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에듀] 노경희 교수 "흘려듣기 대신 영어책 '읽듣기'가 답"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7:00

업데이트 2021.08.24 16:31

서울교대 노경희 교수(영어교육과)는 초등 영어 교사들의 스승이다. 24년간 학부와 대학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어린이 언어습득과 영어교육을 연구했다. 자신을 포함해 서울교대 제자들의 엄마표 영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우도 많다. “초등 교사들도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똑같이 고민해요. 많은 성공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지요.”

유아 영어 교육에 반대하는 그는 초등 입학 후 듣기와 읽기를 동시에 시작하는 ‘읽듣기’ 교육법을 2011년부터 학계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알려 왔다. 이러한 경험들을 엮어 『영어책 읽듣기의 기적』을 최근 출간했다.

서울교대 노경희 교수

서울교대 노경희 교수

우리나라 영어교육현장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초등 저학년이 1년씩 학원에서 파닉스를 배우거나 문제집 또는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는 걸 본다. 파닉스는 알파벳 기본 소리만 배우면 충분하다. 너무 자세히 배우면 오히려 해롭다. 미국 교과서도 영어 초보 학습자에게 맞지 않는다. 초등학생에게 회화와 파닉스, 문법, 어휘, 독해 등으로 영어를 분리해서 가르치면 각 내용을 통합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서는 부모가 영어교육의 기초 원리를 이해하고, 거시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거시적 로드맵의 틀을 알려달라.

“초등 시기의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수능시험, 나아가 수준 높은 성인 영어 구사자까지의 전체 과정을 봐야 한다. 초등학생 때는 그림책을 읽고 들으며 영어 패턴을 익히면 된다. 열심히 노력해 챕터북 수준까지 도달하면 아주 성공적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그때까지 익힌 영어 패턴의 정확도를 높이는 문법 정리를 해본다. 중고교 단계에서는 영어의 진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공부 어휘, 콘텐트 영어 능력 키우기에 집중하면 된다. 이렇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유아 조기영어교육이 왜 불필요한지 보인다.”

조기 영어 교육에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보다 그 효과가 크지 않다. 조기 교육이 가르치는 영어는 생활 영어다. 유아는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이 적어서 영어를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유아 수준의 생활 영어 이상 실력이 늘지 않는다. 생활 영어는 단어 2000개면 해결된다. 우리의 목표는 콘텐트 영어를 자유롭게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것이다. 유아가 장기적으로 영어를 잘하게 하려면 영어를 ‘빨리 배우는 것’보다 한국어 책 읽기를 통해서 생각 머리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어책 읽기 [출처 Unsplash]

영어책 읽기 [출처 Unsplash]

실제 조기 영어 교육 없이 영어학습에 성공한 사례가 많나.

“내가 서울교대에서 학부모 제자들과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영어조기교육을 시키는 대학원 제자가 있었다. 아이가 3살 때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고 하길래,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중단하고 초등학생이 돼 읽듣기 방법으로 영어공부를 꾸준히 했다. 몇 년 뒤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를 만났는데 영어 말하기와 쓰기 실력이 훌륭해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어를 교육해야 하나.

“영어의 패턴을 익히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 영어를 10년 이상 공부하고도 영어 회화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말하기를 충분히 연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어의 패턴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패턴을 반복해서 익혀야 하는데, 기계적인 반복은 뇌가 기억하지 못한다. 패턴 익히기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방법이 영어책 읽듣기다. 읽듣기를 초등시절 꾸준히 오래 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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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듣기’라는 말이 낯설다.

“학계에서는 90년대부터 사용되던 방법이다. 읽듣기란 눈으로는 영어책을 읽고 동시에 귀로는 오디오 음원을 들으면서, 읽기와 듣기를 동시에 배우는 방법이다. 읽듣기는 듣기만 하는 경우보다 더 쉬운 학습법이다. 청각과 시각을 함께 사용해서다. 듣고 읽은 뒤 영어책의 내용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면서 말하기와 쓰기도 자연스럽게 배운다.”

흘려듣기, 집중듣기와 어떻게 다른가.

“흘려듣기는 귀로만 영어를 듣는 것인데 초보자에게는 매우 어렵고 추상적인 방법이다. 어디까지가 단어의 경계인지 인식하기 어렵고 그 뜻도 추측할 단서가 없다. 집중듣기는 귀로 들리는 영어 단어를 눈으로 정확하게 짚어 가면서 공부처럼 읽는 반면 읽듣기는 ‘대강 읽고듣기’다. 영어책 주요 내용이나 전체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대강 읽고 들어서 영어의 패턴과 단어의 쓰임새를 익히는 방법이다. 영어는 수학이나 과학과는 달리 처음부터 정확하게 배우려고 하면 실력이 늘질 않는다.”

영어 듣기를 돕는 영상물이 많은 요즘 영어책 읽기가 갖는 특별한 장점이 있나.

“동영상을 보는 것도 영어를 배우는 좋은 방법의 하나지만, 음성언어를 배운 후에 다시 문자 읽기를 별도로 배워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영어책 중심으로 영어를 배우되, 이와 관련된 에듀테크나 동영상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패턴을 뽑아서 가르치는 방법은 어떨까.

“영어 패턴은 설명이나 암기로 배우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영어의 구조는 한국어와 너무 달라서 말로 설명해서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어의 패턴은 아이가 영어를 접하면서 터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적이다. 자전거를 탈 때 무게 중심 잡는 법을 말로 가르치기보다 아이가 자전거를 직접 타보면서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영어책 읽기 [출처 Unsplash]

영어책 읽기 [출처 Unsplash]

읽듣기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

“처음 시작은 하루 5분이면 된다. 그림책을 눈으로 보면서 음원을 함께 들으면 된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영어 그림책 읽듣기를 하는 거다. 4학년 정도 되면 집중력이 생긴다. 그때는 30분, 1시간가량 읽는다. 고학년이 되면 2시간도 읽을 수 있다. 챕터북까지만 가면 아이들이 자기가 원해서 읽는다. 그때는 시간이 늘어나도 괜찮다. 챕터북까지는 꾸준히 읽듣기를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말하기가 는다. 이후에는 원할 때만 들어도 좋다. 자전거의 보조 바퀴처럼 생각하면 좋다.”

영어 말하기는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말하기는 영어의 패턴을 음성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잘하려면 앵무새처럼 문장을 외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 또 다양한 지식에 사용되는 콘텐트 어휘가 있어야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어린이 영어책에는 대화체 영어가 아주 많이 섞여 있다. 아이가 읽듣기한 내용을 말로 표현하게 하라. 토플이나 토익 말하기 시험도 이와 똑같다. 지문을 화면에 텍스트로 보여주거나 녹음으로 들려주고, 읽고 들은 내용을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

화상영어는 도움이 될까.

“원어민의 도움을 받는다면 읽듣기한 내용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게 하라.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내용은 어떤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식이다. 원어민과 단순히 대화만 주고받으면 의미가 없다. 큰 비용을 투자해 국내에서 원어민과 오랫동안 생활한 아이의 사례를 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성적이 떨어졌다. 생활 영어 위주의 학습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번역이 일상일 미래시대에 영어 교육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나.

“인공지능(AI)이 생활영어는 해결할 거로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AI가 못하는 협상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영어 능력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또 구글과 유튜브,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해 지식 정보 역량을 키우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콘텐트 영어 능력도 키워야 할 것이다.”

이지은 객원기자

이지은 객원기자

 이지은 객원기자는 중앙일보 교육섹션 '열려라 공부' 'NIE연구소' 등에서 교육 전문 기자로 11년간 일했다. 2017년에는 『지금 시작하는 엄마표 미래교육』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지금은 교육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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