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21세기 대한민국이 '율법의 나라'가 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3 08:31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며 지난 18일 국회 앞에서 삭발한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며 지난 18일 국회 앞에서 삭발한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국회에서 법안 최종 처리가 곧 이뤄질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란 법률'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001년 11월의 이야기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타지키스탄이라는 옆 나라로 나와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곧이어 기내식이 제공됐습니다. 종이 상자에 빵, 주스, 과일, 물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스 뚜껑을 따고 빵 봉지를 뜯으며 식사 준비를 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동작 그만’ 상태로 눈치를 살폈는데 음식을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옆자리 승객에게 영어에 손짓을 섞어 “지금 먹으면 안 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짧게 답이 돌아왔습니다. “라마단.” 아차 싶었습니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물도 마시면 안 되는 라마단 기간(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이라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저야 무슬림이 아니니 먹어도 괜찮지만 예의가 아닌지라 주섬주섬 상자를 수습하고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 출발지 기준으로 이미 해 지는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무도 기내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유리창 덮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승객 중 몇몇이 큰소리로 뭔가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옆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영어 단어들과 창 밖을 가리키는 손짓을 조합해 대답을 했습니다. time, sun, problem 등이 들렸습니다. 상황이 이해가 됐습니다. 해가 져야 기내식 섭취가 가능한데 해가 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나르고 있기 때문에 해가 질 시간이 지나도 해가 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침부터 물 한 모금 안 마신 사람들이니 얼마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겠습니까? 이후 승객들이 제각기 뭐라고 한 마디씩 하더니 일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토론 끝에 "먹자"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짐작이 됐습니다. 저도 덮어뒀던 기내식 도시락 뚜껑을 열었습니다.

잠시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그곳 사람들 모두가 탈레반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가 탈레반 정권 축출 직후라서 대놓고 찬양하지는 않았지만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탈레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담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회 질서가 잡혀 있었고, 퇴폐적 문화가 추방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두환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둑질하면 손이 잘리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면 매를 맞고, 자유 연애를 하면 돌팔매질을 당하니 사회가 얼마나 반듯했겠습니까? TV 방송은 금지됐고, 관제 신문만 있고, 여성들은 내내 집에 있다가 밖에 나올 때는 부르카로 온몸을 감싸고 나오니 질서 정연한 사회였을 것입니다.

중국 진(秦)나라의 재상 상앙도 율법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범죄에 엄한 형벌을 가했고, 누군가의 죄를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벌을 줬습니다.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를 엄격히 시행했고, 여행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 집에서 잘 수 없도록 했습니다. 훗날 상앙이 도망자 신세가 됐을 때 “내가 만든 법에 내가 당하는구나”라고 탄식했다고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따르는 1990년대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사회나 ‘상앙변법’ 시절의 진나라는 겉으로는 매우 질서 있고 평온한 나라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위에 쓴 ‘기내식 소동’도 엄격히 보면 이슬람 율법 위반입니다. 그것이  만들어질 때 '지는 해를 거르스는 비행'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법은 언제나 구체적 현실을 따르지 못합니다. 법이 사람을 지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핵심은 ‘허위 보도를 하지 말라’입니다. 여당 의원들이 '허위 보도는 옳지 않은 것이니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도그마적 관념을 앞세워 교조적 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윤미향 의원 비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도 처음 언론이 보도할 때 당사자 및 관련 기관이 모두 ‘허위’라고 했던 일입니다. 권력이 진실을 덮어 끝내 ‘허위’로 결론이 날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기자들이 보도했던 것입니다. 나름의 법적 보호 장치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가중 처벌’을 하는 법이 생기면 이런 일에 나서는 기자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신문과 방송에서 '비리 폭로' 보도는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겉으로는 매우 평온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탈레반 정권이나 상앙 시절의 진나라처럼 말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꾸 국민의 의식을 옥죄는 ‘율법’이 만들어집니다. 북한으로 전단을 날리면 안 되고, 5ㆍ18 공식 해석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출해서도 안 됩니다. 이미 법이 제정됐습니다. 언론도 가타부타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 말고 정부 발표에 충실한 보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 국회에는 위안부 피해 문제나 독립운동을 ‘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도 계류 중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율법의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이 '언론탄압법 강행은 문재인 대통령 진심인가'라고 칼럼을 통해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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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탄압법 강행은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인가
 여권의 언론중재법 개정 강행의 뿌리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그림자가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친 사람들은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도 요구했다. 이들에겐 조국의 불공정과 일탈은 사소했고, 윤석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언론의 비판 보도는 징벌의 대상이었다. 허수아비가 된 공수처 출범으로 요란했던 검찰 개혁은 일단락됐다. 대선을 앞둔 여권은 골수 지지층인 ‘조국 수호’ 세력을 달래고 재집권을 위해 언론 악법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조국 백서’라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의 저자 중 김민웅·전우용·최민희는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이들은 개혁을 “자기 존재의 조건을 바꾸는 행위”로 규정했다. “예로부터 지배세력 내의 개혁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게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드러낸 편향된 사고의 폐쇄회로를 따라가면 비상식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조국의 위선을 비판한 언론은 불경스러운 반개혁 세력이 된다. 그러니 이제 주저없이 언론을 손봐야 하는 것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뉴시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뉴시스]

이들은 마음속으로 “우리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하고 감옥 갈 때 언론은 무얼 했느냐. 독재정권과 결탁해 단물을 빨지 않았느냐”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인정할 부분도 있다. 총칼로 집권한 독재자의 보도지침을 거부하지 못했고, 학살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직필인주(直筆人誅) 곡필천주(曲筆天誅), 바른 말을 하면 사람의 벌을 받고 왜곡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인과율(因果律)을 잊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보 지식인들이 놓친 게 있다. 민주화는 소수 엘리트의 희생에 의해서만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미워하는 절대다수의 기자는 1단짜리 기사의 행간에도 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보도는 넥타이 부대가 대학생 시위대에 합류해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치게 만들었다. 언론탄압법으로 손발을 묶어야 할 정도로 타락한 집단은 아니다. 나는 정의고, 너는 불의라는 이분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국내외의 역풍에 직면한 여권은 개정안 중 독소조항의 일부를 고쳤다. 그러나 처벌 기준이 되는 고의·중과실 범위,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권력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리의 전모를 처음부터 알 도리가 없다. 권력이 초기 단계에서 사실을 숨기고 허위·조작으로 몰아가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자기 검열이 강화되면 언론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가 쉬워지고,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인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무너질 것이다.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언론 탄압인가. 국제적인 망신이다.

언론은 지금 이 순간도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K방역의 성과에 도취했고, 국내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 치료제를 ‘게임체인저’라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그러나 관건은 백신이었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 보도로 백신 도입을 실기(失期)해 부실한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화상 통화를 하고 2021년 400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홍보했다. 한국 정부는 미리 서두른 미국·EU와 달리 월별·분기별 공급량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온 물량은 6%에 불과하다.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다. 부동산 가격 인상률도 정부가 줄곧 축소해 발표했지만 결국 언론에 의해 허위로 판명됐다. 이래도 언론을 가짜 기사나 쓰는 적대 세력으로 몰아갈 것인가.

물론 언론도 수시로 오류와 편향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동굴의 사고’에 갇혀 전체적 맥락과 본질을 놓치지 않았는지 수시로 자문(自問)하고 상호 비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문제가 발생하면 혹독하게 자책(自責)하는 것이 기자 사회의 불문율이다.

여권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언론탄압법에 대한 역사의 최종적 심판은 문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그는 후보 시절 최순실 게이트 때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는 악법을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유난히 취약한 나라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국가이며 냉전의 최전선에 서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다른 민주국가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다. 민·형사상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존재한다.

이런데도 굳이 5배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징벌적 언론 악법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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