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사양꿀, 천연꿀에 대한 배신일까? 실제는 도긴개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109)

벌이 설탕을 물어다 위 속에 있는 설탕 분해 효소(invertase)와 섞어 벌집에 뱉어낸 형태가 바로 벌꿀이다. [사진 pxhere]

벌이 설탕을 물어다 위 속에 있는 설탕 분해 효소(invertase)와 섞어 벌집에 뱉어낸 형태가 바로 벌꿀이다. [사진 pxhere]

‘사양(飼養) 벌꿀’을 아시나요? 사양의 한자 뜻은 먹이를 주어 양식한다는 의미이다. 즉, 설탕을 벌에 먹여 키운다는 뜻. 이도 단순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설탕물을 벌집에 모으게 하여 꿀로 만든 것, 이게 바로 사양 벌꿀이다. 그럼 ‘가짜 꿀이네’ 하면 좀 억울해할 부분이 있지만 짝퉁이 아니라고 우기기는 어렵다. 어떤 사연인지 알아본다.

우선 벌꿀부터. 꽃 속에는 예외 없이 설탕(물)이 들어있다. 곤충을 유혹하여 수분(受粉)하기 위해서다. 이 설탕을 벌이 물어다 그림과 같이 위 속에 있는 설탕 분해 효소(invertase)와 섞어 벌집에 뱉어낸 형태가 바로 벌꿀이라는 것.

설탕은 그냥 흡수되지 않고 효소에 의해 그 구조가 잘려야 흡수된다. 이 효소는 모든 생물이 다 갖고 있다. [사진 이태호 제공]

설탕은 그냥 흡수되지 않고 효소에 의해 그 구조가 잘려야 흡수된다. 이 효소는 모든 생물이 다 갖고 있다. [사진 이태호 제공]

이를 인간이 빼앗는다. 뺏고 뺏기기를 반복한다. 그럼 꽃이 없는 겨울에는? 이때는 설탕물을 먹인다. 내년 봄까지 살려두기 위해서다. 마음 약한 업자는 늦은 가을 전부 채밀하지 않고 조금 남겨 두는 선심(?)을 베풀기도 한다.

엄격하게는 꽃 속의 설탕물을 그대로 벌집에 물어다 쟁여두는 것은 아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그림과 같이 결합해 있는 올리고당(2당)이다. 이를 벌이 위 속의 효소와 섞어 토해낸다. 서서히 단당류로 분해된다. 즉, 연결고리를 잘라 저장한 것이 바로 벌꿀인 셈. 이러면 설탕보다 감미도가 높아지고 용해도가 증가한다. 찐득할 정도로. 사람이 먹으면 소화과정 없이 바로 흡수된다.

그렇다면 설탕의 고리를 벌 대신 우리가 잘라주면 어떨까. 안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과거 진한 설탕물을 염산으로 잘라 가짜 꿀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머리 좋은 이가 벌에 있는 효소와 똑같은 것으로 설탕의 고리를 잘라 유사 꿀을 만들어 말썽이 되기도 했다.

실제 벌꿀과 설탕의 당 조성은 다르지 않다. 단 잘려있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이렇게 인위적으로 가짜 꿀을 만들면 위법이다. 그런데 이 자르는 역할을 벌에게 시키면 합법이다. 이게 바로 사양 벌꿀의 제조법.

사양 벌꿀이 나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양봉업자는 봄이 되면 남쪽에서 꽃을 따라 북상한다. 한철 열심히 꿀을 뜬다. 그런데 개화기가 아닌데도 꿀이 계속 나오는 광경이 목격됐다. 이를 의심하는 소비자가 생겼다. 반칙이 들통났다. 벌이 꽃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들어주기 위해 주인이 설탕물을 먹인 것이다. 과도하게 먹여 벌집에 비축하게 했다. 이를 채취한 것이 가짜 꿀(?)인 사양 벌꿀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와 가짜가 구별이 안 된다는 거. 과거 소비자가 이에 많이 속았다.

참 교묘한 방법이다. 벌은 설탕물이 옆에 있으면 꽃에까지 가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벌이 설탕물을 마셨다가 금방 토해냈다는 데 있다. 즉 위 속 설탕 분해 효소를 충분히 섞어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거. 그렇게 되면 꿀 속에는 잘리지 않은 설탕이 일부 남아있어 찬 곳에 두면 병 바닥에 하얗게 결정이 생기게 된다. 결정이 많이 생긴 꿀은 설탕을 많이 먹였다는 증거. 물론 진짜 꿀도 채밀 간격이 짧거나 오래 두어 수분이 과도하게 증발하면 결정이 생기긴 한다.

과거 이런 의심을 받아 꿀의 신인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양봉업자가 커밍아웃했다. 이제부터 설탕을 먹인 꿀을 만들 테니 선택해 사 먹으라고. 요새는 아예 이런 꿀을 합법적으로 판다. 실로 양심(?)적이지 않은가. 가격이 진짜의 반 정도. 하지만 진짜에도 아직 설탕물을 먹인다는 소문이 있다. 찜찜하면 사양 꿀을 사 먹는 게 속 편하다. 이거나 저거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

그럼 이런 가짜 꿀과 진짜 꿀의 차이점은 뭔가? 안됐지만 별로 차이는 없다. 물론 다르다고 우기면 다를 수는 있겠다. 진짜 꿀은 사양 꿀에 없는 비타민이나 아미노산이 들어있어 좋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 양은 새 발의 피. 벌꿀 100g에 비타민C는 하루 권장량의 3% 정도, B 복합체와 미네랄도 1% 미만이다. 별 의미가 없는 양. 이런 성분은 일상음식에 쌔고 쌨다. 이 정도는 황(흑)설탕을 먹인 사양 벌꿀에도 있다. 실제 사양 벌꿀은 색과 맛 등이 진짜와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속이려 들면 대책이 없다.

벌꿀을 약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한소리 들을 것 같지만, 실제 진짜와 사양, 심지어는 설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벌이 설탕의 고리를 자른 거나 우리의 소화효소가 자른 거나 결과는 같기 때문이다. 설탕을 먹으면 소장에서 순식간에 잘려 흡수된다. 참고로 설탕은 저분자이지만 잘리지 않고는 흡수되지 않는다. 이외로 과일과 고로쇠(혹은 메이플) 등 수액에 들어있는 단맛은 대부분 설탕이고 일부가 포도당과 과당이다. 단맛이 강한 과일일수록 그 나쁘다(?)는 설탕을 많이 먹게 되는 셈.

세간에는 벌꿀은 몸에 좋고 설탕은 나쁘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는 도긴개긴이다. 단순히 설탕의 결합 사슬이 잘렸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이를 놓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아서다. 최근에는 설탕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하다. 설탕은 꿀과 함께 지구 상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원임에도 말이다. 지쳤을 때 한잔 타 먹으면 피곤이 싹 가실 정도. 천대받는 이유는 맛있고 흔하고 값이 싸 그런가? 왜 스스로 많이 먹어 탈(비만)을 내놓고 설탕 탓으로 돌리나.

내친김에 욕먹을 각오로 한마디 더, 대중은 석청, 목청 하면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론은 양봉이나 토종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 석청은 양지바른 바위틈에, 목청은 고목의 빈 곳에, 양봉은 사람이 만든 나무상자에 꿀을 모은 것이다. 억지스럽지만 양봉 상자도 나무속이라 목청(?) 아닌가. 성분에도 별 차이가 없다. 단 꿀의 색깔이나 향이 조금 다를 뿐. 오래돼 색깔이 검은 것은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갈변(褐變)현상이다. 간장·된장이 오래되면 색깔이 진해지는 것처럼. 굳이 차이점을 따지자면 양봉에는 아카시아 꿀, 유채 꿀 등이 있지만, 목청, 토종꿀 등은 이런 게 없다. 왜? 여러 꽃에서 모은 잡꿀이니까. 이런 잡꿀이 특별히 좋을 것도 없다. 양봉에도 채밀장소와 시기에 따라 잡꿀이 있다. 해서 이상 결론은 벌꿀이 약이 아니라는 것. 하나의 식품으로 조금 귀하고 맛좋고 가격이 비쌀 뿐. 너무 중히 여기지 않아도 될듯하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