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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기자 30년에 두 번째 언론 탄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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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올해로 30년 차 기자가 됐다. 1991년 수습기자로 첫발을 뗐다. 막상 언론 내부로 들어와 보니 선입견과는 달랐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칼럼을 쓰면서 각 분야 유명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는 금세 깨졌다. 언론 현장은 치열했다. 사건과 이슈 뒤에 숨은 진실과의 전쟁이 계속됐다. 온갖 궂은 현장에 가야 했고 진실을 감추려는 장막을 넘어서야 했다. 깔끔하게 인쇄된 신문 지면만 보면 그 과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선 마치 오리처럼 부지런히 물밑에서 뛰어야 한다.

민주주의 숨통 끊는 언론중재법 #진보 정권이 거듭 언론자유 압박 #재갈 물려도 진실과 비리 드러나

신문기자는 오보 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사소한 오·탈자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직업이다. 기사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낭패감은 더 커진다. 신뢰가 통째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다. 이런 오류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우선 잘못이 확인되면 ‘바로잡습니다’ 코너를 통해 즉각 수정된다. 그대로 두면 가만히 있을 네티즌들이 아니다. 오·탈자조차 용납 안 되는 마당에 가짜뉴스인 줄 알면서 내보낼 수 있겠나.

신문사 내부에서도 오보가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기사는 데스킹을 비롯한 다단계의 게이트키핑(점검 과정)을 거친다. 어떤 기사든 이 크로스 체크를 피할 수 없다. 해설이나 칼럼조차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편향이 심하면 존립이 어렵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존 밀턴은 1644년 언론사상의 고전이 된 『아레오파지티카』를 영국 의회에 보내 “모든 사상은 공개시장에서 자율 조정돼야 한다”면서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라고 설파했다. 이 명제가 서구 민주주의 발달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는 서구 민주주의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번영의 원동력이었다.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는 서구 민주주의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번영의 원동력이었다.

주로 경제 이슈를 다룬 이 자리에서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가 풍전등화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집값 폭등을 초래한 부동산 정책부터 급격한 최저임금·근로시간제·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언론 자유가 봉쇄되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된다. 현 정권이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면 이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선택적으로 통계를 뽑아 최저임금의 인상 효과를 분칠하고 집값이 폭등해도 집값이 안정된다고 국민을 농락하는 현 정권의 정책 폭주를 감시하기 어려워진다.

현 정권이 말하는 가짜뉴스는 신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탈자 하나만 있어도 내부 점검 과정에서 놔두지 않고 독자들의 질타를 피하기도 어렵다. 최근 가짜뉴스는 주로 정치권이나 돈벌이 목적의 유튜브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자신들의 허물과 유튜브는 쏙 빼놓고 기성 언론을 겨냥해 재갈을 물리려 들고 있다. 정권의 실책을 비판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진영 내부의 핵심 인사 비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진보를 자임해 온 정권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거듭 억압하고 나서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도 언론을 압박했다. 기자실 운영의 폐쇄성을 빌미로 미국의 선진적인 방식이라면서 브리핑룸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자들의 자율적인 취재시스템을 정치권력이 개입해 인위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좌석 배치 간격까지 규정하면서 기자들은 졸지에 비좁은 버스터미널 대합실 좌석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했다. 당시 동료는 '닭장'이라고 표현할 만큼 근무 환경이 나빠졌지만, 기자들은 그 강제조치를 견디고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든 언론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중과실 추정, 기사열람차단 청구는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언론재갈법’을 추진하는 자(者)들은 잊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 비밀이 없고 언젠가 진리가 드러난다는 불변의 법칙 말이다. 인간의 본성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아레오파지티카』 는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떠받친 법정과 의회 기능을 하는 '아레오파고스(areopagos)'에 어원을 두고 있다. 자유언론 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밀턴은 1644년 이 책을 의회에 보내면서 "거짓과 진리가 열린 자유 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고 주장했다. 밀턴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억압하던 자유 중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자유나 인권보다 중요한 천부인권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억제하는 종교야말로 악이며 거짓이라고 설파했다. 서구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된 사상이다.

『아레오파지티카』 는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떠받친 법정과 의회 기능을 하는 '아레오파고스(areopagos)'에 어원을 두고 있다. 자유언론 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밀턴은 1644년 이 책을 의회에 보내면서 "거짓과 진리가 열린 자유 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고 주장했다. 밀턴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억압하던 자유 중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자유나 인권보다 중요한 천부인권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억제하는 종교야말로 악이며 거짓이라고 설파했다. 서구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된 사상이다.

진보 정권은 거듭 언론 통제를 시도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기자실 통폐합이 추진되면서 '언론자유 말살인가 지원인가'를 놓고 토론회가 벌어졌다. 강정현 기자

진보 정권은 거듭 언론 통제를 시도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기자실 통폐합이 추진되면서 '언론자유 말살인가 지원인가'를 놓고 토론회가 벌어졌다. 강정현 기자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1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과 변동 없는 42위를 기록하고 있다. 독재 및 전제국가가 많은 중동 및 아시아에서는 높은 편이지만, 자유 언론이 발달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1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과 변동 없는 42위를 기록하고 있다. 독재 및 전제국가가 많은 중동 및 아시아에서는 높은 편이지만, 자유 언론이 발달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