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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상감청자 빚어낸 도공처럼 내 취향 그릇 만들기 도전

중앙일보

입력

인간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때 흔히 ‘우리는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흙에서 기원한 것들을 먹고 입고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죠. 흙은 지구 위 모든 생명을 잇는 순환고리이자 원천인 셈이에요. 이렇듯 생명의 싹을 움트게 하는 흙. 하지만 대부분의 땅이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에서는 흙을 가까이하기 힘든 게 현실이죠. 대신 흙을 오물조물 만져 멋진 작품을 만들며 힐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바로 점토로 모양을 만든 뒤 높은 온도에 구워 단단하게 만드는 도자기 공예(도예)예요. 서울시 양천구에 위치한 ‘흙사랑’을 찾은 윤시현·임선민 학생기자가 청소년 맞춤 도예를 체험해보기로 했죠.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가 한 달 뒤 예쁘게 구워져 나올 도자기를 상상하며 각자 성형·채색을 마친 작품을 들어 보였다.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가 한 달 뒤 예쁘게 구워져 나올 도자기를 상상하며 각자 성형·채색을 마친 작품을 들어 보였다.

문을 열자 마치 군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착착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도자기들이 눈에 띄었어요. 흙사랑 김정현 선생님이 “도자기를 처음 굽는 초벌구이를 끝낸 뒤 도자기를 다시 굽는 재벌구이를 기다리고 있는 도자기들이에요. 색이 참 예쁘죠?”라고 설명했어요. 성형을 마친 도자기는 가마에 넣어 총 2번 구워내는데, 초벌구이 온도는 섭씨 700~800도, 재벌구이 온도는 1100~1250도에 달할 정도죠. 화산 속 용암이 최고 1200도라 하니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할 수 있겠죠. 김 선생님은 “다른 재료는 다 녹아도 흙은 녹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만든 도자기. 색·모양에 제한이 없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만든 도자기. 색·모양에 제한이 없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시현 학생기자가 “도자기는 색과 모양이 정말 다양한데, 어떤 종류가 있는지” 물었죠. “도자기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자기·도기·사기·토기 등의 제품을 모두 통틀어 부르는 말이에요. 기본 재료인 흙의 종류가 다양하고 흰색·갈색·검은색·빨간색 등 색에 따라 성분도 다른데, 흙에 철분이 많으면 파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나오는 식이죠. 초벌구이를 마친 뒤 도자기 겉면에 광택감을 주고 액체·기체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 하는데, 이때 유약에 어떤 색소를 넣느냐에 따라 또 색이 달라지기도 해요. 모양에는 제한이 없어요. 얼마든지 자신이 만들고 싶은 형태로 다듬을 수 있다는 게 도자기의 장점입니다.”

도예를 전공한 김정현(가운데) 선생님은 “완벽한 도자기를 위해 시행착오와 연구를 반복하는 과정조차 매력적”이라고 했다.

도예를 전공한 김정현(가운데) 선생님은 “완벽한 도자기를 위해 시행착오와 연구를 반복하는 과정조차 매력적”이라고 했다.

“도자기는 예쁘긴 한데, 막상 실생활에선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시현 학생기자의 말에 김 선생님은 “집에 있는 식기 대부분이 도자기일 것”이라며 웃었죠. “평소 쓰는 밥그릇, 반찬 그릇, 컵도 도자기가 대부분이에요. 화장실에 있는 하얀 세면대·변기도 도자기로 만들고요, 치아 교정에도 세라믹(ceramic·도자기)이 쓰이죠. 공업용 세라믹을 활용해 반도체를 만들기도 하는데, 아주 튼튼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비롯해 탱크·우주왕복선·미사일 등의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죠. 우리가 식당 같은 곳에서 도자기를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깨지기 쉽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사용하다 보니 파손 위험이 높겠죠.”

12세기 고려 시대의 수준 높은 도자 기술을 보여주는 ‘청자 흑백상감 운학문 매병’. 크리스티코리아

12세기 고려 시대의 수준 높은 도자 기술을 보여주는 ‘청자 흑백상감 운학문 매병’. 크리스티코리아

선민 학생기자가 “학교에서 도자기에 대해 배운 적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도자기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우리나라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은 이웃 나라에서도 유명했는데, 지금도 고려 시대 청자와 조선 시대 백자는 세계적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랍니다. 특히 12세기 중반 고려인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진 ‘상감청자’가 높이 평가받죠. 청록색도 아니고 하늘색도 아닌 오묘한 색의 도자기를 본 적 있나요?” “네! 교과서에서 봤어요.”(선민) “그걸 비색(翡色)이라 해요. 상감청자는 은은한 비색도 아름다운데 고려인들이 창안한 ‘상감기법’을 사용해 학·국화 등을 그려 넣어 꾸미기까지 했죠. 상감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우선 반 건조된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 안을 백토(白土)나 흑토(黑土)로 채워요. 초벌구이 후 비색을 내는 청자유를 발라 재벌구이 하면 이전에 새겼던 무늬가 청자유를 통해 보이는 기법이죠.”

김정현(왼쪽) 흙사랑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오목한 그릇을 만드는 윤시현 학생기자. 손가락 힘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김정현(왼쪽) 흙사랑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오목한 그릇을 만드는 윤시현 학생기자. 손가락 힘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니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차례입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단단히 걷은 뒤 물레 앞에 앉았죠. 물레는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기구로, 판이 돌아가는 회전력을 이용해 모양 성형, 무늬 넣기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죠. 손으로 돌리는 손물레, 발을 이용한 발물레, 전력으로 작동하는 전기물레 등이 있는데, 요즘은 대부분 전기물레를 사용해요. 물레 아래에 있는 페달을 밟는 강도에 따라 물레가 돌아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도 전기물레로 도자기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물레 앞에 앉아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

물레 앞에 앉아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

우선 점토를 물레 회전축 정중앙에 놓고 페달을 밟으며 기둥 모양으로 빚어요. 도예의 기초가 되는 작업인데, 학생기자단은 익숙하지 않아 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죠. 페달을 밟으며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점토 양쪽에 갖다 대니 별 힘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금세 매끈한 점토 기둥이 완성됐어요. “물레 작업 때 주의할 점은 어떤 모양을 만들겠다고 해서 너무 서두르거나 갑자기 지나치게 힘을 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차분한 마음으로 손을 조금씩만 움직여도 점토가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가 서울 양천구 ‘흙사랑’을 찾아 전기물레를 이용한 도자기 공예를 체험했다.

윤시현(왼쪽)·임선민 학생기자가 서울 양천구 ‘흙사랑’을 찾아 전기물레를 이용한 도자기 공예를 체험했다.

주의사항을 숙지한 시현·선민 학생기자가 “떨린다”며 발에 힘을 줘 페달을 밟고 조심스레 점토에 손을 뻗었습니다. 오목한 그릇 모양을 만들려면 점토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쥔 뒤 엄지에 힘을 줘 점토 가운데 부분을 파야 하죠. “선생님이 할 땐 쉬워 보였는데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아요!” 두 사람의 SOS에 김 선생님이 출동했어요. “엄지에 힘을 더 세게 주고요. 흙이 마르면 안 되니까 중간중간 물을 뿌려주세요. 어느 정도 오목한 모양이 나왔으면 만들고 싶은 그릇 모양에 따라 밖으로 넓게 벌리든지 안으로 깊게 파면 돼요.” 납작한 그릇을 만들기로 한 소중 학생기자단은 엄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천천히 손의 간격을 넓혀갔어요. 물레가 회전할 때마다 조금씩 넓어지는 모습에 두 학생기자 모두 감탄했죠. 원하는 모양이 나왔으면 손가락으로 그릇 바닥과 안쪽을 매끈하게 다듬습니다.

성형을 마친 뒤에는 칼과 실을 이용해 점토 기둥에서 완성된 도자기 작품을 분리한다.

성형을 마친 뒤에는 칼과 실을 이용해 점토 기둥에서 완성된 도자기 작품을 분리한다.

“이제 가장 어려운 단계인데, 칼과 실을 이용해 점토 기둥에서 그릇만 똑! 뗄 거예요. 칼로 도자기 겉면에 자를 위치를 표시한 뒤 실을 넣어 도자기 그릇을 떼면 됩니다. 기껏 다 만들어놓고 도자기를 떼는 과정에서 떨어뜨리는 사람이 많아요. 어려운 작업이니 선생님이 도와줄게요.” 실을 도자기 밑면에 넣어 살살~ 당기니 짠! 도자기 그릇에 평평한 바닥이 생겼어요.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브이(V) 자로 벌려 도자기 아래를 살짝 잡고, 원하는 위치에 놓으면 도자기 성형 완료입니다.

시현 학생기자가 도자기 전용 물감으로 성형을 마친 작품에 색을 입히고 있다. 여러 색을 활용해 화사한 느낌.

시현 학생기자가 도자기 전용 물감으로 성형을 마친 작품에 색을 입히고 있다. 여러 색을 활용해 화사한 느낌.

선민 학생기자는 차분한 청록생을 택했다. 초벌·재벌을 거치면 채색할 때보다 진하게 발색되니 주의해야 한다.

선민 학생기자는 차분한 청록생을 택했다. 초벌·재벌을 거치면 채색할 때보다 진하게 발색되니 주의해야 한다.

도자기에 색을 입힐 땐 일반 물감과 조금 다른 도자기 전용 물감을 사용합니다. “도자기에 물감을 칠한 뒤 가마에 구워내면 지금 여러분이 팔레트에서 보는 색보다 훨씬 진하게 발색될 거예요. 팔레트에선 분홍색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빨간색, 하늘색처럼 보여도 남색으로 나오는 식이죠. 그 점에 유의하면서 여러분이 원하는 색으로 마음껏 꾸며보세요.” 선민 학생기자가 과감하게 청록색 물감에 손을 뻗었어요. 도자기 내부는 진한 청록색으로, 겉면은 시원한 파란색으로 칠해 깔끔한 느낌을 연출했죠. 시현 학생기자는 파란색으로 테두리를 칠하고, 안쪽과 바깥쪽에 알록달록 도트 무늬를 더해 아기자기한 그릇을 만들었어요. 채색까지 마친 도자기를 한 번 굽고, 유약을 발라 한 번 더 구워내기까지는 무려 한 달이란 시간이 걸립니다. 점토를 성형할 때도 느꼈지만, 도예는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인 거죠.

선민·시현 학생기자가 채색을 마친 도자기(위 두 작품)와 채색을 하지 않은 상태의 도자기.

선민·시현 학생기자가 채색을 마친 도자기(위 두 작품)와 채색을 하지 않은 상태의 도자기.

일일 도예 체험을 마치며 선민 학생기자가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자기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TV에서 도예 장인들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도자기를 깨버리는 장면 한 번쯤 봤을 거예요. 가마에 굽는 과정에서 흙의 수분이 날아가는데 그때 도자기가 수축해요. 예를 들면 항아리를 만들었는데 한쪽이 살짝만 틀어져도 장인 눈에는 그게 보이는 거예요. 성형에 따라 금이 갈 때도 있고, 유약 색이 잘 나오지 않을 때도, 가마에서 뻥 터질 때도 있죠. 도예 전공 책에 보면 도자기가 틀어질 수 있는 변수만 쭉 나열한 게 50쪽은 될 정도예요.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실험을 하고,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야 하죠. 그래서 그런지 의도한 모양이 나왔을 때 보람·만족도도 더 커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하나의 완성작을 얻는 과정이 우리 삶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도자기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재벌까지 마친 두 학생기자의 도자기. 알록달록한 색에 광택까지 더해져 장식용으로도, 실사용 목적으로도 손색없다.

재벌까지 마친 두 학생기자의 도자기. 알록달록한 색에 광택까지 더해져 장식용으로도, 실사용 목적으로도 손색없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취재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제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인지 다시 알게 됐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클레이·점토를 가지고 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는데, 요즘은 숙제나 공부할 것이 많아지면서 잊고 살았거든요. 도자기 흙을 만지고 형태를 잡고 예쁜 색을 입히는 과정은 힐링 그 자체였어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도자기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뜻깊었죠. 제가 지금 치아교정을 하고 있는데, 교정 장치도 도자기로 만든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어요. 소중 친구들도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도예 체험을 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길 바라요.  윤시현(서울 서일초 6) 학생기자

도예 체험을 해 본 적은 있지만, 물레를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과거에는 전기물레가 아닌 수동물레를 사용했다는데, 고려청자와 같은 훌륭한 작품들도 다 수동물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손과 발을 동시에 움직이며 어떻게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또, 도자기는 흙·유약·온도 등에 따라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라고 해요. 도자기가 흙으로 빚는 보석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는다는 걸 느꼈죠.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도예 체험을 해보고 싶어요. 그때는 항아리 같은 큰 작품도 만들고, 수동물레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임선민(서울 명원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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