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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매매 13년만에 최대, ‘개미지옥’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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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20일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증시 하락에 ‘빚투’ 투자자들은 반대매매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증시 하락에 ‘빚투’ 투자자들은 반대매매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증시 하락에 ‘빚투’ 투자자 좌불안석 / 미수거래 급증, 반대매매 422억 /주가 30%이상 폭락하면 나타나 / 3000 깨지면 증시 큰 부담 가능성 / ‘대형주 빚투 많아 덜 위험’ 분석도 

직장인 이모(39)씨는 요즘 주식 계좌만 보면 골치가 아프다. 지난달 매수한 코스피 시장의 선박 관련 업체 A사의 주가가 연일 하락해 손실률이 28%에 달해서다. 이씨는 당시 증권사에 2000만원을 맡기고 1500만원을 빌려(신용거래 융자) 이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단기간에 돈을 불리려고 신용(빚)을 썼는데,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간다”고 말했다.

국내 주가 하락세가 거세지자, 빚을 내서 주식을 산 ‘빚투’ 개인 투자자들이 좌불안석이다.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파는 ‘반대매매’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증권가에선 반대매매 물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가 하락의 ‘뇌관’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지난 19일 기준 25조365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19조2214억원)보다 32% 늘었다. 지난 18일엔 25조6112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신용거래 융자는 투자자가 40%가량 돈을 대고 나머지 대금은 증권사에서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이다.

미수거래(외상)도 급격히 증가했다. 금투협에 따르면 위탁매매 미수금은 지난 19일 기준 4442억원으로, 이달 들어 1293억원 늘었다. 미수거래는 신용거래와 비슷하지만, 만기가 3거래일인 단기융자다. 주로 개인 투자자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할 때 활용한다.

치솟는 주식 반대매매 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주식 반대매매 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빚을 끌어다 주식을 산 뒤 주가가 하락할 때 벌어진다. 해당 주식 평가액이 증거금의 140% 아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주식을 강제로 처분해 자금을 회수한다. 예컨대 자기 돈 1000만원과 빌린 돈 1000만원을 합쳐 2000만원어치 주식을 산 경우, 주식 평가액이 대출금의 140%인 1400만원 밑으로 떨어지면 반대매매를 당한다.

위탁매매 미수금 중 반대매매가 일어난 금액은 지난 19일 기준 422억원으로, 2008년 10월 27일(429억원) 이후 13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돈을 빌린 뒤 3거래일째 갚지 못한 사례가 그만큼 늘었단 의미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10.8%였다. 신용거래에 대한 반대매매는 공식 통계가 없지만, 최근 규모가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지수 낙폭을 고려할 때 아직은 위험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코스피는 지난 20일 3060.51에 거래를 마쳤다. 본격적인 하락 전인 지난 4일(3280.38) 대비 6.7% 내렸다. 코스닥 지수는 지난 9일 연중 고점인 1060을 찍은 뒤 20일 967.9로 8.7% 하락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부부장은 “코스피 기준으로 3000선이 깨져야 반대매매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목 기준으론 증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주가 하락 폭이 30% 이상일 때 반대매매가 나타난다.

개인들이 ‘빚투’로 산 종목이 주로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란 것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증권 정보기술(IT)회사 코스콤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선 삼성전자(9418억원), 셀트리온(5448억원), SK하이닉스(4838억원), 셀트리온헬스케어(4559억원) 순으로 신용 잔액이 많았다.

하지만 주가가 추가로 하락하면 증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우려 등 악재로 외국인 수급도 좋지 않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30조726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해(24조7128억원) 순매도 규모를 넘어선 수치다.

특히 신용 잔고율이 높은 종목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기준 코스피·코스닥에서 신용 잔고율이 10% 이상인 종목은 선광과 비트컴퓨터 등 23개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 하락 폭이 커지면 반대매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이는 증시를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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