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건 쌀 30포대뿐” 韓에 소송낸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5:00

업데이트 2021.08.27 17:11

베트남 중부 퐁니·퐁넛 마을 생존자 응우옌 티 탄(61).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중부 퐁니·퐁넛 마을 생존자 응우옌 티 탄(61).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전 당시 파병 한국군에 피해를 입었다는 마을의 생존자들이 한국 법원에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로 전했다.

NYT는 이 기사에서 “한국군이 마을에 오면서 어머니, 누나, 남동생과 친척 등 다섯명을 잃었다”는 베트남 중부의 퐁니·퐁넛 마을의 생존자 응우옌 니 탄(61)의 얘기를 알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민간인 피해 사건을 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응우옌은 “한국군이 우리 마을에 왔던 그날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남한 정부는 우리 마을을 방문한 적도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수색 중인 모습. [중앙포토]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수색 중인 모습. [중앙포토]

한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32만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한국군은 강한 군기와 전투력으로 무장에서 앞서는 미군 이상의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NYT는 한국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젖먹이 돼지 새끼도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전했다.

단 현지에선 한국군에 민간인까지 피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NYT가 전한 당시 미군 조사에 따르면 미군 해병대와 남베트남 민병대는 꽝남성 디엔반에서 작전 중, 퐁니·퐁넛 마을에서 오두막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해당 마을로 향했다. 한국군에게 부상을 당하고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돕기도 했다. 이어 퐁니 마을에 도착하자 머리에 총을 맞은 어린이와 임산부, 아직 살아 있는 채로 가슴이 잘린 여성 등을 포함해 시쳇더미를 발견했다. 조사단 중 한 명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70명 이상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4월 미군 수사관들은 “전범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베트남에 주둔 중이던 채명신 중장(1926~2013)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채 장군은 “학살은 공산주의자들이 꾸민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참전용사 류진성 씨는 “베트남전 참전 해병대는 (한국군에 해를 입힌) 작은 화재라도 발생 시, 발원지를 추적해 발견된 모든 것을 파괴해 비무장 민간인을 포함해 적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당시 마을에 무장한 남성은 없었다고도 했다.

미군 “위로 명목 쌀 30포대 지급”

기밀 해제된 미군 문서에서 미 해병대 수사관 존 캠파넬리 소령은 “이 사건의 희생자는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이었고 대다수가 여성과 어린이였다”고 했다. 그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유족을 달래기 위해 사죄의 뜻을 전하고 2월 18일 위로 명목으로 쌀 30포대를 건넸다”고 했다. NYT는 “베트남의 생존자는 정의를 원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쌀 30포대였다”고 전했다.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의 유가족 판반하인(54).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의 유가족 판반하인(54). [한베평화재단]

“文대통령 2018년 유감 표명 효과 없어”

NYT는 한국과 베트남 정부 모두 피해자가 있는 이 사건의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하노이를 방문했을 당시 “불운한 과거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공식 사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NYT는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생존자들을 거의 위로하지 못했다”며 “응우옌과 다른 생존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는 ‘한국 정부와 관리들은 생존자들에게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우리는 사과를 원한다’고 적혀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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