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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오진혁의 끝내주는 마지막 한발, 예비 활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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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위치한 현대제철 양궁단 연습장에서 선수단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최용희·김종호 선수. 한승훈 감독, 오진혁 코치 겸 선수. 구본찬 선수. 강기헌 기자

인천에 위치한 현대제철 양궁단 연습장에서 선수단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최용희·김종호 선수. 한승훈 감독, 오진혁 코치 겸 선수. 구본찬 선수. 강기헌 기자

탁. 탁.”

과녁에 꽂히는 화살 소리가 경쾌했다. 70m 앞에 있는 과녁은 엄지손톱 두 개를 붙인 크기에 불과했지만, 손을 떠난 화살은 신기할 정도로 과녁 중앙으로 향했다. 마치 화살 끝에 자석이 붙어 있는 것처럼.

지난 13일 인천 서구 심곡천 옆에 자리한 현대제철 양궁장을 찾았다. 2016년 준공된 훈련장은 세계적인 시설로 꼽히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장의 ‘비밀 병기’로 불리는 곳이다. 한승훈 현대제철 양궁단 감독은 “바닷바람이 자연스레 불어와 선수들이 훈련하기엔 최적의 입지”라고 소개했다. 1993년 창단한 현대제철 양궁단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실업팀이다.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수들은 훈련에 한창이었다. 올림픽은 징검다리일 뿐 경기는 계속된다. 다음 달 미국 앙크턴에서 열리는 양궁 세계선수권대회가 코 앞이다. 세계선수권대회는 2년에 한 번 열린다. 한 감독은 “세계선수권대회는 참가국을 제한하지 않아 올림픽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메달만큼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이 선수들에게 값진 이유다.

현대제철 양궁장에 전시된 뱃지들. 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다른 선수와 교환한 것들이다. 북한 대학생체육협회 뱃지도 전시돼 있다. 강기헌 기자

현대제철 양궁장에 전시된 뱃지들. 선수들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다른 선수와 교환한 것들이다. 북한 대학생체육협회 뱃지도 전시돼 있다. 강기헌 기자

오진혁 “예비 활로 올림픽 치렀다”

2011년 입단해 현대제철 코치 겸 선수로 뛰고 있는 오진혁 양궁 국가대표 선수도 훈련장에서 장비 점검에 한창이었다. 오 코치는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김우진·김제덕 선수와 함께 금메달을 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도쿄올림픽 뒷얘기를 꺼냈다.

그는 “예비용 활이 없었으면 금메달도 없었을 것”이라며 “국내 훈련 때 쓰던 활 핸들에서 화살을 쏠 때마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예비용 활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면 예비용 활을 따로 챙겨 가지만 대부분은 사용하는 일이 없지만 이번에 달랐다”고 했다. 마지막 한 발을 쏘고 나서 “끝”이라고 외친 이유를 묻는 말에 “후배들 들으라고 한 얘기가 응원해주신 분들 사이에서 회자됐다”며 “화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 어디 꽂힐지 감이 온다. 반복해서 훈련하기 때문에 그 느낌을 안다”고 답했다.

컴파운드, 리커브 잇는 메달밭 될 것

현대제철 양궁단에는 리커브 선수 7명과 컴파운드 선수 3명이 소속돼 있다. 리커브와 컴파운드는 활이 다르다. 리커브는 올림픽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활로 사람의 힘으로만 활시위를 당긴다.

반면 컴파운드는 활의 날개 위·아래에 도르래와 같은 바퀴가 달려 있다. 컴파운드는 망원렌즈를 포함한 조준기 2개도 달려있다. 양궁협회 등에 따르면 컴파운드는 20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리커브에 이어 또 다른 양궁 메달밭이 탄생하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2011년부터 컴파운드 선수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한 감독은 “한국은 컴파운드 불모지였다”며 “정의선 회장이 컴파운드 선수를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고 지난 10년간 선수단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양궁 시장은 컴파운드가 리커브에 앞선다. 그만큼 아마추어 선수층도 두껍다. 하지만 한국은 리커브에 대한 주목도가 워낙 높아 컴파운드는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현대제철 김종호 선수가 컴파운드 활을 들고 있는 모습. 리커브와 활모양이 다르다. 컴파운드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강기헌 기자

현대제철 김종호 선수가 컴파운드 활을 들고 있는 모습. 리커브와 활모양이 다르다. 컴파운드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강기헌 기자

아시안게임 3관왕 선수 출신으로 2006년 코치로 전향한 한 감독은 2009년 컴파운드 선수로 다시 활을 잡았다. 국내 컴파운드 선수층이 얕았기에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한 감독은 “컴파운드는 상대적으로 활시위를 당기기가 편해 리커브보다 아마추어 선수층이 훨씬 두껍다”며 “그동안 국내에선 리커브에 집중하느라 미국·네덜란드와 비교해 컴파운드 선수 육성에선 상대적으로 뒤처진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 컴파운드 실업팀 소속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컴파운드 국가대표팀은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단체 금메달을 따냈다. 리커브를 통해 배운 기본기와 양궁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감독은 “컴파운드는 선수만큼 장비가 중요한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다른 국가 코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배웠다”며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커브와 컴파운드 활 비교. [뉴시스]

리커브와 컴파운드 활 비교. [뉴시스]

9월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컴파운드 종목에는 현대제철 선수 두 명이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한다. 리커브에서 컴파운드로 전향한 최용희 선수는 “컴파운드는 리커브와는 또 다른 양궁”이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컴파운드 국가대표 김종호 선수는 “컴파운드 역사가 짧지 않지만,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아직도 채택되지 못했다”며 “국내에선 실업팀이 많지 않아 리커브처럼 치열한 경쟁이 없는 게 오히려 힘들다. 정식종목 채택 등으로 선수층이 두꺼워졌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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