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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천안함에 희귀질환···11년뒤 상이연금 준 軍 진절머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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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약성 진통제도 내성이 생겼는지 잘 듣지를 않습니다. 점점 더 세게 쓸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1년 전 천안함 폭침 사건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희귀질환(복합부위 통증 증후군ㆍCRPS: 기사 아래 용어사전 참조)을 앓고 있는 신은총(35) 예비역 하사는 최근 자신의 몸 상태를 이렇게 말했다. 신 하사는 진통제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몸속에 통증 조절 장치를 넣고 점검하는 대수술을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받았다.

신은총 예비역 하사는 ″갈수록 병이 악화돼 외출하기조차 겁이 난다″고 말했다. 사진은 자택에서 수액 주사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신은총 예비역 하사는 ″갈수록 병이 악화돼 외출하기조차 겁이 난다″고 말했다. 사진은 자택에서 수액 주사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지난 19일 전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목소리에 힘도 없었다. 그는 “가볍게 외출하는 것조차 두렵다”며 “며칠 전 어머니와 산책을 나섰다가 채 5분도 안 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이연금 아무도 몰랐다"  

신 하사는 천안함 생존 장병 중 유일한 의병 전역자다. 북한군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가슴뼈가 부러지고 허리뼈에 금이 가는 등 전신에 상처를 입었다. 머리도 크게 다쳐 뇌에서 발작이 일어나는 뇌전증이 생겼다.

몽유병으로 나타날 만큼 사고에 대한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극심했다. 그런데도 전역 이후 10년간 상이연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고 이전 해군 복무 시절의 신은총 하사.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고 이전 해군 복무 시절의 신은총 하사.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저뿐만 아니라 생존 장병들 모두 상이연금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군에서 그런 제도가 있다고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천안함뿐만 아닙니다. 저처럼 군에서 다치고 제대한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상이연금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실제로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군 당국이 상이연금에 대해 충분히 홍보하거나 교육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방부는 물론 각 군의 홈페이지에서도 신청 절차나 구비서류 등을 알려주는 코너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심사 결과도 "주먹구구식"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안종민 천안함전우회 사무총장을 통해 지난해에야 뒤늦게 상이연금 제도를 알게 됐다. 이후 국방부에 연금을 신청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심의를 통과한 사람은 신 하사를 비롯해 10명이다.

그런데 10명의 심의 결과를 놓고 보니 연금 수급 기간을 결정하는 장애 발생 시기에 대한 판단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장병은 같은 병명으로 처음 진료를 받은 날부터 장애가 생긴 것으로 판정했지만, 신 하사의 경우 진료 기간을 제외한 채 심의 신청을 앞두고 받은 장애인 등록 진단서 발급일(지난해 10월 8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결국 올해 2월 심사 결과가 통보될 때까지 약 4개월 정도만 장애 기간으로 인정된 셈이다. 신 하사는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며 “군 당국의 무성의한 주먹구구식 행정 처리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말했다.

신은총 예비역 하사는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통증 조절 장치를 몸 속에 넣는 큰 수술을 지난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받았다. 사진 왼쪽은 장치를 넣은 부위, 오른쪽은 X-레이 촬영 사진이다.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신은총 예비역 하사는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통증 조절 장치를 몸 속에 넣는 큰 수술을 지난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받았다. 사진 왼쪽은 장치를 넣은 부위, 오른쪽은 X-레이 촬영 사진이다. [사진 신은총 예비역 하사]

신 하사는 2015년부터 CRPS 치료를 꾸준히 받아왔다. 상이연금 신청 당시 관련 진료 기록도 모두 제출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병원을 돌면서 서류를 떼느라 몸이 더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도 이런 결과를 통보받으니 한숨밖에 안 나오더군요.”  

퇴직금 절반은 군에 반납

설상가상 상이연금을 4개월 치만 소급 적용하다 보니 전역 당시 일시금으로 받았던 약 600만원의 퇴직금에서 절반 정도인 약 290만원을 반환하는 일까지 생겼다. 신 하사는 “이런 처우를 받을 때마다 지난 11년간 고통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말했다.

“의사들 말이 한결같아요. 사고 직후 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고요. 군 병원에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위에서 시켜서 못 한다’며 수술도 안 해줬습니다. 치료라고는 수면제와 진통제 처방뿐이어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역을 택했어요. 이후 병원 치료비가 무서워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11년간 병원 12군데를 전전하다 보니 후유증만 더 심각해졌어요.”

신 하사를 괴롭히는 건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다. 천안함 장병들을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온갖 악성 유언비어와 군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를 떠올릴 때면 몸 상태가 더 악화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자고 싶어도 잠을 못 이룹니다. 수면제를 먹어도 2~3일은 자지도 못하다가 겨우 몇 시간 정도 자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요.”

국방부 "이달 말 재심사"

신 하사는 지난 4월 재심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오는 30일 재심위원회를 열어 심의하겠다”고 최근 통보한 상태다.

국방부는 ‘장애 발생 시기의 판단 기준이 제각각’이란 지적에 대해선 “같은 질환이라도 개인에 따라 증상이나 장애 상태가 다르다”며 “각종 의무기록 내용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검토해 심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용어사전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ㆍ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은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드물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통증이다. 통증은 외견적인 손상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발생하며 해당 손상이 해결되거나 사라진 뒤에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해당 부위가 주로 화끈거리거나 아린 양상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이러한 통증은 미세한 자극만 줘도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환자들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ㆍ심리적 불안정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희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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