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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우려, 한국 사는 무슬림들 "탈레반은 무슬림 아닌 테러 단체"

중앙일보

입력

7년째 한국에서 아랍어 강사로 활동하는 이집트 국적의 무슬림(이슬람교도) 기훈(한국 이름)씨. '기훈'은 한국인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관련 소식을 보다가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거주지를 떠난 아프간 주민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헤라트주의 한 임시 난민시설에 머물며 생활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거주지를 떠난 아프간 주민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헤라트주의 한 임시 난민시설에 머물며 생활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당시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테러 관련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중년 남성은 그를 향해 "어휴 이슬람 사람"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무슬림인지 이슬람 무장단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공격당하는 기분이었다"는 기훈씨는 "아프간 사태 이후 이런 편견이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며 한숨지었다.

2년 전 한국에 와 서울 소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란 국적 무슬림 이화(한국 이름)씨 주변의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히잡을 쓴 아프리카계 미국인 무슬림 친구가 병원에 갔는데 종교에 대한 오해 때문인지 치료를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탈레반은 극단주의자, 살인자…무슬림 오해 없었으면"  

서울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이집트 국적 기훈씨와 장서윤 인턴기자. [줌 캡쳐]

서울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이집트 국적 기훈씨와 장서윤 인턴기자. [줌 캡쳐]

혹시 모를 신변의 위협을 막기 위해 실명 대신 한국 이름으로 두 사람을 줌(zoom)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아랍인과 보통의 무슬림을 탈레반 등 극단주의자로 오해하면서 종종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며 "탈레반은 극단주의자고 살인자에 불과하다. 한국 내 아랍인, 무슬림에 대한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화씨는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 무슬림이다. "내게 번호를 물어 데이트 신청을 한 남성도 내가 무슬림이라고 밝히자 말없이 채팅 대화방을 나간 적이 있다. 이슬람은 히잡을 강요하는 엄격한 종교가 아니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무슬림 중 이슬람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래서 여성 인권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슬람교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하는 사회와 사람의 문제라고 본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1970년대 자유로운 시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진. 트위터 캡처

아프간 수도 카불의 1970년대 자유로운 시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진. 트위터 캡처

BTS 외에도 K-POP 그룹 스트레이키즈, 엔플라잉을 좋아하는 그는 대학원에서 국제 사회와 인권, 북한 제재 등을 공부하고 있다. 이화씨는 탈레반을 무슬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규칙을 맘대로 해석한다. 그들은 극단주의자로 이슬람교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무슬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기도하고 최근에는 한국의 모스크나 이태원도 잘 안 간다. 혹시라도 극단주의자와 어울리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주의자는 코란 마음대로 해석"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밖에서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앉아 있다. [AFP=뉴스1]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카불의 프랑스 대사관 밖에서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이 앉아 있다. [AFP=뉴스1]

기훈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학원 강사이자, 이슬람에서 예배를 볼 때 인도를 맡는 '이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니라 그저 무슬림이다. 지금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는 극단주의자들과 실제 이슬람교의 말씀은 다르다. 제 마음대로 코란을 해석하는 이들이다."

기훈씨는 서울에서 택시를 타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젊은 시절 중동 노동자로 다녀온 이들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며 반겨준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에게 자신이 수염만 기르면 탈레반들과 외모가 비슷해 보일까 봐 걱정도 된다고 했다.

"아프간, 관심 연대 필요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정문 앞에서 106개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 보호책 마련과 평화 정착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정문 앞에서 106개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 보호책 마련과 평화 정착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들은 아프간의 인권, 여성 문제에 대해 걱정하며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훈씨는 "21세기인데 여성의 교육을 막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아프간_여성_인권' 같은 해시태그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화씨는 "아프간 여성들은 강간과 납치에 대한 공포로 집에만 갇혀있을 것"이라면서 아프간 주변국의 회사나 아프간 여성에게 장학금을 주는 대학교에 대한 정보를 SNS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한국의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기훈씨는 "한국이 아프간 난민 일부를 수용하면 좋겠다. 하지만 일부 난민 신청자 중 극단주의자가 포함될 가능성도 있어 확인 절차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화씨는 "난민 수용은 중요한 인권 문제로 국제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한국은 인도주의적 지원에 적극적인 나라다. 평화유지군을 보냈듯 난민 문제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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