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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미달 암호화폐 거래소 쏟아져…투자자 속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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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다음달 25일 시행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자격 미달’의 거래소가 무더기로 쏟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의 전광판. [연합뉴스]

다음달 25일 시행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자격 미달’의 거래소가 무더기로 쏟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의 전광판. [연합뉴스]

내달 25일 특금법 본격 시행되면
개인정보보호 인증, 실명계좌 써야
보유 코인 안전한 거래소로 옮겨야

9월 25일. 암호화폐 투자자에게는 운명의 날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명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날 본격 시행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 당국에 가상자산 사업자로 신고 접수하지 못한 ‘자격 미달’의 거래소가 무더기로 쏟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다수 거래소가 문을 닫거나 폐업하면 투자자가 입금한 돈과 암호화폐를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정치권과 업계 등이 신고 유예기간 6개월 연장 등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지만 더욱 짙어지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종말(아포칼립스)’의 그림자에 투자자의 속은 타들어 간다.

공무원 김모씨(45)는 노후자금 1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김씨는 2년 전 소규모 거래소에서 암호화폐인 ‘블록메이슨링크’을 무려 1억원어치나 사들였다. 코인값이 오르자 이를 다른 거래소로 옮겨 팔기 위해 기존의 거래소 지갑에서 해당 코인을 꺼내려고 했지만, 거래소 측에서 서버 문제 등의 이유를 들면서 수차례 지연시켰다. 결국 다른 거래소로 옮겨 해당 코인을 비싼 값에 팔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해당 코인이 대부분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기 때문이다.

자금 세탁 막는 특금법에 발목

암호화폐 거래소의 위기는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특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특금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국제 기준에 따라 불법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방지하고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는 금융기관 사이의 금융거래에만 적용됐지만,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이 암호화폐 거래까지 포괄하며 사태가 커진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암호화폐 거래소에는 6개월의 신고 유예를 해줬다. 그 결과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다음달 24일까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에 가상자산 사업자로 신고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두 가지 조건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조건은 ISMS(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받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정보자산 보호를 위한 관리체계가 적합한지 심사를 요청한 뒤 각종 인증을 받아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다. 암호화폐 거래에 은행의 실명확인을 거친 입출금계좌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자금 세탁 등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대부분 암호화폐 거래소는 법인계좌 아래 가상의 계좌번호를 만들어 다수의 개인계좌를 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투자금을 관리한다. 이른바 ‘벌집 계좌’라 일컫는 집금계좌 방식으로, 불법자금 입금 시 금융당국의 추적이 어렵고, 개인계좌의 실명확인을 거치지 않아 대포통장 등으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

거래소 검증은 은행 책임?

암호화폐 거래소가 줄폐업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데는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에 소극적인 데 있다. 특금법상(제5조2항) 은행이 계좌를 발급해준 거래소의 안정성을 보증해야 하는 ‘연대 책임’ 구조 때문이다. 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여부와 고객의 예치금과 자기 재산을 분리 관리 여부, ISMS 인증을 획득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자금세탁을 둘러싼 위험부담에다 거래소 검증에 소요되는 비용 및 시간보다 거래소와의 제휴로 얻는 수수료 수익 등의 이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 자금세탁방지 의무이행 사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 자금세탁방지 의무이행 사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암호화폐 거래소의 마지막 날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정도다. 다음달 25일부터 ISMS 인증과 실명계좌 발급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현재 시중은행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를 발급받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뱅크), 빗썸, 코인원(이상 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뿐이다. 추가 계좌 발급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은행의 실명계좌를 발급받고 신고 접수를 마친 대형 거래소조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가 지난 6월 국내 거래소 25곳을 조사한 결과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요건을 충족한 사업자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도 지적 사안을 보완하지 못하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금법 시행으로 거래소의 줄폐업보다 억울함과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자의 집단행동으로 해당 사안이 정치권으로 번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우선 가능한 빨리 파산이나 폐업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래소로 예치금과 암호화폐를 옮겨야 한다.

자신이 거래하는 거래소가 서비스 종료를 발표할 경우 자금 출금 방법과 암호화폐 이관 절차 안내에 따라 거래소 계좌에 예치된 돈은 빨리 출금해야 한다. 또한 거래소의 ‘암호화폐 지갑’에 보관된 암호화폐는 다른 거래소로 이관해야 한다.

중소 거래소가 돌연 폐쇄를 선언하고 예치금 등을 무작정 반환하지 않아도 피해를 본 투자자가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에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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