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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예술과 행복의 뜻밖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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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지구(Earth)에 예술(art)이 없다면?으!(Eh)

이 세상에 예술이 없다는 상상은 찐빵에 앙꼬가 없다는 상상보다 끔찍하다. 더 끔찍한 상상은 우리 중 아무에게도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능력이 없다는 상상이다. 아무도 석양에 감탄하지 않고, 아무도 빗소리에 취하지 않으며, 아무도 아이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고, 아무도 결정적 순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아름다운 것에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천부적인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술가적 태도로 삶을 살아갈 필요는 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예술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일수록 행복하고,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팀은 20대 이상 한국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태도와 그들의 평소 행복 수준을 측정했다. 그리고 이중 일부에게서는 혈액을 채취하여 다양한 건강 지표들을 계산해보았다. 놀랍게도, 예술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행복할 뿐 아니라 건강 지표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에 대해 열린 마음일수록
행복도가 높고 건강에 유리해
예술가의 시각 따라해 볼 필요

이들이 부자라서 예술을 즐길 만한 여유가 있고, 따라서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예술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돈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가능성을 고려하여 경제적 수준도 감안해서 분석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예술에 대한 관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술품을 소장하거나 공연장에 가는 등 실천을 해야만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 예술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것, 예술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모두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리고 미켈란젤로처럼 조각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예술가가 세상을 보는 방법대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법의 잣대로, 투자의 안목으로, 정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지칠대로 지쳐 있다.

예술에 대한 열린 마음이 행복과 건강에 유리하다는 이 연구 결과가,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누군가에게는 뜻밖인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술가란 광기의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즐기는 것이 어떻게 행복에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술의 몇 가지 특성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예술은 순수를 경험하게 한다. 나이와 성·계층과 인종을 뛰어넘어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한다. 예술적 경험은 그래서 이기적이지 않고, 차별적이지 않으며, 보편적이고 초월적이다. 행복의 본질이 그렇다. 행복은 경계와 위계, 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렵다.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껍데기보다 본질에 주목하여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힘이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마음에서 행복이 잘 자란다.

두 번째, 예술은 본질상 ‘다르게 생각하기’이고, ‘다르게 바라보기’이다.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이 예술이고, 애초부터 다른 사물을 보는 것이 예술이다. 행복도 그렇다. 위기에서 기회를, 역경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아주 보통의 일상에서 기적 같은 특별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이다. 다르게 보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기억하고, 다른 것을 기억하는 것이 행복의 기술이다. 그런 행복의 기술이 예술을 통해 연습되는 것이다.

셋째, 예술은 멈추는 기회를 제공한다. 분주한 마음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것이 행복과 예술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예술이고 행복인 것이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행복 천재들만이 구사한다는 절정의 기술, ‘멈춤’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도록 거대한 멈춤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진정 잘 살고 싶다면, 예술에 대한 열린 마음을 키워야 한다. 예술가처럼 다르게 보고 다르게 기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가처럼 보편적 인류애를 키우고, 순수한 기쁨 그 자체를 경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삶이 예술임을 깨닫고 자주 멈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