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2021.08.25 00:03

지면보기

종합 21면

〈장원〉

이팝나무 꽃    

-김정애 

개밥바라기 주린 별이
당오름에 걸린 그 날
밥풀떼기 계급 달고
지뢰밭 철원을 넘어
반평생 가는 귀 뜬 채
살다 가신
아버지

◆김정애
김정애

김정애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2017년 제주일보지상백일장 차하, 2019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꽃무늬 셔츠

-홍외숙

ㄱ자로 꺾인 등 모로만 눕는 노인
굴곡진 한평생을 촘촘히 구겨 넣고
노을이 쉬다 간 등 언덕
활짝 핀 꽃무더기

〈차하〉

찢어진 화폭  

-서배겸

빌딩에 등 떠밀려
뭉개진 초록 전원

못안골 민물장어
바싹바싹 목이 타서

뻘판에
상소 쓰느라
초서체를 갈긴다

〈이달의 심사평〉

시조의 진수는 단수시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수시조는 갈고 다듬은 간결한 시어로 3장 6구라는 리듬과 형식을 타고 완결된 시조의 본질을 담아내는 함축미가 뛰어나다. 연시조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단수시조에 비해 자칫하면 긴장이 풀어지고 시적 완성도가 떨어지기 쉽다는 점을 신인들은 유의해야 한다.

이달의 장원으로 김정애의 ‘이팝나무 꽃’을 올린다. 단수시조 한 편에서 시어 하나 하나의 의미를 풀어내면 책으로 써도 족히 한 권 분량이 되는 아버지의 일생을 읽는다. 초장의 서정적 울림이 강렬한 이 작품에서 ‘이팝나무 꽃’과 장교를 상징하는 ‘밥풀떼기 계급’은 이미지가 동일하다. ‘지뢰’가 가득한 철원의 전장을 누빈 아버지는 전쟁터의 신음을 평생 안고 살았다. ‘이팝나무 꽃’을 보며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는 화자의 눈시울이 촉촉하다.

차상에는 홍외숙의 ‘꽃무늬 셔츠’를 놓는다. 허리가 굽어 ‘모로만 눕는’ 노인의 ‘굴곡진 한평생’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누군들 생의 고비 고비마다 속 깊은 사연이 없겠는가마는, 허리 굽은 노인의 등을 보는 화자의 시선이 유달리 따뜻하다. 종장의 ‘노을이 쉬다 간 등 언덕’ 같은 탁월한 묘사가 이 작품을 살려놓고 있다.

차하로는 서배겸의 ‘찢어진 화폭’을 뽑는다. 그림 같은 전원이 난개발에 밀려나고 시달리는 환경을 풍자했다. ‘찢어진 화폭’의 모양과 ‘민물장어’의 몸짓과 ‘초서체’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밀고 나간 힘이 범상치 않다. ‘민물장어’가 ‘뻘판에 상소를 쓰’는 현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달에는 대체로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배순금, 박영구, 이은영, 한영권, 한승남의 작품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정진을 바란다.

김삼환(대표집필), 최영효 시조시인

〈초대시조〉

면접비의 쓸모

-이나영

서툰 응답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다리다 깎여버린 정육면체 젊음들이
무던히 굴러다니다 소주잔에 담긴다
꼬리표 달고 있는 물음도 마찬가지
굳어버린 마침표만 둔하게 찍혀있는
부서진 고딕체의 고백, 목구멍에 머뭇댄다

◆이나영
이나영

이나영

201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 『언제나 스탠바이』. 2020년 문학나눔 도서 선정.

바야흐로 여름도 막바지이다. 턱까지 차오르던 한더위의 기세도 제법 순해졌으나 녹음은 여전히 짙푸른 함성으로 우거졌다. 흔히 청춘을 녹음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이 땅의 청춘들은 지금 어떠한가. 저 녹음처럼 푸르고 싱싱해야 할 청춘이 취업이라는 가파른 벼랑 앞에서 절망하고 주눅 들어있는 현실이다.

패기 넘치는 아름다운 도전이 아닌, 슬프도록 절박한 생존 현장이 되어버린 젊은이들의 취업전선. 정녕 오늘의 청춘들은 “기다리다 깎여버린 정육면체”인 한낱 “주사위”가 되어 이리저리 던져지고 마는 것인가. 공정과 실력이 아닌 요행과 운수의 판에서 구르고 구르다가 결국엔 절망과 울분의 “소주잔에 담기”고 마는. 꿈과 이상을 추구하며 인생에 대한 건강한 질문의 화살을 뽑아보기도 전에 오늘의 과녁에는 벌써 “굳어버린 마침표만 둔하게 찍혀있”다니. “고딕체의 고백”이, 그것도 이미 부서진 고백이 쉽게 뱉어지지 않은 채 “목구멍에서 머뭇대”고 있다니. 청춘들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젊은 시인의 젊은 시가 자학적인 어조를 빌려 예리하게 오늘을 진단하고 있다.

이나영의 시조는 그 시적 발화가 지금이며 오늘이다. 시조가 가지는 전통적인 구조적 통일성에서 비켜나있다. 이는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진지하게 담보하는 신선한 힘이다. 이 시조 또한 추상과 관념을 확 벗겨낸, 살아서 꿈틀거리는 지금 여기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힘든 청춘들의 현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새삼 목도하게 한다. 바라건대 부디 우리의 청춘들에게 “면접비의 쓸모”가 아주 제대로, 그리고 멋지게 효용 되는 그 환한 날이 어서 오기를.

서숙희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편수 제한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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