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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엘리가 저격한다

6일마다 데이트 살해당하는데…尹후보님, 뭐가 건전 페미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엘리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안녕하세요. '엉덩이 탐정'을 닮은 국민의힘 윤석열 예비 후보님. 이 글은 저와 반대 뜻에 선 이들에게는 다분히 ‘지적질’로 읽힐 수 있는(들릴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어 편지글 형식을 빌게 되었습니다. 변방의 '고나리자'(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리자 마인드로 간섭하는 사람)를 자처하는 저는 ‘엘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이냐고요? 음, 주로 짝다리 짚고 서서 예쁜 포장지에 싸인 세상을 삐뚜름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끼적이는 일을 합니다. 제가 지난 2년여 동안 지은 책 제목만 봐도 어렵지 않게 추측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연애하지 않을 권리』『우리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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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각설하고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지 운을 띄게 된 계기는 지난 8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느 때처럼 버터 풍미 가득한 탄수화물을 빈 위장 속에 욱여넣으며 조간신문을 넘기던 중,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 모임에 연사로 나선 후보님 발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후보님께서는 저출산 문제를 화두로 꺼내며 “페미니즘이라는 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셨더군요. 해당 문단을 읽던 제 입가에는 조소 비스름한 것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부계 사회의 공고한 기득권 핵심에 놓인 이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어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너무나 투명하게 잘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에 한창 밈(Meme·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처럼 떠돌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얼핏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뭐지? 마블처럼 무한 확장되는 세계관 같은 건가? 이번엔 ‘대통령 예비 후보가 허락한 페미니즘’ 정도가 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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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가 허락한 페미니즘? 

다 차치하고, 애당초 후보님이 언급한 ‘건전한’의 정의부터 제대로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합니다. 가타부타 덧붙이기 전에 우선, 후보님께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미디어에 데이트 폭력, 강간, 살해와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된 피해자 성별은 어느 쪽인지 말입니다. 이별에 앞서 ‘안전이별’을 운운하는 쪽은요?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에 의한 살인ㆍ살인미수 피해자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2009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 지인 남성이 살해한 여성은 975명에 달하며, 살인 미수 1810명, 주변인 포함 2229명이라는 통계에는 무어라 답하실 수 있을까요?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발생한 살인 범죄(미수 포함) 847건 중 피해자와 범죄자가 연인 관계였던 경우는 총 64건이었습니다. 365일을 64로 나누면 약 5.7일로 1년 중 6일에 한 번꼴은 데이트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는요? 피해자 성별 추측이 아직도 오리무중인가요? 저는 후보님께 애당초 대한민국 사회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건전한’ 교제가 상식적으로 가능한 판이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신변의 안전함’ 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교제의 장에서 ‘건전함’을 먼저 추구하신다고요? 저는 이쯤에서 혹시 예비 후보자님께서 혹시 건전함이란 단어에 대한 의미를 모르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됩니다. 자, 다음 단락을 통해 해당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할까요?

건전하다 健全하다 [건ː전하다] 듣기 어휘등급

· 1.

adj 병이나 탈이 없이 건강하고 온전하다.

· 2.

adj 사상이나 사물 따위의 상태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상적이며 위태롭지 아니하다.

Standard Korean Dict.

만취한 20대 남자가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여성을 향한 이런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아직 만연하다. [사진 YTN 캡처]

만취한 20대 남자가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여성을 향한 이런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아직 만연하다. [사진 YTN 캡처]

애당초 신체적으로 ‘온전함’을 보장받을 수 없는 기울어진 교제의 장이었습니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교제가 ‘더’ 불건전해지려면 아마 페미니즘 이슈가 불거진 후 데이트 폭력 살해 등의 사건 사례에 여성 가해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자료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겐 ‘정신병’이라 불리는 페미니즘의 도래 이후 증가한 것은 여성 범죄자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부부 강간, 가정 폭력, 직장 내 성희롱 등이 법적으로 범죄로 규정된 배경에는 가부장제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사적인 영역의 일이라 치부되던 일들을 머리채를 잡고 양지로 끌어내 법정으로 끌고 간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죠.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미디어 내 여성 성 상품화 등)에 대해 불편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 낙태권에 대해 제창하고, ‘No means No’ ‘My body My choice’라는 문구를 외치며 목소리를 낸 것도 또한 이 미친 페미니스트 작자들의 성과이고요. 가정폭력, 맨스플레인, 강간 문화, 성적 권리 의식 등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여성이 매일 접하는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재정의하고 그런 세상을 바꿔나갈 방법을 열고자 ‘브래지어 끈 풀고’ ‘머리채 풀고’ 난리 치는 게 언급하신 불건전한 페미니스트들의 업적이랍니다. 어떤가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불건전해졌나요? 아니, 사실 아직도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평형이 맞춰지는 과도기의 한가운데입니다.

페미니즘 대두 전, 가부장제 권력 아래에서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은 신뢰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부장제에 잘 순응하고, 2세 생산이 유효하게 보이는 신체(젊음)를 유지하는 것이 생에 달성해야 할 과제의 전부였습니다.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 

“여편네가 맞을 만하니까 때렸다”“가장이 가정의 규율을 잡기 위해 손찌검 좀 했다는데,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지 말라”“사건 당시 피해자도 즐겼다" 등의 남성 가해자의 말에만 힘이 실렸던 시대가 채 50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교제에 앞서 죽지 않을 권리, 맞지 않을 권리, 스토킹 당하지 않고, 동의 없이 찍힌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 업로드되지 않고, 가해자(성범죄자)가 올바른 형량을 받는 사회가 오기 전까지는, 후보님이 명명하신 '건전한 교제'의 달성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는군요.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입니다. 여성들은 아직도 기득권 핵심에 있는 남자들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득권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언제나 ‘피해자의 자격’을 논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모되기 일쑤입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장의 성 비리가 폭로되기까지 공공기관 내에서의 성희롱 성폭력 관련 비리가 터지지 않은 것은 과거가 현재보다 ‘건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깜깜한 암흑 속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맨스플레인'의 작가 레베카 솔닛의 말을 인용하며 줄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모든 공격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그리고 비로 우리가 조만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세상은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가끔은 상서롭다고 봐도 좋을 만한 방식으로 지금도 변하고 있다.”
후보님, Welcome to the party!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들은 이제 막 파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네요. 모쪼록 앞으로도 재밌게 즐기시다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중앙일보 기사에 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