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월 1% 배당 검은 유혹 “평생 노점해 모은 1.5억 날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5:00

업데이트 2021.09.19 00:24

대전에 살던 A씨는 2016년 8월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최OO 소개로 투자하신 IDS홀딩스 말이에요. 사기 같으니까 얼른 돈 빼세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어안이 벙벙해진 A씨는 쉽게 아들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11월이 만기야. 3개월만 있으면 엄마도 더는 안 할 거야. 이거 아까운 거야. 지금 빼면 그동안 받은 이자 다 토해내야 해.”

아들은 자신이 넣었던 2000만원가량의 돈은 미국에 가기 전 이미 정리한 뒤 어머니 A씨를 위해 IDS홀딩스 동향을 살펴왔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당시 아들 말을 듣지 않았다.

[1회] 금융사기공화국의 피해자들 : “사기꾼은 죽어서도 속인다”

최근 중앙일보와 만난 A씨는 “2014년 말께 IDS홀딩스에 돈을 넣을 때 최OO이 그랬다. ‘매달 1%의 배당금을 주는데 만약 중간에 빠지면 이자 먹은 걸 다 토해내야 한다’고. 실제 이자가 매달 150만원씩 꼬박꼬박 나오고 있었는데 어떻게 돈을 뺄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기존 투자자에 새 투자자 돈으로 매달 수익을 주는 건 100년 전 미국 다단계 금융사기의 원조 ‘폰지 사기’(주범 찰스 폰지) 때부터 오랜 돌려막기 수법이다. 한국의 금융사기 역시 대부분 이 공식을 따랐다.

2017년 1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IDS홀딩스 면책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2017년 1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IDS홀딩스 면책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찜찜한 마음으로 아들과 전화를 끊은 A씨는 약 한 달 뒤 김성훈(51·구속) IDS홀딩스 대표가 구속기소 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눈앞이 깜깜해진 A씨는 최모(44)씨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최씨는 “김 대표가 예전에도 수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갔다. 이번에도 잘 해결될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며 남은 두 달 치 이자를 A씨에게 송금하는 등 안심시키려 했다.

그후 5년 원금 1억5000만원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비바람·눈보라 헤쳐가며 노점을 해서 억척스럽게 모아온 재산이었다. 체중이 10㎏가량 빠져갈 때쯤 심상찮은 낌새를 챈 남편 B씨의 추궁 끝에 사기를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최씨는 IDS홀딩스 미래지점 소속 중간 모집책(미래 대전지점장)이었다. 대형 증권사 자산관리사 행세를 하며 상담료로 20만원을 받고 가짜 재무상담을 해줬다. 그러면서 “‘FX(Foreign Exchange·외환)’ 마진 거래 사업 등 김 대표가 운영하는 해외 사업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투자하면 그 수익금으로 매월 1~10%의 이익배당을 보장하고, 1년 후에 원금을 돌려주겠다”며 재산의 대부분을 IDS홀딩스에 투자하도록 했다. 실제 증권사 사무실에서 직원 행세를 하고, A씨가 자신을 통하지 않고 직접 돈을 입금하도록 했다.

같은 수법으로 수백명을 속인 최씨는 결국 2019년 7월 법원에서 방문판매법 위반, 유사수신규제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의 남편 B씨는 “최씨가 초래한 피해액만 142억원이 넘는데,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어딨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기 혐의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재판장은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거나 무리하게 투자한 피해자들에게도 다소 피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책임이 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B씨는 “서민들은 호소할 데도 없다. 결과적으론 최씨보다 판사가 더 미웠다”고 말했다.

라임·옵티머스 “‘안전하다’는 은행 자산관리사(PB) 말 믿었는데…”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앙일보는 2000년대 이후 1조원 이상의 대규모 다중 피해(편취액 기준)를 준 5대 금융사기 피해자들을 만났다.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는 금융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존 피해자들의 사례부터 뜯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5대 대형 금융사기 사건으론 ▶조희팔의 다단계 사기 사건(피해액 5조원)▶김성훈의 IDS홀딩스 사건(1조856억원) ▶이철의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1조원) ▶이종필의 라임자산운용 사건(1조6000억원) ▶김재현의 옵티머스자산운용사건(1조3526억원)을 선정했다.

5대 사건을 합쳐 12만명에 육박하는 피해자들은 저마다 사연이 다르지만, 취재진과 만난 이들은 대개 A씨 부부처럼 알뜰히 모은 목돈을 은행이자보다 좀 더 불려보려 했던 서민·중산층이었다. 사모펀드 사기 사건인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건의 경우 수익률보다는 판매사인 제도권 은행·증권 자산관리사(PB)들의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모아둔 돈을 전부 맡겼다가 피해를 봤다.

주요 피고인 형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피고인 형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리은행을 통해 라임 펀드에 가입한 김모(38)씨는 “3% 확정금리에 많이 굴러가면 5%까지 갈 수 있다. 부동산 담보를 갖고 있고 안정 채권에 투자가 되기 때문에 정말 안전하고 확실한 상품”이라는 PB의 말을 믿고 남편의 사망보험금 2억원을 넣었다.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아이들에게 남긴 돈이라 생각해 안전성을 꼼꼼히 물어 투자한 것이었다.

2019년 11월 디스커버리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이 터졌을 때 김씨는 담당 PB에게 “라임도 불안하니 이자는 됐고 빨리 돈을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PB는 “그럴 일 없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돌아온 건 이석증·임파선염 등 병치레와 변제금 500만원뿐이었다. 판매사인 우리은행은 현재 원금의 61% 배상을 약속한 상태다.

옵티머스 사건 피해자 C(65)씨도 “NH투자증권에서 안전하다는 얘기만 안 했어도 안 샀을 것”이라고 했다. 6개월짜리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고 해서 다소 의아했지만 “공공기관이 부도만 나지 않으면 6개월 뒤 정상적으로 100% 환매된다”는 PB의 말을 믿었다.

C씨는 “금리가 연 2.8%면 이자 떼고 1% 정도의 수익률을 감수하고 들어간 거라 고수익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며 “심지어 중간에 돈 필요할 때 수시로 중도 환매가 된다고도 해 안전하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금융감독원의 100% 배상 결정으로 투자금 수억원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던 그는 “남들은 로또 맞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당하게 돌려받은 돈”이라며 “판매사가 투자자에 책임을 물으려면 검증부터 똑바로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옵티머스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NH농협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H농협금융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결정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옵티머스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NH농협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H농협금융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결정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VIK 사기 사건 피해자인 방모(31)씨는 “차라리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부럽다”고 했다. “거기는 제도권 판매사를 끼고 벌인 사기라 어느 정도 배상이라도 해주지만, 밸류는 비제도권이라 책임질 사람이 없다. 그나마 책임질 놈들은 개털도 없거나, 감옥에 있거나, 범죄수익을 모두 은닉한 상태”라면서다.

VIK 사건은 무인가 금융회사를 차린 뒤 유망 벤처기업 투자 명목의 크라우드펀딩을 빙자해 1조원대 불법 투자금을 모은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이다. 부모와 함께 투자해 1억2000만원을 날린 방씨는 “단순히 액수보다는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들인 시간이 함께 날아가는 것 같아 허탈했다”고 말했다.

“돈 돌려준다” 모집책 꼬임에 “사기꾼 선처” 탄원서 서명도

금융 사기 피해자들의 증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금융 사기 피해자들의 증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결국 무위에 그쳤지만, 피해 회복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방씨는 황당한 일도 겪었다. 중간 모집책들이 자신도 피해자라 주장하며 엉뚱하게 이철(56·구속) 대표 등 VIK 임원들에 대한 석방 탄원 운동을 벌이자 일부 피해자들이 불처벌 탄원서를 내는 등 동조했던 것이다. 모집책들은 “이철 대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적폐 검찰’이 회사를 표적 수사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표가 나와야 돈도 찾을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꾀었다고 한다.

IDS홀딩스 사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연합회 측에서 김성훈 대표의 공판을 방청하려 법원에 갈 때마다 또 다른 무리의 피해자들이 다가와 “김성훈을 빼내야 변제를 받을 수 있다”며 삿대질과 욕설을 하곤 했다. 피해자 B씨는 “김성훈과 감방에 같이 있던 ‘한모’라는 자가 먼저 출소해 지점장들을 모아 놓고 ‘김 대표가 출소해야 변제가 가능하다’고 속여 피해자 수천명으로부터 김성훈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기꾼들에게 피해자는 감옥에서도 2차, 3차 기망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역대 최대 규모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은 주범을 법의 심판대에조차 세우지 못했다. 대부분이 2011년 12월 조씨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검찰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사기꾼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속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해자 유모(67)씨는 범행 막바지인 2008년 5월 뒤늦게 조희팔 일당이 운영한 다단계 업체 ㈜리브의 의료기 렌탈 사업에 1억원을 넣었다.

유씨는 “그해 9월 경찰이 리브 서산센터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이 조사를 받을 때도 사업은 잘 진행됐고 돈도 나왔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익금이 10월에 끊기기 전까지 돌려막기라고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조희팔은 그해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피했고, 유씨 1억원도 사라졌다. 유씨는 “조희팔은 모은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피해자를 더 많이 유치하는 걸 강조했다는 점에서 악질 중의 악질”이라고 했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금융사기를 예방할 솔루션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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