사회에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기 바란다. 입시부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조민씨와 함께 고려대와 부산대에 응시했다 탈락한 지원자들이다. 이들의 억울함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절차를 지연시켜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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