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용수 할머니 "사실 말해도 명예훼손, 나도 법 어겼나"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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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5월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5월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등이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해 사실을 적시할 경우에도 명예 훼손 행위로 보고 금지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피해자를 보호한다면서 왜 단체가 법안에 들어가느냐.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할머니들을 또 무시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특히 법안 공동 발의자에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포함된 데 대해 “아직도 자신의 죄를 모른다”고 말했다.

법안 "위안부 단체 명예훼손 금지"

이 할머니가 언급한 법안은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대표 발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법’ 개정안이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발의 취지다.

구체적으로 ‘누구든 피해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해 피해자나 유족,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형사 처벌 조항은 없지만, ‘사실 적시’도 금지 행위에 포함한 것은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한 진실을 알려도 범법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처럼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할머니 "내가 밝힌 정대협 진실도 위법인가" 

이 할머니는 이에 대해 “사실을 말하는데 무슨 명예가 훼손되느냐. 진실을 말해서 훼손된다면 그것을 명예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그렇다면 내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도 법을 어긴 것이냐. 어떻게 자기들 마음대로 하느냐”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한 법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한 법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이 할머니는 지난해 5월 “정대협이 모금한 돈을 할머니들을 위해 쓰지 않았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회계 부정과 쉼터 고가 매입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에 따라 수사를 벌인 결과 검찰은 윤 의원을 보조금 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尹 참여에 "자기가 살려고…죄도 모른다"

특히 이 할머니는 윤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데 대해 격분했다.

“저는 ‘이제 이만하면 알겠지’ 하고 더 이상은 입도 안 뗐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합니까. 너무너무 화가 나요. 웬만하면 참겠다 했는데, 이건 얼토당토않지 않습니까. 제정신이 아닙니다. 자기 죄를 모릅니다. 또 자기가 피하려고, 자기가 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 먹고도 아직 부족해서…. 할머니들을 무시하고, 속이고, 또 속이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리는 못합니다. 이러면 안 된다고 빨리 좀 알려주세요.”

이 할머니는 “안 된다” “이렇게는 못 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다 “혈압이 올라서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한 법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한 법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피해자 명예 보호' 본질 흐려질 우려

실제 정의연 이사장일 당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 장애를 이용해 기부하게 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의 윤 의원이 해당 법안에 이름을 올린 데 대해 논란이 이는 분위기다. 위안부 피해의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막자는 법안의 본래 취지가 오히려 이 때문에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여러 행위들을 근절할 필요성은 크지만, 보호의 범위나 금지 행위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정교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안에 두루뭉술하게 한두개의 조항을 신설한다고 될 일이 아닌 데다, 발의자 문제로 다시 법안 자체가 뜨거운 감자가 돼버리면, 정작 할머니들이 바라던 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논쟁만 남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비방 목적 있을 때만 금지" 

이와 관련, 인재근 의원실 관계자는 정의연과 관련한 피해자와 언론의 비리 의혹 제기도 범법 행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단순히 사실을 적시해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라는 전제가 포함돼 있다. 비방할 목적에 대해서만 금지하기 때문에 위안부 관련 단체의 운영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것 자체는 이 법에 따라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에는 어길 시 형사처벌한다는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 유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 유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의연은 尹 기소에도 "피해자 폄훼"

하지만 정의연은 윤 의원에 대한 검찰의 기소도 피해자를 폄훼하는 행위로 규정해왔다. 지난해 9월 공식 입장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전반은 물론, 인권 운동가가 되신 피해 생존자들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폄훼하려는 저의가 있다고밖에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기소한 윤미향 의원 혐의와 액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검찰이 기소한 윤미향 의원 혐의와 액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법조계에서는 과잉 입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행 형법상 명예훼손죄로도 처벌할 수 있는 행위인데 추가입법을 한 데다 금지 대상에 단체까지 포함하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안 취지는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행위를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는 것’이라면서 조문 내용에는 ‘사실 적시 행위’와 ‘단체에 대한 명예 훼손’을 포함했다.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해 도출해 낸 결론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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