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덜어서 살게요"… 돈·환경 다 잡겠다는 화장품 소분

"샴푸 덜어서 살게요"… 돈·환경 다 잡겠다는 화장품 소분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16:00

업데이트 2021.08.25 11:18

서울 마포구의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 한 쪽에 설치된 용기 회수센터. 사진 알맹상점

서울 마포구의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 한 쪽에 설치된 용기 회수센터. 사진 알맹상점

"고객님이 담아온 수분크림은 1g당 30원입니다. 총 262g으로 7860원 나왔습니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샵을 표방한 '알맹상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가게는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문을 열었다. 여기에선 말 그대로 포장이 없는 화장품 '알맹이'만 판매한다. 고객이 개인 용기를 가져와 화장품·샴푸·세제·소스 등을 담으면 무게(g)당 가격을 매긴다. 용기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매장에서 재활용 유리병이나 플라스틱병을 무료로 제공한다.

[플라스틱 어스 2부] 4회
소분과 리필, 소비자의 '탈 플라스틱' 이끌까

샴푸를 소분하려 가게에 들렀다는 이서영(24)씨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 충격받았다. 샴푸를 리필해서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라도 줄이면 환경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쓰레기 없는' 화장품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유행 후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제로 웨이스트 샵을 찾는 2030 고객들의 발걸음이 늘었다. 소분·리필 제품을 이용하면 화장품 구매 비용을 줄이고 용기도 재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제품을 많이 쓸수록 그냥 버려지는 화장품 용기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출고·수입된 화장품의 약 64%가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젠 소비자가 '직접' 화장품 덜 수 있다

서울 마포구의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에서 소분 판매중인 세제와 화장품들. 김정연 기자

서울 마포구의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에서 소분 판매중인 세제와 화장품들. 김정연 기자

이렇다 보니 '탈(脫) 플라스틱' 화장품 소비문화는 갈수록 확산 중이다. 지난해 3월 맞춤형 화장품 제도 시행에 따라 화장품의 소분 판매가 가능해졌다. 알맹상점 같은 제로 웨이스트 샵이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만든 '제비지도(제로 웨이스트와 비건 상점을 표시한 지도)'에 따르면 전국의 제로 웨이스트 샵 개수는 4월 기준 90개를 넘었다.

다만 불편한 점도 있다. 화장품법에 따라 제로 웨이스트 샵은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하면서 고객 대신 소분 업무를 맡아야 한다. 알맹상점 관계자는 "영세한 제로 웨이스트 숍에서 조제관리사를 따로 고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심지어 세 번 시행된 조제관리사 시험의 합격률은 겨우 7%에 불과했다"고 털어놨다. 고객이 직접 담아갈 수 없다 보니 판매자·소비자 모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자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 소분 매장 활성화 지원 계획'을 7월 발표했다. 각 매장에서 조제관리사 대신 소비자가 소분할 수 있도록 바꾼 게 핵심이다. 정부는 '규제샌스박스' 제도를 활용해 조제관리사가 없는 소분 매장을 2년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이 기간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샴푸·린스·보디클렌저·액체비누 4가지 품목에 한해 어느 매장에서든 소비자가 직접 소분, 리필할 수 있게 된다.

알맹상점 단골이라는 박민혜(27)씨는 "아무래도 직접 용기를 가져와서 덜어가는 게 필요한 만큼 써볼 수 있고 편하다. 또 나름의 재미가 있어 좋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 소비자가 알맹상점에서 화장품을 재활용 용기에 소분받고 있다. 사진 알맹상점

한 소비자가 알맹상점에서 화장품을 재활용 용기에 소분받고 있다. 사진 알맹상점

 대기업도 '제로 웨이스트' 매장 뛰어들어

제로 웨이스트 열풍에 대기업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지난 5월 소비자가 플라스틱 선순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병 공간을 오픈했다. LG생활건강도 서울 가로수길 매장에서 '빌려 쓰는 지구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여기서 쓰는 용기는 친환경 코코넛 껍질을 활용했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아모레퍼시픽은 앞서 지난해 10월 경기 광교 매장에 화장품 업계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였다. 다만 이곳은 소분 전용 투명 용기를 500원에 구매한 뒤, 원하는 제품과 용량(300g/500g)을 선택하면 직원이 제품을 담아주는 방식이다. 올 5월 이마트 자양점 매장에도 리필스테이션을 추가 설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0월 화장품 업계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0월 화장품 업계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리필스테이션에서 바디워시 제품을 구매한 전다해(22) 씨는 "러쉬(lush) 같은 친환경 브랜드를 주로 썼는데, 소분이 되는 새로운 제품을 사봤다. 제로 웨이스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매장이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플라스틱 문제 자체가 국제적 사안이 된 만큼, 기업들도 누가 더 잘하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화장품 소분이 활성화되는 건 방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화장품 용기 자체가 잘 재활용되지 않는 것보다 용기 내에 남아있는 내용물이 다른 재활용품 전체를 오염시키는 게 더 큰 문제다. 다른 재활용품에 섞이지 않도록 화장품 통을 따로 구분해서 배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환경단체 등에선 소분·리필용기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국장은 "기업에서 화장품을 판매할 때는 보통 규격화된 용기를 사용해서 안전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개인이 용기를 가져가서 소분 제품을 살 때는 해당 화학성분과 용기가 적합한지 안전성 측면에서 조심히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생산자가 화장품 소분 판매용 표준용기를 제작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지침서를 연내 마련·배포할 예정이다.

특별취재팀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 2부를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정종훈·편광현·백희연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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