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언론에 재갈 물리겠다는 與

'언론재갈법' 방관한 文…'거부권 패싱'으로 암묵적 동조 수순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15:31

업데이트 2021.08.24 16:11

언론자유 침해 논란을 빚고 있는 ‘언론중재법’에 침묵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결국 직접적 입장 표명 대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강행처리할 법안을 그대로 공표하는 절차를 통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를 마치며 박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를 마치며 박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권의 고위 인사는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차피 여당이 총대를 멘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여권 내의 괜한 분란을 자초하면서까지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청와대와 정부 입장에서도 언론개혁과 관련된 성과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언론개혁과 관련된 법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언론중재법은 의회가 주도하는 법안"이라며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아왔다. 문 대통령 역시 여러차례의 공개 발언 기회가 있었음에도 언론중재법에 대해서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를 놓고 야권에서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매번 이를 거부하며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해왔다. 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법률안 거부권'을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만약 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반대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권에선 “문 대통령이 법안에 대한 암묵적 동의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2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대통령의 침묵은 법안에 대한 묵시적 동의’라는 주장에 대해 “해석은 자유롭게 하라”며 사실상 '거부권 패싱' 기조를 분명히했다.

유 실장은 이어 “(청와대는) 논의 과정에 관여한 바가 없고, 앞으로도 어떤 입장을 낼 계획도 없다”고 했다. 또 ‘정권 장악용 입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행되는 것이 대선이 끝나고 난 뒤로 알고 있다”며 “정권연장용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번, 박근혜 전 대통령은 2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치권에선 "여소야대 정국이던 과거와 달리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여당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특히 "언론에 재갈을 씌운다"는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80%가 찬성하는 법안"이라며 여론전을 펼쳐왔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5월 리서치뷰의 조사(찬성 81%, 반대 11%)를 근거로 한다. 그런데 당시 조사는 ‘가짜뉴스는 처벌해야 한다’는 데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였다. 여당이 강행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과는 거리가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여권 지지층이 강하게 요구하는데 어쩌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법안의 강행처리 배경이 강경 지지세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그러나 사실상 강경 지지층에 이끌려 청와대와 여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 대해 보수 진영인 국민의당은 물론, 그간 범여권으로 분류돼왔던 정의당마저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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