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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도 한 초통령게임 19금? '망신 톡톡' 폐지 수순 밟는 셧다운

중앙일보

입력

도입 10년을 맞은 ‘게임 셧다운제’가 곧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 주까지 부처 간 (논의를 통해)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과몰입 예방 조치와 시간 선택제 등을 이용해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검토를 거의 마쳤다”고 덧붙였다.

셧다운제는 청소년보호법 제26조에 따라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막는 규제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호하고 온라인게임 중독을 예방한다던 그 철옹성은 왜 무너졌을까. 그 변화의 중심엔 ‘초통령게임’이 있었다.

초등학생 등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서 초통령게임이라 불리는 마인크래프트가 한국의 셧다운제 때문에 사실상 ‘19금(禁)’이 되는 촌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지난해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 행사를 가상으로 벌였던 공간이 마인크래프트 게임으로 구현된 것이었다.

초통령게임, 셧다운제 피하려다 ‘19금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제98회 어린이날을 맞아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제98회 어린이날을 맞아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청와대 제공

마인크래프트는 2011년 발매된 이후 전 세계에서 2억장 이상 팔린 비디오게임이다. 가상공간에서 레고 블록을 쌓아 자신만의 세계를 짓고 모험을 하는 콘텐트로 구성됐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인 유튜버 도티(본명 나희선)가 마인크래프트 게임 방송을 진행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최근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플랫폼으로도 주목받았다.

‘마인크래프트 19금화’ 논란은 지난달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한국의 셧다운제로 인해 국내에선 성인 인증을 마친 사람만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에 퍼진 것이다. 경위는 이랬다. 마인크래프트의 운영사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로그인 정책을 바꾸면서 자사 계정으로만 게임에 접속할 수 있게 하겠다고 공지한 것이다. 문제는 MS가 한국의 셧다운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서만 계정 가입 조건을 19세 이상으로 걸어둔 것이다. 미성년자 회원을 위해 별도의 서버를 구축하는 데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가 성인용이었나”

초통령게임이 한순간에 19세 이상만 할 수 있는 ‘19금 게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에 지난달 2일에는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마인크래프트 성인 게임화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12만 명 넘게 동의하기도 했다.

5년째 마인크래프트를 이용 중인 양모(14)군은 “셧다운제 때문에 부모님 정보로 부계정을 만들어 쓰는 친구가 대부분”이라며 “우회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규제를 왜 유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원 수 30만 명 이상의 마인크래프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가 성인용 게임으로 진행됐던 거냐” “해외 유튜버들이 셧다운제를 주목하는데 국가 망신”이라는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게임 중독 대안 있나” 반대론도

지난달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마인크래프트 관련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마인크래프트 관련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결국 청와대 정책실에서 셧다운 폐지를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셧다운제가 폐지된다는 소식에 각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게임을 지나치게 관리 대상으로만 몰아갔던 법이 사라진다니 환영”이라면서도 “폐지 논의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예방하는 대안도 없이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김영호 한국중독전문가협회장은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데 올바른 규범을 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폐지를 옹호하는 건 단편적인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여가부 등 개선 필요성 주장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셧다운제 폐지론에 힘이 실리면서 담당 부서인 여성가족부도 제도 개선 의사를 밝혔다. 여가부는 지난달 30일 한국게임산업협회, 청소년보호단체 등과 규제개혁위원회를 열고 셧다운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여가부는 “국회에 셧다운제 폐지에 관한 다양한 개정 법률안이 발의돼 있어 해당 논의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셧다운제 관련 개정안이 6건 발의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일 셧다운제 관련 보고서를 통해 “셧다운제가 청소년 수면행태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이용시간 및 시간대에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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