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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날갯짓이 일으킬 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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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1. 지난 7월 8일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사람을 실어나르는 걸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가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 탈출’과 유사점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 2. “탈레반이 모든 것을 제압하고 국가 전체를 소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같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아프간 장악 가능성을 일축했다.

# 3. 6월 7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아프간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해 “안보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더라도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일어날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연설한 조 바이든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연설한 조 바이든 대통령. [AFP=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카불 함락은 급박하게 돌아간 주말에 일어났고,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를 손에 넣었다. 그 직전 미군 헬기가 대사관에서 외교관들을 탈출시켜 ‘사이공 순간’을 재연했다. ‘바이든 외교팀은 미래를 보는 재주가 있다’는 조롱도 나온다.

바이든은 자타 공인 ‘외교’ 대통령이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세 번 맡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도 그의 외교 경험을 높이 사서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으로서 중요한 첫 외교 시험대에서는 다채로운 어록만 남긴 채 무참히 실패했다.

카불 함락 일주일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빠지고, 의문은 커진다. 바이든이 30만 대군이라고 주장한 아프간군은 싸울 의지가 없었다는데, 정신력을 무시하고 군을 평가하는 게 가능한가. 바이든 취임 당시 2500명이던 미군이 아프간에서 대부분 철수했을 때 미국인은 1만~2만 명이나 남아있었다. 총 든 군인이 총 없는 민간인보다 먼저 ‘탈출’하는 게 가능한가. 구출 작전에 병력 6000명이 다시 투입됐다.

바이든의 아프간 실책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1979년 이란 인질 사건 미숙 대응,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무대응과 맞먹는 대재앙이라는 시각이 있다. 카터와 트럼프는 재선을 놓쳤고, 재선 첫해였던 부시는 지지율이 90%에서 30%대로 급락해 조기 레임덕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과 바이든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동맹은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불안해하고, 중국은 미국의 약점을 잡았다며 의기양양하다. 미·중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되고, 북한도 빈틈을 노릴 수 있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 결과를 낙관할 수 없게 됐다. 바이든 재선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아프간 실책은 어떤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