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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인한의 퍼스펙티브

지구촌 곳곳에 경고등…패거리 정치로는 미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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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속가능한 세상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기후 위기, 불평등, 분쟁과 갈등, 재난과 전염병 등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난제 쏟아지는데도
합리적 대안 없이 이념 갈등 조장하는 정치 이어져
전근대적 경쟁 계속된다면 우리의 앞날 보장 못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가 가장 들어맞는 사례는 바로 지구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우리는 지구가 베푼 엄청난 혜택을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하며 지구를 남용해 왔다. 지구는 우리에게 조건 없는 호의를 한없이 베풀지 않을 것이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인류가 지금 이 순간 수천 년 문명사에서 가장 큰 위협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구적 차원의 재난, 바로 기후 변화다. 그는 우리가 즉각 기후 위기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문명은 붕괴하고 자연계 상당 부분이 멸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는 기후 위기가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쳐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온난화를 불필요한 걱정이나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던 사람들조차 있었다. 심지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미국의 탈퇴를 선언하며, 북극에서부터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천연자원은 착취를 위한 것이라는 투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던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업무가 파리기후협약 복귀였음은 천만다행이었다.

눈앞의 현실로 닥친 기후 재앙

2013년 유엔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인간 활동, 특히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 변화의 주요인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세계 각국은 역사적인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IPCC 6차 평가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로 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1.5도 이상 기온이 높아져 위험에 다다랐다는 경고를 던졌다.

시급히 조처하지 않을 경우 불가역적 기후 재앙이 임박해오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이번 여름은 어쩌면 앞으로의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 지구 위에서 대멸종을 불러왔던 원인 중 하나가 지구온난화였음을 생각하면 폭염에 불평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예전 소행성 충돌, 화산 폭발, 빙하기, 사막화, 지구온난화 등으로 대멸종을 경험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위기는 과도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자연을 파괴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Planet B)이 없으므로 지구 외의 다른 계획(Plan B)이란 없다. 이 지구 위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대응하는 수밖에는….

벼랑 끝으로 몰린 인류 문명

기후 위기로 인한 인류의 생존, 생태계의 존립과 비교하면 사뭇 사소해 보이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사회 역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 인간 사회의 경제·정치 제도가 원래 인간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역할과 실제 한 결과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져 간과할 수 없게 됐다. 금융 경제는 생산 경제를 추월했고, 민간의 부가 공공의 부보다 거대해졌다. 국제적으로 갑부의 1%가 나머지 99% 모두 합한 것 이상으로 소유할 만큼 불평등이 심각해졌다. 초국적 기업은 전 세계 기업의 0.1%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GDP의 10%를 차지하는 공룡이 됐고, 게다가 입법과 규제를 뒤흔드는 힘마저 가지고 있다.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

한편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많은 국가는 긴축 재정 정책을 택해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있다. 복지 축소로 인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은 위협받고 있다. 세계적 분쟁 상황은 어떤가. 각국의 불안정과 불평등 속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등장하며 주변국과의 갈등과 분쟁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한 분쟁 속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두 자릿수 이상의 분쟁이 새로 발생했으나 지금껏 해결된 분쟁은 거의 없으며 현재 난민이 20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위기 헤쳐갈 포용의 리더십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 인류 앞에 놓인 수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협력하여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다. 세계 각국은 현재 SDGs를 이행하려 하고 있고, 기업들은 ESG(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한 거버넌스)의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균형이다. 미래를 생각지 않는 과도한 개발과 발전이 아닌, 환경을 위해 모든 활동을 극단적으로 멈춰버리는 것이 아닌, 모든 인류가 번영을 누리되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균형의 합리성을 갖춘 리더십이 이 위기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 누가 리더가 되더라도 성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그 리더십의 방향에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인류의 문제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 뚜렷한 정책과 비전을 가진,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을 태도를 가진,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을 포용하며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간절한 시점이다.

정책 제시 없이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고, 합리적 토론 대신 패거리식 선동을 하는 전근대적인 경쟁이 계속된다면 기후 위기와 전염병, 불평등과 빈곤, 저출산과 고령화에 직면한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치가 국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거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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