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서 캐낸 아까운 이야기,'DMZ극장' 퍼포먼스로 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13:55

업데이트 2021.08.25 15:17

정연두 작가와 수야르 연출가가 협업한 'DMZ 극장'. [사진 이은주]

정연두 작가와 수야르 연출가가 협업한 'DMZ 극장'. [사진 이은주]

온몸을 페트병 그물로 휘감은 남자. 'DMZ극장'의 한 장면. [사진 이은주]

온몸을 페트병 그물로 휘감은 남자. 'DMZ극장'의 한 장면. [사진 이은주]

수십 개의 페트병을 이어 만든 그물을 구명대 삼아 바다를 건너온 한 남자 이야기, 인간이 떠난 후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두루미···.

국립현대미술관 'DMZ극장'
매주 수,토요일 전시와 공연
정연두 작가, 수르야 연출가

남북한 사이 비무장지대(DMZ) 주변에는 사실과 전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숱한 사연이 묻혀 있다. 그곳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현장 이야기부터 피난민들 사이에 떠돌았던 구전 설화, 그곳에 서식하는 멧돼지, 곰, 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신화까지 공존하는 곳.  그러나 '분단의 상징'인 이곳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깝고도 먼 '금단의 땅'이다.

DMZ를 소재로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가 결합된 이색 프로그램 'DMZ 극장'이 국립현대미술관 제8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장 벽에 미술 작품을 걸어놓은 흔한 미술 전시가 아니라 사진과 오브제, 설치와 공연으로 펼치는 다원 예술 프로그램이다. 배우 7명이 관객과 오브제 사이를 누비며 1시간동안 열연하는 독특한 공연이기도 하다.

정연두 작가의 사진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연두 작가의 사진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DMZ전망대에서 촬영한 풍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DMZ전망대에서 촬영한 풍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7년부터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까지 13개 전망대를 50여 차례 방문했다"는 정연두 작가(52·성균관대 교수)는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전쟁과 분단에 관한 일화, 전망대 주변에 얽힌 설화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DMZ의 현실·역사·전설 등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연두는 사진과 영상·퍼포먼스·공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예술과 현실 등에 대해 질문을 던져온 작가다. 이번에 그는 DMZ를 삶의 면면이 녹아있는 연극적 공간으로 재해석하며 'DMZ 극장'을 풍부한 이야기로 채웠다.

정연두와 연극연출가 수르야(52)가 협업해 선보인 ‘DMZ 극장’은 '보는' 전시가 아니라 음악·조명·연극이 어우러진 마당놀이 형식의 퍼포먼스. 한 눈에 보아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브제들이 가득한 전시장 한가운데서 관람객이 배우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DMZ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를테면 남한에서 흘러 밀려온 페트병을 보며 미지의 세상을 꿈꾼 북한 남자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일화엔 정연두 작가가 실제로 접한 한 탈북자의 사연이 녹아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전쟁고아로 떠돌다가 지뢰를 밟아 영원히 그곳에 살게 된 민들레 할머니의 이야기, 1974년 최초로 발견된 땅굴 이야기도 퍼포먼스로 펼쳐진다. 정연두 작가가 13개 전망대를 방문하며 촬영한 사진과 군인들의 생생한 인터뷰도 볼 수 있다. 최소한의 오브제만 설치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집중력 있게 이끌어간 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DMZ 극장’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무장지대의 풍부하고 역동적인 이야기들을 예술로 재해석해 보여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라며 "이번 공연이 비무장지대의 의미와 서사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DMZ극장'을 위해 협업한 연출가 수야르(왼쪽)과 정연두 작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DMZ극장'을 위해 협업한 연출가 수야르(왼쪽)과 정연두 작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퍼포먼스는 매주 수·토요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사전예약 관람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편 이 전시장을 활용해 ‘DMZ 안보 관광’의 형식을 빌려 선보이는 1인 퍼포먼스 ‘안보인 관광’은 화~일요일 하루에 세 차례에 걸쳐 열린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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