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이인규에 배상금 5배 주고 싶나

중앙일보

입력 2021.08.2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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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김승현 사회2팀장

김승현 사회2팀장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우주의 기운인가. 지난 19일 벌어진 두 사건에 소름이 돋았다. 이날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고의·중과실 보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게 골자다.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국내외 비판에도 다수당의 확신은 탈레반의 신념처럼 강력했다.

새 법안은 명백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로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게 했다.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세부 조항도 있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히거나,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하거나,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른 제목·시각 자료를 삽입 또는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다.

판결 뒤집힌 전 중수부장 소송
허위 보도 판단은 복잡한 함수
특칙은 언론의 자유 옭아맬 것
서소문 포럼 8/24

서소문 포럼 8/24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겼다. 이 전 중수부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렸다는 기사가 허위보도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지난해의 1심이 뒤집혔다. 언론사와 기자에게 4000만원의 손해배상금도 물렸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은 민주당이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것을 당위로 만든 기폭제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론개혁 입법의 9부 능선에서 나타난 것이다. 말 그대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다.

이 소송은 3년 전인 2018년 6월 노컷뉴스의 보도에 대한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시계 수수 의혹’ ‘논두렁 발언’의 내막에 대한 표현이 문제였다. 기사는 이 전 중수부장이 미국에 체류 중이라면서 진실 규명을 위해 그가 입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국정원이 시계 수수 의혹을 받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에 이 전 부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이 전 중수부장은 “국정원이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 데에 내가 개입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진실이 아니다”며 소송을 냈다. ‘국정원이 한 일을 왜 자꾸 내가 흘린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하느냐’는 주장이었다.

1, 2심 판결은 왜 엇갈렸을까. 이 전 중수부장의 주장을 배척한 1심 판결(2020년 2월 11일 서울남부지법)은 이렇게 판시했다. “공직자의 공직 수행에 대한 언론의 감시·비판·견제는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하여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이상 정당한 언론 활동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으로서의 공무에 관련된 기사 내용이 허위로 볼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2심에서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권한과 의무를 진 언론기관으로서는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함에 있어서 일반 독자들이 사실을 오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 내용이나 표현방법 등에 대하여도 주의를 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전 중수부장이 이미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를 비판하는 등 자신의 입장을 여러 차례 나타냈는데도 별다른 취재 없이 그가 언론에 흘렸다는 뉘앙스를 독자에게 전달한 건 잘못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상고심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쪽의 판결이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두 판결은 언론의 의혹 보도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 펼쳐지는 복잡 미묘한 변수들을 보여주고 있다. 판결이 엇갈린 것처럼 법원은 수많은 판례를 바탕으로 취재와 보도 상황의 사실관계와 우선 순위를 판단한다. 판결문엔 항상 언론의 자유와 그 한계를 고심한 근거가 적혀 있다.

언론도 소송을 피하고 싶지만, 진실은 늘 뇌물 의혹과 망신주기 수사의 사이에 있다. 뒷배가 국정원인지 검찰인지 모를 언론플레이가 펼쳐지고 정보의 태풍은 눈을 뜨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진실의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의무가 언론에 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특칙’과 ‘세부조항’이 설명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국민이 입증하기 편하도록 만들어 놓은 규정”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어설픈 규정이 언론의 비판과 견제, 감시와 의혹 제기 기능을 옭아맬 폐그물이 될 것임을 국민은 직감하고 있다. 정녕 이 전 중수부장에게 배상금을 5배로 주고 싶은 것인지 민주당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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